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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n Mar 11. 2021

생리컵 한 번 써볼까?

나의 첫 생리컵 도전기

우선 나의 생리컵 체험기를 공유하기에 앞서서 이것부터 말해두고 싶다.


일회용 생리대는 생리를 가장 찝찝하고 힘들게 하는 데에
더 없이 적합한 수단이라는 점


생리대에서 벗어나면 앉을 때마다 스믈스믈 올라오는 찝찝한 냄새, 늘 어딘가 축축하고 새는 느낌, 뭔가가 안에서 울컥울컥 쏟아져 나오는 괴로움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 식약처의 2017년 조사에 따르면 80%의 여성이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한다고 답했다. 나는 이 여자들을 일일히 따라다니며 손에 탐폰을 쥐어주고 싶은 심정이다. 


탐폰과 같은 삽입형을 사용하면 생리가 밖으로 흘러나오는 일이 없기에 아무 냄새도 없고, 기분 나쁜 축축함이 사라진다. 혹시 브런치가 이 글을 부적절하다고 자르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더 적나라하게 설명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 탐폰을 쓴 뒤로는 가끔 생리 중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왜 허리가 뻐근하지?'라고 생각할 정도. 내가 패드를 쓰는 건 생리 마지막날 뿐이다.

사진 찍으려 화장실에서 급히 꺼내온 오버나이트, 수퍼, 일반, 미니 탐폰. 제일 큰 사이즈가 새끼손가락 크기 정도.


독일의 14-60세 여자들을 대상으로 한 통계에 따르면 71%가 탐폰을, 15%는 생리컵을 사용한다고 한다. 71%라는 수치도 체감 상 너무 낮게 느껴질 정도로 독일에서는 탐폰 사용이 일반적이다. 


탐폰은 무서운 게 아니다. 눈썹 털을 정리하려고 족집게를 들 용기가 있다면 충분히 탐폰도 쓸 수 있다. 눈썹털이 뽑힐 때의 1/1000만큼도 아프지 않다는 뜻이다. 생리 마지막 즈음 건조해질 때가 아니라면 삽입할 때 아~무런 느낌도 없다. 착용감이 불편하다면 맞는 위치까지 넣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에 정확히 넣어두기만 하면 걷든 뛰든 춤을 추든 어떤 이물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탐폰을 넣어두고 빼는 걸 잊어버리는 게 문제이자 단점으로 작용할 정도로 느낌이 없다. 


내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보고 그게 맞게 적절한 생리용품을 사용하는 건 무서울 일이 아니다. 많은 여자들이 스스로의 몸을 수동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자신의 몸인데도 생리용품 넣는 과정을 어색하게 느끼는데, 이 단계만 넘기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색색깔 생리컵. 모으려고 한 건 아닌데 어쩌다보니 3개가 되었다.

그럼 탐폰을 잘 쓰다가 굳이 생리컵으로 바꾸었다는, 이 글의 본론으로 들어가봐야겠다. 탐폰은 3시간~5시간에 한 번씩은 교체를 해야하고 화장실을 다녀오면 무조건 갈아주는 게 좋기에 하루 사용량이 많은 편이다. 나는 환경보호와 귀찮음의 문제로 탐폰의 대체제를 찾아야겠다고 마음 먹었고 어느 날 친구네 집 화장실에서 생리컵을 보고 갑자기 도전을 결심했다. 


생리컵은 말랑말랑한 의료용 실리콘 재질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입구를 구겨서 넣으면 안에서 자동으로 펴지고, 밀폐상태(진공상태?)가 되면서 생리가 밖으로 흐르지 않은 채 컵 안에 모이는 원리다. 한 번 쓰면 2년까지도 사용이 가능하다.


독일은 생리컵이 꽤나 대중적이기에 아무 드럭스토어나 슈퍼마켓에 가면 살 수 있다. 20대 여성들 사이에선 사용률이 25%에 다다른다. 우리동네 드럭스토어에는 5개 쯤 되는 브랜드에서 크기 별로 내놓은 생리컵이 꽤 여러 개였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스몰 사이즈, 미디움 사이즈로 2개를 사왔다. 결과는 실패.


셀레나 컵 M 사이즈. 나한테는 너무 짧았다.
실패라는 게 무슨 뜻이냐면,...

모든 여자들은 자궁 경부의 길이와 크기가 다르다. 알고보니 나는 꽤나 긴 자궁 경부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산 컵들은 공교롭게도 길이가 짧아서 잘 맞지 않아 생리가 계속 밖으로 새는 처참한 결과가 발생했다.


유투브와 구글로 정보를 찾아본 결과 긴 생리컵을 사는 게 맞다는 결론을 내렸고 심기일전해서 드럭스토어를 다시 찾았다. 


이 과정에서 자궁경부를 재는 방법을 보여주는 용기있는 여자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Einhorn 생리컵 M 사이즈. 

그리고 사진 속 노란색 생리컵에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내가 사용하는 건 독일의 스타트업(이라고 하기엔 이제 너무나 커져가는) Einhorn이라는 회사에서 만든 제품이다.


질감이나 크기, 길이, 심지어 포장지까지 너무 내 취향이라서 아주 만족하면서 쓰고 있다. 8~10시간 동안 교체를 하지 않고도 생리가 한 방울도 새지 않다니.


사실 생리컵을 고르는 과정, 장단점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글이 끝도 없이 길어질 수 있지만, 오늘의 목적은 이 이야기를 읽은 누군가라도 삽입형 생리용품에 대한 두려움을 접고 스스로의 몸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데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것이었으므로 이만 줄이려고 한다.


원래는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의미로 써보려고 했는데 최근에 너무 게을러진 관계로 글이 늦어졌다. 쓰고 싶은 건 많은데 손이 안 따라주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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