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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n Dec 07. 2020

무지개 끝엔 아무것도 없었지만

서른 살, 독일..

서울에서 살던 집은 공항 근처에 있었다. 비행기 소음이 큰 문제가 될 정도로 공항과 가까운 곳이었는데, 난 창문 너머로 지나가는 비행기를 구경할 수 있어 좋았다. 나에겐 언제나 '다음 여행' 계획이 있었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행 비행기를 타러 게이트 앞으로 향하면서 이미 다음 목적지를 구상한 적도 있으니 이쯤 되면 여행이 아니라 현실도피라고 불러야 맞다.


20대 중반의 나는 한국만 나오면 인생이 훨씬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미국을 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미국은 엄청난 초기비용이 없으면 정착이 불가능한 곳이라서 포기했다. 대신 아일랜드와 캐나다 워홀을 준비하려다 괜히 그만두었다. 그러다 이런저런 이유로 독일에 꽂혔고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다. 지금 생각하면 어디로 갈 지 고민하는 건 시간낭비였다. 


어디에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사느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을 한국을 떠나고 나서야 배우게 되었다.


독일에 와서 나는 아주 편안해지고 마음이 많이 단단해졌다. 운동을 취미로 삼으면서 체력이 늘었고 마음에도 근육이 붙었다. 하지만 나의 변화는 절대로 독일 사회가 한국 사회보다 나아서 찾아온 게 아니다. 모든 문화는 각자 다를 뿐 어느 것도 다른 것의 우위에 설 수 없다. 절대적으로 살기 좋은 나라 같은 것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나라를 찾아 헤메는 건 바다 끝에 떠오른 무지개를 쫓아가는 것과 같다. 언제나 그 끝은 빈 바다일테니.

사람보다 큰 꽃나무가 있는 도시, 슈파이어

이전 글에서 키 큰 여자로 사는 것에 대한 피로함에 대해 적었다가 많은 공감을 받았다. 꼭 내가 쓴 것 같은 댓글들도 너무 많아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여러 번 읽었다. 그 글에는 쓰지 않았지만 독일에서도 키에 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바로 내가 스시집에서 알바를 할 때였다.


양복을 잘 차려입은 백인 남자 손님이 날더러 친근하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자기도 몇 번 가봐서 잘 안다더니 뜬금없이 이렇게 말하는 거다. "한국이나 아시아 사람들은 모두 키가 작은데 당신은 한국사람 같지 않게 키가 크다"라고. 본인 딴에는 칭찬이랍시고 이야기 한 거였겠지만 차별적이고 무례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런 말이 나를 크게 흔들지 않았다.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나는 혼자 힘으로 외국에서의 삶을 꾸려가면서 중심이 잘 잡혀있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를 스쳐지나는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에 귀를 기울이기에는 인생이 너무 아깝다는 사실을 배웠으니까.


나는 기회가 되는 모두에게 외국생활을 한 번쯤 권유해보고 싶다. 사회를 보는 시야가 넓어질 뿐더러,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스스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많아진다. 어떻게 자기가 자기를 모르냐고 의아해 할 수도 있지만, 스스로와 관계를 제대로 맺어놓지 않으면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살게 된다. 

아주아주 맛있는 프레첼이 있는 뮌헨의 재래시장
외국에 나와서 살면 그간 습관처럼 가져왔던 나의 모든 감정과 행동에 물음표가 붙는다. 


나는 여기에 와서야 나의 불안과 강박이 꽤 심각한 수준이었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부모님과 같이 살 때는 편안한 집에서 관성에 젖어 살다보니 잘 몰랐는데, 당장 살 집을 스스로 구하고 체류연장부터 보험 가입까지 피곤한 문제들에 혼자 당면하다보니 내가 가진 문제들이 꽤 분명하게 드러났다. 


외국에서는 나의 문제를 정면으로 들여다 볼 기회가 반드시 생긴다. 무지개를 찾아 넘어 온 주제에 또 다시 다른 핑계를 만들 수도 없지 않나. 그래서 나는 나를 알아가는 연습을 했다. 모든 게 다 부서져버릴 것 같은 불안의 이유를 찾아보기로 했다. 내가 인생에서 정말로 원하는 게 어떤 것인지도 끊임 없이 생각했다. 내 불안의 근원은 큰 욕망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바라는 걸 얻으려 노력하는 대신에 무언가 잘못될 거라고 걱정만 했던 것 같기도.

우연히 자전거 여행을 하다가 찾은 작은 도시

여기서는 전투적인 태도를 가져야 살아남는다. 주저앉아서 걱정을 하고 울 시간도 없었다. 넘어져도 무릎에 흙을 훌훌 털고 일어나 다시 뛰어야 한다. 그 시간이 행복하기만 했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결국은 내가 크게 성장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앞에서도 잠깐 말했듯 문화도 결국은 거기에 사는 사람이 만들어가는 거여서, 어느 나라는 틀렸고 어디가 더 낫다는 생각은 잘못됐다. 하지만 나는 '자기에게 더 잘 맞는 문화'는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 나를 적잖이 힘들게 했던 한국 사회의 특징들이 여기에는 존재하지 않으니 마음이 많이 편안해진 것은 사실이다 - 무엇들인지는 굳이 적지 않을 생각이다. 


하지만 독일 사회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나라 전체를 놓고 보면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극우파의 득세, 난민/이민자의 증가로 인한 사회적 갈등, 인종차별, 등등. 독일에 왔다가 예상치 못 한 것들에 질려 1년도 안 되어 돌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예전에 알던 지인은 유럽에서는 모든 집의 형광등이 다 노랗다고. 그 누르스름한 불빛을 보는 게 너무나 지겹고 짜증난다 했다. 아마 외국에 잠시라도 살아본 사람이라면 피로해진 나머지 모든 게 다 짜증스럽게만 느껴지는 저 마음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결국에는 '어떤 것이 더 즐겁게 견딜만 한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연애와 비슷하게, 적당한 때에 자기가 편하게 느끼는 공간을 찾는 게 중요한 것 같기도 하다. 꼭 나라를 떠나지 않아도 자기를 맞는 곳에 가져다 놓을 방법은 많다. 스스로 알아서 그 방법을 찾고 어느 정도는 자신과 타협을 하면 된다.

모두가 마스크를 쓰지 않던 시절, 올 2월에 다녀왔던 프라하의 야경

독일에 온 지 1년이 넘은 언젠가, 내가 더 이상 비행기를 쳐다보지 사실을 깨달았다. 머리 속에 다음 여행 계획도 없다. 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언제나 행복하다. 왜냐하면 내가 가장 편안한, 집으로 가는 중이니까. 


바다 위에 뜬 무지개를 찾으러 떠난 여행의 끝에, 당연히 파라다이스는 없었지만 우연히 내 집을 찾게 되었다. 우선은 이걸로 만족이다. 

북독일의 도시, 뤼벡
엘츠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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