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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사이다 Apr 02. 2024

백수들이여, 요리하자

백수가 되었다. 백수가 된 지 한 1달 반의 시간이 지났는데, 생활이 이전과는 전혀 달라졌다. 회사에 다닐 때는 항상 배달의민족에서 음식을 시켜 먹거나 배민에서 편하게 장보기를 했다. 하지만 백수가 무엇인가. 버는 돈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얼마를 버는지가 아니라 얼마를 쓰는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내 평생에 처음으로 절약의 세계에 들어온 것이다.


절약의 세계에서는 배달은 부자들이나 하는 것이다. 상당히 비싸기 때문이다. 배달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 금액이 있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1만 원 이상으로, 그 최소 금액을 채우기 위해 불필요한 음식까지 사게 된다. 그리고 배달 음식은 내가 양을 조절할 수 없다. 대부분 내가 먹는 양보다 많은 양이 온다. 그래서 항상 먹고 나면 포장 쓰레기와 함께 음식 쓰레기가 나왔고, 그럴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자극적인 음식을 많은 양과 먹다 보니, 소화도 잘 되지 않았다. 행동을 해야 할 때이다. 백수니까.


배달비를 아끼기 위해 음식 배달이 아닌 음식 포장을 해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음식 포장을 하기 위해서 차를 타고 다녔으나, 차를 타고 다니는 것도 쓸데없는 교통비를 쓰는 것 같아서 꺼려졌다. 그리고 어차피 밖에 나갈 일도 잘 없어서 걷는 양이 적은데, 이럴 때라도 걸어야지. 백수가 된 뒤로 토스 만보기를 사용하고 있는데 토스 만보기에는 또래 남성들이 얼마나 걷는지가 나와있었다. 다들 이렇게 부지런히 걸을 줄은 몰랐다. 아니 내가 너무 안 걷는 거겠지. 그래서 포장할 때 걸어 다녔는데,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오는 거리를 걸어서 간다는 것은 상당히 비효율적인 일이었다. 그렇게 노력해서 음식을 가져와도 가져오는 길에 음식이 식기도 하고, 먹어봤자 양도 많고 속도 안 좋아졌다.


그래서 드디어 요리의 세계에 들어오게 되었다. 처음부터 요리를 하면 될 걸, 나는 굳이 굳이 직접 체험해 본다. 남의 말을 안 듣는 습관이 있으면, 사서 고생한다. 사실 지금까지 요리를 안 했던 이유는 소득이 계속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배달비나 먹는데 들어가는 돈이 별로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백수가 되고 나니, 요리는 자연스럽게 나에게 다가왔다.


요리를 하기 위해서 장을 보니,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세계가 보였다. 마트에 가서 여러 재료들을 살펴보는데, 머리가 멍해진다. 재료들을 조합해서 요리를 해야 하는데, 요리를 모르는 나는 재료를 어떻게 조합해야 어떤 요리가 나오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 나는 이 세계에서 정말 신입이구나. 그렇다고 마트에서 가만히 서서 유튜브로 요리를 찾고 재료를 찾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한 번만 쓸 재료를 쓸데없이 많이 사게 된다. 나는 이제 쓰레기와 지출을 좀 줄이고 싶었기 때문에 머뭇거렸다.


이렇게 어떤 일을 시작할 때 복잡도가 높으면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그동안 회사에서 일했던 경험을 떠올렸다. 나의 능력에 비해 일의 난이도가 높을 경우, 일의 난이도를 낮춰서 달성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요리의 난이도를 낮출 아이디어를 마트에 서서 가만히 생각하게 되었다. 어떻게 해야 되는 거지?


다행히도 엄마 찬스가 있었다.  한국인은 쌀과 김치만 있으면 밥은 먹는다 했다. 그리고 반찬.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아이들인데, 반찬이 있으면 밥상이 더 정갈해 보이고 영양분도 다채로워진다. 그래 김치와 쌀, 반찬은 엄마를 통해 구하자. 그다음에 더 어떻게 난이도를 낮출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아침 점심 저녁의 메뉴를 정해버리고 바꾸는 걸 하나만 했다. 아침저녁은 항상 똑같이 먹고, 저녁의 국과 메인 메뉴만 바꾼다는 생각을 했다.


와우, 난이도가 확 낮아졌다. 저녁의 국거리와 메인 메뉴만 바꾸면 되는데, 사실 보통 2일 동안 같은 거 먹을 수 있으므로 1주일에 3번 정도의 저녁 메뉴만 바꾸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요리인지 조리인지 모르는 세계에 들어와 보니, 왜 다들 집에서 요리를 하는지 알게 되고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을 조합해서 새로운 요리를 창조해 내는 주부들의 대단함에 고개가 숙여졌다. 일에는 귀천이 없고, 모든 일에는 특정 경지가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나도 언젠가 유튜브를 보지 않고 냉장고를 열어 듣도 보도 못한 요리를 만들 수 있을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하며 오늘도 장을 보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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