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편
비밀주의 Secrecy로 유명한 애플이 일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애플 본사에서 근무하는 MBA 친구들을 통해 가끔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듣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런 것조차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은 별로 없다.
애플의 신제품 발표일과 교황의 뉴욕 방문 일정이 겹친 상황. 스티브 잡스가 키노트 발표를 하는1.5시간 안에 교황의 신변 보호를 위해 차단된 도로를 피해 1.5시간 내에 뉴욕내 모든 애플 매장으로 신제품을 배달하고 매장을 신제품으로 단장한 경험
애플 스토어를 처음 론칭하기 전, 매장 운영, 물류, 사운드, 조명, 바닥, 천장, 구조, 집기, 매장 직원 교육 등 각 분야 150명의 전문가들이 약 2년 동안 준비했던 이야기
애플의 신사옥 애플 파크를 만들 때 조나단 아이브의 인터뷰
이렇게 애플 직원에게 직접 들은 얘기 외에는 근거가 불확실한 카더라가 많았고, 당연히 아이폰 개발 당시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개인적으로는 아직까지 접한 것들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최초의 아이폰 개발팀 멤버가 들려준 이야기라면 어떨까?
본인이 최초 아이폰 개발자 16명 중 한 명이라고 소개한 켄이 한 컨퍼런스에서 직접 들려준 아이폰 개발 스토리를 정리해보았다.
최초의 아이폰 개발 스토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당시 시장 상황에 대해 간단히 이해 할 필요가 있다.
아이폰 론칭 전 스마트폰 시장은 Blackberry 블랙베리가 장악하고 있었다. 그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블랙베리는 스마트폰의 대명사였고, 끊임없이 이메일과 SMS를 주고 받게되는 중독성 때문에 크랙베리 CrackBerry라는 별명까지 있었다. (*Crack은 중독성 높은 마약의 이름)
이 블랙베리는 위와 같이 물리적으로 입력이 가능한 하드웨어 키보드가 있었다. (혹시 블랙베리가 뭔지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블랙베리는 한국에서 이쁜 쓰레기라고 불렸었고, 이 물리 키보드는 여전히 블랙베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상징이다.)
그 당시 블랙베리의 성공은 이 물리 키보드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아이폰을 만들던 스티브 잡스는 바로 이 물리 키보드가 큰 제약이라고 생각했다. 아이폰에서 더 유연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잡스는 키보드가 화면 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물리 키보드를 가진 블랙베리와 완전히 다른 방향성이었다.
(여기부터는 발표자의 시점에서 정리)
블랙베리와 같이 하드웨어 키보드가 주류이던 시대에 소프트웨어 키보드를 화면에 넣는 작업은 이 세상 누구도 해 본적이 없는 일이다.
(정확히는 윈도우즈 모바일과 Palm이 있었지만 스타일러스를 이용하는 방식이였고, 손가락으로 QWERTY를 이용해 직접 입력하는 것을 제대로 구현하고 대중화 한 것은 아이폰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따라서 아이폰 개발팀은 이를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과 디자인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고, 정말 다양한 시도를 했다.
처음에는 아래와 같이 가장 보편적인 컴퓨터의 키보드를 그대로 축소하여 넣었다.
근데 이 키보드로 경영진 데모를 하던 중 소프트웨어 개발을 총괄하던 Scott Forstall이 손가락으로 본인 이름을 제대로 입력 할 수 없게되니 분위기가 심각해졌고 결국 프로젝트가 잠정 중단되어 버렸다. 타이핑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스마트폰이라니 심각한 문제였던 것이다. 그래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16명 전원이 이 키보드 문제만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당시 ‘혹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어떻하지?’라는 두려움이 팀 안에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요즘의 애플을 보면 과연 이들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시간여행을 하는 타임머신이라는 아이디어가 있어도 현실적으로 구현이 불가능 하듯이, 때로는 구현이 불가능한 아이디어도 있기 마련이다.)
결국 우리는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프로토타이핑을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여러가지 시도를 하면서 지속적으로 정답에 가까이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엔지니어 16명 전원이 각자 키보드를 만들기 시작했고, 끊임없는 데모 경쟁을 통해서 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팀이 제안한 초기 아이디어 중에 아래와 같은 것들도 있었다.
