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날씨가 좋았다. 요즘 미세먼지가 심하다고 들었는데 다행히 밖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오늘도 미세먼지 농도가 좋음이었다. 독일은 미세먼지가 한국만큼 심하지 않아서 미세먼지 농도가 좋은지 나쁜지 신경 써 본 적이 없다. 매일 미세 먼지 농도를 신경 써야 하다니 조금 귀찮을 것 같기도 하다.
아침에 지유랑 같이 헬스장에 갔다가 12시 전에 광장 시장으로 출발했다. 우리는 한국에 오기 전부터 시장에 가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시장에 가서 신선한 나물도 사고 반찬도 사고 맛있는 시장 음식 먹을 수 있기를 말이다. 언제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옛날에 한 번 광장 시장에 들러 본 적이 있다. 시장을 열심히 돌아다녔던 기억은 없고 뭔가 구제 옷을 사러 갔던 기억만 있다. 그래서 광장 시장을 정말 제대로 경험해 본 적은 없다. 나는 한국 사람이라서 광장 시장은 한국에 여행을 오는 외국인들만 가는 곳이라고 생각했는지, 그때는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떻게 이렇게 한국에 친구들과 와서 한국을 여행하게 되고 다시 시장에도 가 보게 되다니 사람 일은 정말 모르는 것 같다.
사진 1. 광진구민 체육센터에는 일일 이용이 가능한 조그만한 헬스장이 있다.
광장 시장으로 가는 길목에서부터 사람들이 많았다. 토요일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시장에 오는 한국인들도 많은 것 같았다. 네이버 앱이 제대로 화살표 표시를 보여주지 않아서 잠깐 헤맬 뻔했지만 많은 인파가 향하는 곳이 시장으로 가는 길이겠구나 하고 따라가서 문제가 될 건 없었다. 우리가 들어선 곳은 메인 입구는 아닌 것 같았다.
사진 2. 우리가 들어선 입구를 좀 지나면 천 가게들이 나온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입구 바로 앞에는 음식을 파는 포장마차들이 쭉 들어서 있는데 우리가 처음 본 것들은 천들이었다. 침구, 한복, 옷 그리고 엄청나게 다양한 종류의 천들. 일렬로 쭉 늘어선 가게들에서 비슷한 물건들을 파는 게 신기했다. 어차피 가격도 다 비슷할 테니 그럼 진짜 어디서 물건을 사도 상관없는 것일까? 결정하는데 오래 걸리는 사람들에게 극악 난이도의 문제가 주어진 것은 아닌지…
사진 3. 천 가게들.
가끔 가다 나오는 표지판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먹거리 존이라고 쓰여진 방향으로 계속 걷다 보니 와글와글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음식을 파는 곳이 나왔다.
사진 4. 드디어 나온 포장마차들.
중간에 음식을 파는 포장마차들이 있었고 그 양 옆으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이 있었다. 길들은 여러 국가에서 온 사람들과 대부분의 한국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굉장히 시끄러웠고 복잡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지나서 괜찮은 포장마차를 찾으려니 걱정이 앞섰다. 원래는 떡볶이와 김밥 같은 걸 먹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우리가 지나다니는 곳에 떡볶이는 아예 없었고 칼국수와 만둣국, 회, 비빔밥을 많이 팔았다. 그러다 한국에서만 먹을 수 있는 나물과 야채를 넣은 비빔밥을 보고 무조건 친구들과 같이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비빔밥을 먹을 수 있는 포장마차에 자리가 났다.
사진 5. 주인 아주머니께서 요리할 때 넣는 만두와 야채들(오른쪽), 가게에 위에 걸려 있던 휴지(왼쪽).
우리는 비빔밥과 잔치국수 그리고 꼬마 김밥을 하나씩 시켰다. 친구들은 비빔밥을 제일 맛있어했다. 그리고 사실 나한테도 비빔밥이 제일 맛있었다. 역시 한국식으로 무치고 간을 한 나물과 야채를 넣은 비빔밥은 모든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인 것 같다. 잔치국수도 맛있었는데 비빔밥을 다들 넘사벽으로 좋아해서 비교적 인기가 떨어졌다. 마지막으로 조금 남은 잔치국수는 내가 다 먹고, 비빔밥은 칼리가, 꼬마 김밥은 지유가 다 먹었다.
사진 6. 비빔밥과 꼬마 김밥(왼쪽)과 잔치국수(오른쪽).
점심을 다 먹고 반찬과 나물을 사기 위해 시장을 더 둘러보기 시작했다. 한 길로 들어서자 떡볶이와 순대를 파는 포장마차들이 줄 지어 있었다. 여기로 왔으면 떡볶이를 분명 점심으로 먹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온 길에 비빔밥이 있어서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가는 길에 호두과자를 팔았다. 칼리와 지유는 팥이 들어간 간식을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듯 호두과자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호두과자에 호두가 너무 작게 들어 있어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맛있었다.
