그해 겨울, 바람은 얇았다.
그해 겨울, 바람은 얇았다.
닿는 순간 금이 갈 것처럼 차갑고 가벼웠다.
사람들은 끝난 관계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항상 원인을 찾으려 한다. 누가 먼저 떠났는지, 무엇이 결정적이었는지, 어디서부터 틀어졌는지.
하지만 나는 안다.
관계가 끝나는 건 사건 때문이 아니라, 구조 때문이라는 걸.
사랑은 끝나도, 패턴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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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은서다.
변호사였고, 누군가의 애인이었고, 임신했던 여자였고, 지금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이 순서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순서로 배열해도 나는 같은 사람이고, 같은 방식으로 무너졌다.
그 사람, 도현은 나를 사랑했다고 했다.
나도 그를 사랑했다.
사랑이라는 말은 가벼웠다.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이미 무게를 잃었다.
사랑은 책임보다 가볍고, 욕망보다 빨리 식었다.
그는 나를 버렸고, 나는 그를 원망한다.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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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이야기는 그 원망에 관한 것이 아니다.
이 이야기는 반복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왜 같은 사람을 만나고, 같은 방식으로 사랑하고, 같은 방식으로 무너지는가에 대한 것이다.
나는 도현 이후에도 다시 사랑했다. 아니,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무언가를 했다. 그리고 또 임신했고, 또 혼자가 됐다.
어떤 상실은 반복된다.
처음에는 사건이지만, 두 번째부터는 습관이 된다.
누군가는 이것을 불행이라고 부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불행은 사건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구조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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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아라는 남편 준서와 아이를 키우며 산다.
준서는 건축가다. 한때는 젊고 촉망받는 건축가였다. 지금은 과거만큼 바쁘지 않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기억한다. 아라는 그 기억 속에서 안전을 느낀다.
하지만 나는 안다.
준서는 처음부터 아라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 아라도 그걸 알았지만, 모른 척했다는 걸. 임신하면 달라지겠지, 아이가 생기면 우리가 진짜 가족이 되겠지, 그렇게 믿고 싶었다는 걸.
아이는 태어났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 그들은 여전히 선망의 대상이다. SNS에는 아이와 함께 찍은 사진들이 가득하고, 사람들은 ‘보기 좋다’고 댓글을 단다.
행복은 때때로 타인의 시선으로 완성된다.
아라는 불행하지 않다.
그녀는 그렇게 말한다. 나는 믿는다.
행복과 불행은 누가 정의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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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 은미는 작가다.
그녀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쓴다.
관찰자는 언제나 자기 그림자를 함께 기록한다.
그녀가 쓰는 이야기는 항상 조금씩 왜곡돼 있다. 진실과 관찰 사이에는 언제나 간극이 있고, 그 간극을 메우는 건 관찰자 자신의 내면이다.
은미도 결국 자기 이야기를 쓰고 있었다.
다만 그녀는 그걸 몰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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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네 명의 여자와, 그들이 사랑했던 남자들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이야기는 구조에 관한 것이다. 결혼이라는 제도, 계급이라는 틀, 사랑이라는 환상,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무너진 뒤에도 남는 것들에 관한 것이다.
나는 도현을 원망한다.
하지만 동시에 안다. 그가 아니었어도, 나는 같은 종류의 남자를 만났을 것이고, 같은 방식으로 무너졌을 것이다.
사람은 패턴을 반복한다.
이 이야기는 그 반복을 기록하기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