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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이야기 Aug 02. 2020

빨간색과 분홍색을 닮은 내 친구

#나미래의 詩詩한 일상 이야기, 꽃 이야기, 화분 이야기, 정원 이야기


분홍색과 붉은색의 꽃을 샀다. 좁쌀이 모여 있는 듯한 앙증맞은 '만다벨라'라는 꽃을. 그리고 조금 일찍 개화를 시작한 분홍과 붉은 계열의 작은 국화들을. 무덥고 습한 이 여름이 지나가면 가을에 개화하는 꽃들을 우리 집 정원에서도 만날 수 있지만, 집에 없는 녀석들을 화분에 심어 앞뜰에 두니 기분이 참 좋아진다.

 

앞뜰에 만다벨라와 분홍 국화꽃을 올려두었다.


올여름은 코로나로 어디에도 가지 못하고 집에 있는 신세가 되었지만, 나름 사브작 사브작 작은 시간들을 쪼개 잘 보내고 있다. 오래전부터 나는 친구나 지인들 사이에서 '성격이 좋은 사람'으로 통했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 가끔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공간에서 지낼 때는 내면에선 어느새 예민해지고 까다롭게 굴 때가 많아진다. 굳이 그것을 밖에선 표시하지 않으려 기에 혼자서 감정 기복이 심한 힘든 성격은 집에서 표출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하는 아들과 요즘 많이 부딪히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리 모자는 제법 서로 기가 맞을 때가 더 많다. 십 년 단위로 끊어서 지나온 일들을 가끔 생각할 때가 있는데 이 계절에 생일을 맞는 한 친구가 기억난다. 우연치 않게 아들과 대화를 주고받다 그 친구와의 추억을 잠깐 소환할 수 있었으니.



최근 온라인으로 모 기관의 과학 탐구를 하고 있는 아들이 아침 댓바람부터 입이 심하게 나와 있었다.


"엄마! 샘이 집중 수업 때 조언해 준 내용 있잖아요. 이전 내용에 덧붙여 카페에 올렸는데 전에 거랑 달라진 게 없다며 다시 쓰래요. "

"뭔 소리야?"

"각 항목마다 조언해준 거 한 줄씩 정도 적었는데 다시 쓰래. 괜히 지난주에 실험까지 해버려서 그런가. 천천히 할 걸. 다른 친구들은 이제 실험하려고 하던데요."

"한 줄만 써서 양이 너무 적어서 그런 거 아녀? 다시 쓰겠다고 댓글에 답 달아. 그리고 얼른 다시 써야지 뭐. 아님 다시 질문해 봐. 더 어떻게 써야 하냐고."


아들은 믿기지 않는다며, '더 이상 어떻게 써야 하지?'의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드바이스 해준 내용을 반영해서 분명 썼는데 뭐가 부족했다는 거야?"며 조용히 해당 카페에 들어간 모양이다. '에휴'하는 탄성이 들린다. 사실 엄마 찬스로 조금 봐줄 수도 있었는데 나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어설프게 해결해도 혼자서 알아서 했으면 했다. 평소, 아들에게 과제의 조언을 하면 대부분 잔소리로 여기고 말을 잘 듣지도 않는다. 꼭 이렇게 위급한 상황일 땐 내게 징징거리며 기대는 게 못내 탐탁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정원 대문 앞뜰과 현관문 앞에 화원에서 사온 붉은 계열의 꽃을 올려두었다.


아들이 엄마를 급하게 불러댄다. 작성할 때부터 컴퓨터가 버벅 거려 내용이 저장이 되지 않았나 보다. 그걸 그대로 경과 보고서에 올렸으니 지적을 받았던 것이 당연했다. 이런 일 허다하지 않은가. 인간이 기계문명의 꽃을 피워놓고도 그 기계에 대실망을 할 때가 왕왕 발생하는 것은 다반사다.


평소 나라면 흥분 지수가 올라 잘했네 못했네 논쟁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들 기분과 내 기분 건드리지 않고 참 잘 대처하고 있었다. '글을 한 줄씩만 써서 그런 거 아녀?'라는 저렴하지만 쌈박한 답을 제시하다니. 이런 새로운 나도 발견하게 된다(웃음).



오래전, 친구 집에 얹혀 살 때가 있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과 생각보다 잘 지내지 못하고 한 공간에서 오래 살지 못하는 그런 류의 사람이다. 긴장하면서, 실수하지 않으려, 배려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부담을 늘 안고 있어 스스로 유연하지 못할 때가 많다. 친구 집에 더부살이를 했었던 시기였으니 자존감이 낮아질 대로 낮아진 시기이기도 했다.


빨간색과 분홍색의 그 언저리 색을 닮았던 그 친구. 함께 살던 친구들을 재우고 그녀는 새벽까지 잠 못 이루며 과제물을 작성하던 중이었다. 옆에서 잠을 자던 내가 컴퓨터 플러그를 몸으로 잘못 건드렸던 모양이다. 그 때문에 작성하고 있었던 보고서 자료를 저장하기도 전(예전에는 수시로 직접 저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컴퓨터 시스템이었다. 요즘에는 자동으로 몇 분 간격으로 저장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에 날려보내야 했던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대책없이 당해버린 사건에 그 친구는 너무 놀랐던지 '악'하는 소리를 몇 번 뱉어내는 정도였다.


가족이 아닌 친구였기에 더 아픈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삭여야 했던 친구의 그 새벽녘 일화가 아프게 꽂힌다. 가톨릭 교회의 성도자가 된 친구가 많이 생각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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