사진 7. 호두과자를 팔던 포장마차.
길은 다 끝나가는데 반찬을 파는 가게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음식이 놓인 쟁반을 지고 가던 한 아주머니께 반찬 가게의 위치를 물어봤다. 반찬 가게는 우리가 갔던 곳의 반대 방향에 있었다. 가르쳐 주신 길을 잘 찾을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제대로 된 길을 찾을 수 있었다. 한창 두릅이 나오는 철인지 두릅을 파는 할머니도 계셨다. 두릅이 정말 먹고 싶었어서 두릅 한 바구니를 샀다. 가던 길에는 또 인절미와 약과도 팔아서 한번 먹어 볼 겸으로 샀다.
사진 8. 두릅과 나물(오른쪽) 약과(왼쪽).
그리고 그 길에서 마지막으로 반찬 가게를 들렸다. 진미채와 멸치 그리고 깻잎을 살 요량이었는데 오천 원어치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앞에 계신 할머니께 혹시 세 가지를 조금씩 따로따로 살 수 없냐고 여쭤 봤는데 할머니가 내 뒤에 있는 친구들을 보시더니 갑자기 조용히 손을 들어 반찬들을 조금씩 집어 봉지에 넣기 시작하셨다. 그러고선 나에게 지금 여기서 먹어 보고 맘에 드는 것으로 구매하라며 봉지를 건넸다. 그 결과로 우리는 깻잎을 샀다. 반찬을 사고 나서 우리는 갑자기 받은 호의가 얼떨떨해서 계속 놀라워했다. 먹어 보라고 건네 준 반찬도 조그만한 양이 아니었기에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알고 보니 조용히 손으로 반찬을 담아 건네 준 그 할머니는 그 가게를 여신 할머니셨다. 가게 간판에 할머니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시식용으로 반찬을 우리에게 줄 수 있었던 거였구나 하고 수긍이 됐다.
사진 9. 깻잎을 산 반찬 가게. (왼쪽에 서 계신 분이 가게를 여신 할머님).
또 마지막으로는 참외를 샀다. 지나가다 포장된 참외 두 개를 팔길래 사려고 했다. 참외를 들고 가게 주인에게 건네는데 가게 주인이 내 뒤의 친구들을 보더니 갑자기 그걸 사지 말고 다른 것으로 사라고 얘기를 했다. 가격은 조금 더 비싸지만 맛은 이게 더 좋다는 것이다. 외국 친구들이 한국에 와서 과일을 먹어 보고 맛이 없으면 안된다나… 그래서 조그만 참외 다섯 개가 들어 있는 봉지를 샀다. 한국인으로서 느껴 볼 수 없었던 외국인들을 향한 호의를 이렇게 직접 겪어 보다니 참으로 신기했다.
다시 광장 시장 이불과 천 가게들을 지나 밖으로 나왔다. 시장 바로 주변에는 청계천이 있어서 날이 좋아 좀 걸을 겸 소화도 시킬 겸 산책로를 걸었다. 해가 너무 따뜻해서 우리는 물가 바로 앞에 앉아서 (인절미를 곁들여) 도란도란 얘기를 나눴다. 광장 시장을 둘러보는 많은 사람도 인상적이었지만 많은 가게들과 줄지어 늘어져 같은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 인상적이었다는 얘기를 했다. 참 정신이 없으면서도 재밌는 곳이라는 말도. 참고로 인절미를 먹고 난 뒤 칼리는 남은 인절미 가루를 나중에 먹겠다고 떡을 감쌌던 랩에 가루를 잘 싸서 숙소에 가져왔다.
사진 10. 광장 시장 바로 옆에 있던 청계천.
근처에 동대문 플라자도 있어 들러 봤다. 건물 모양이 정말 특이하고 신기했다. 곡선 모양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사진 11. 동대문 플라자 건물 파노라마 샷.
동대문 시장도 있다고 들어서 시장에도 가봤으나 옷을 파는 곳을 발견하지 못했다. 우리가 갔던 곳은 신발만 파는 곳이어서 신발만 잔뜩 구경하다가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요리하기 귀찮은 저녁이라 저녁으로 떡볶이를 시켰다. 주문을 해서 떡볶이를 먹을 수 있다니 드디어 정말 한국에 왔다는 게 실감이 났다. 떡볶이를 시킬 때 순한 맛으로 시켜야 할지 아니면 오리지널 맛으로 시켜야 할지 잠깐 고민이 됐었다. 나는 친구들을 위해 순한 맛으로 시키려고 했지만 친구들은 매운 것을 잘 먹는다며, 매워도 한국에 왔으니 한국의 매운 맛을 경험해 보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더 글로리를 보면서 떡볶이를 먹었는데 결국 나만 입으로 씁 소리를 내며 맵다고 했다. 순한 맛을 시키고 싶었던 것은 친구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한 나의 본능이 외치는 소리였나 보다. 그래도 떡볶이는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