스노우맨 키보드로 불리기도 했던 이 키보드는 실패했다. 단어를 입력하는 중 글자를 잘못쳐서 옆에 키를 잘못 누르면 이를 보정해줄 자동 완성 기능이 당시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엄지 손가락으로 타이핑을 하기 위해서는 키의 크기가 더 커야한다는 가설을 가졌던 엔지니어는 아래와 같은 제품도 만들었다.
키를 터치한 후, 원하는 글자의 방향으로 스와프를 하면 원하는 글자를 인식하는 형태였지만 역시 실패했다. 첫번 째 문제는 각 글자들이 어디있는지 알기 어렵다는 것이였고, 두번 째는 원하는 글자를 누르면 되는 것인지 버튼을 누른 후 스와이프 해야하는지 사용자들이 헷갈렸기 때문이다.
위의 키보드들은 과감한 아이디어들을 갖고 있었지만, 키보드는 결국 입력툴이라는 본질을 갖고 있다. 아무리 창의적인 아이디어일지라도 문자 입력을 할 수 없으니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그래서 위의 키보드들을 과감히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가끔은 우리가 들인 노력과 시간이 너무 많으면 그 오류에 빠져서 포기를 못하는 경우들이 있다. 이를 매몰 비용의 오류라고도 하는데, 실패했거나 실패할 것이 확실시 되면 어느순간 과감히 포기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들인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서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인간이 가장 익숙한 키보드 형태인 QWERTY 키보드로 돌아가 원점에서 시작했다. 여전히 일부 개발자들은 엄지로 입력하려면 키 사이즈가 커야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여러 글자를 묶은 아래와 같은 디자인이 나왔다.
이 키보드의 작동원리는 아래와 같다.
키보드에 사전을 심어두고 이런 키들의 조합이면 'first'라는 단어를 입렸했다는 것을 예측하는 형태의 키보드였다. 팀내에서 이 키보드는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것을 고도화하여 다시 경영진 데모를 준비했고, 결국 위의 키보드가 데모에서 승리한 키보드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모두 알듯이 이 키보드가 세상에 나온 것은 아니다. 이유는 단순했다.
위 예시로 보여진 'first'의 같은 짧은 단어를 타이핑 할 때는 문제없이 작동이 잘 되었는데, 구성원들간 끊임없이 내부 테스트를 하는 과정에서 긴 단어들을 타이핑 할 때 단어 추천 기능이 자꾸 버벅였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aluminum'을 타이핑하면 입력한 글자수 만큼 실시간으로 예상 단어들을 제안을 하는데, aluminum을 5글자까지만 치면 나오는 추천 단어가 slimy였고 이렇게 아무 상관없는 단어가 자꾸 추천으로 뜨면서 타이핑하는 사용자를 헷갈리게 한 것이다.
결국 입력 경험이 자연스럽지 못한 위의 키보드도 세상에 나오지 못한 것이다. 키보드로의 본질을 해결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사용자가 가장 익숙한 QWERTY 키보드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 키보드의 뒤에는 여러가지 노력들과 숨은 기술들이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힌트는 바로 아래의 사진에서 찾을 수 있다.
글자를 타이핑 할 때 팝업이 뜨게 한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소프트웨어가 손을 인식하는 형태는 아래와 같았다. 위의 키보드와 같이 여러 글자들을 묶어서 인식하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들이 사용자 입장에서 보이게 하여 헷갈리게 한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게하여 사용자를 배려한 것이다. 끊임없는 고민 끝에 나온 해결책인 것이다.
이 외에도 팀은 아래와 같은 것들을 포함해서 출시하고 싶었지만, 자르기 Cut, 복사하기 copy, 붙여넣기 paste와 같이 일부 기능들은 첫 출시 때까지 충분히 완성도를 높이기 어려워 아이폰을 처음 출시하고 이년 뒤에나 업데이트 할 수 있었다.
위 이야기는 15년이 넘은 이야기지만 여전히 우리가 제품을 만들 때의 태도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많은 것 같다.
다음 글에서는 아이폰의 화면 내 아이콘 크기를 어떻게 결정했는지 그 과정에 대한 스토리를 공유하겠다.
그 사이 애플 사옥에 대해서도 한 번 읽어보시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