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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후 May 07. 2018

25. 주유소 아르바이트 권고사직

중산층 진입 실패의 르포르타주 - 취준생 바보 아빠

편입은 운이 좋았습니다.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쨌든 합격은 했는데, 학비가 막막했습니다. 돈 문제는 운으로 해결되는게 아니라는 걸 새삼스레 느꼈습니다. 돈은 참으로 냉정해서, 없으면 그냥 없는 것이더군요. 주머니나 서랍, 방바닥을 뒤진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근근이 버티던 보험을 해지하고, 아직까지 유효한 신용카드로 입학금을 마련했습니다. 농담처럼 말하곤 했던 보험사, 카드사에게 돈 벌어주는 방법을 몸소 실천한 셈이었습니다.      


잠잘 곳은 답이 없어서 계속 혁이에게 신세를 졌습니다. 혁이도 저와의 동거가 무척 힘들었을 겁니다. 저는 아무것도, 정말 작은 돈도 쓸 여유가 없었기에 저녁마다 혁이의 퇴근 만을 기다렸습니다. 혁이가 오면 우리는 없는 반찬에 되는 대로 밥을 지어먹거나 종종 라면을 끓여 먹었습니다. 회사에서 회식이 있어서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혁이는 김밥을 사 왔습니다. 그 김밥을 건네며 저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같이 건네는 혁이에게 제가 무슨 염치가 있어서 어떤 말을 할 수가 있을까요? 저는 그냥 ‘같이 먹자’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새벽같이 출근을 할 때, 여전히 방바닥에 뒹구는 저를 어떻게 바라보았을까요? 추측하건대, 우리는 서로를 부러워했던 것 같습니다. 혁이는 하루 편히 쉬고 싶었겠지요. 저는 출근하는 혁이가 저이길 바랬습니다.     


하루는 혁이가 양복을 사러 같이 가자고 해서 함께 명동에 나갔습니다. 혁이는 대기업 계열의 호텔에 다녔지만 평소 옷차림에 신경을 쓰는 타입은 아니었습니다. 제 모양새는 당연히 남루했고요. 그런 꼴로 어느 양복 매장에 들어갔는데, 우리를 대하는 남자 직원의 태도가 영 아닌 게 느껴졌습니다. 그가 말쑥하게 차려입은 정장만큼이나 그의 사람 무시하는 태도가 눈에 보이더군요. 등급 매기는 것을 끝낸 눈빛과 건성으로 하는 말, 그리고 건들거리는 행동이 너무 티가 났습니다. 혁이도 똑같이 느꼈는지 나오자마자 화를 냈습니다.  

 “야, 기분 나쁘지 않냐? 사실 우리가 저 회사에 취직했으면 우리 밑에 있을 애들 아니냐?”  

저는 말없이 눈을 껌벅거렸습니다.     


주유소 사장님 앞에서도 저는 그렇게 눈을 껌벅거렸습니다.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사장님은 제게 은행 입금도 맡기실 만큼 신뢰를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두 달이 채 안되었을 때 사장님은 사무실 안 쪽으로 저를 부르고서는 다른 일을 알아보라고 하셨습니다.   

 “주유소 알바가 유일한 일자리인 사람들도 있어. 자넨 그렇지 않잖아.”    


그렇게 말씀을 하시며 사장님은 사무실 밖의 다른 주유원들에게 눈길을 돌리셨습니다. 비어 있는 이가 서너 개였던, 저보다 나이가 많은 형은 한쪽 팔이 팔꿈치부터 살짝 꺾여 있었고, 나이가 어린 동생은 유난히 얼룩덜룩한 얼굴에 상처가 많았습니다. 그는 뇌전증, 이른바 간질을 앓고 있었는데, 그래서 일하는 와중에 종종 주유소 바닥에 쓰러져서 얼굴에 생채기를 더했습니다. 그들을 바라보며, 그리고 사람들이 쉽게 내벹는 '사지가 멀쩡한데..., '라는 말 앞에서 저는 말없이 눈을 껌벅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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