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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후 May 18. 2018

26. 과외에 절은 과외 학생

중산층 진입 실패의 르포르타주 - 취준생 바보 아빠

주유소를 그만둔 저는 과외를 구했습니다.


지하철 3호선을 타고 홍제역에 내려서 십 분 정도 걸어 올라가자 아파트 단지가 보였습니다. 통로 입구에서 아파트 호수 번호를 누르니 스피커로 남학생 목소리가 똑똑을 넘어서 똘똘하게 들려오더군요. 입구 문이 열리고 십여 층을 올라갔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미리 나와서 저를 기다리고 있는 그 학생이 보였습니다. 그 학생은 똘똘이 스머프처럼 생겼었는데 이름은 훈이였습니다. 훈이는 꾸벅하고 인사를 깊게 하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들어가세요.”  

저는 학생이 열어 준 현관문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과외를 할머니 방에서 해요. 이 방으로 들어가시면 돼요.”  

저는 학생이 열어 준 작은 방문으로 들어갔습니다. 할머니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래, 알았다.”    


잠시 후 훈이는 제법 비싸 보이는 넓은 교자상을 가지고 와서 방에다 폈습니다. 그 위에다 공부할 교재와 문제집 등을 차곡차곡 얹어 놓다가 가만히 서있던 저를 보더니 급하게 방석을 하나 들고 왔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선생님. 어서 앉으세요.”  

그리고 다시 방을 나가더니 방석 하나를 더 가지고 들어오더군요. 훈이는 제 맞은편에 자기 방석을 놓고서는 마치 혼이라도 나는 것처럼 그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편하게 앉지 그러니?”  

“저는 원래 예전부터 이렇게 앉아서 과외를 했어요.”  

“과외를 언제부터 했는데?”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했어요.”  

그때 훈이는 중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훈이은 그 자세로 두 시간을 넘어 세 시간 동안 수업을 들었습니다. 마주 보며 가르치는 저도 불편했는데, 그 아이는 어떻게 그 자세로 세 시간을 버텼을까요? 화장실을 자주 갈지언정 훈이는 결코 자세를 흩트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영어를 가르쳤는데, 저 말고도 국어와 수학 선생님이 따로 계셨습니다. 바쁘신 훈이 부모님은 집에 계시는 시간이 적었고, 이렇게 훈이는 과외 선생님들과 지난 몇 년간 공부를 해 온 것이었습니다. 동대문에서 장사를 하신다는 훈이의 부모님은 그날 뵐 수가 없었습니다.    


첫 수업은 참 잊기 어려운 수업이었는데, 두 번째 수업은 더 잊기 어려웠습니다. 잊기도 어렵고 정말 믿기도 어려운 수업이었습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문은 첫 수업 때처럼 열렸습니다만 훈이는 미리 나와서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현관 벨을 누르자 ‘잠시만요!’하는 외침이 들려올 뿐, 훈이는 저를 그렇게 그냥 세워두었습니다. 현관문은 5분 정도 지났을 무렵 열렸습니다.  

“선생님, 오늘은 제 방으로 들어가시면 돼요.”  

훈이는 금세 등을 보이고 화장실로 사라졌습니다.    


훈이의 방에는 일반 책상과 컴퓨터 책상이 ‘기억’ 자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일반 책상 앞에 앉으니 화장실에서 돌아온 훈이는 컴퓨터 책상 앞에 앉자마자 마우스를 흔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있잖아요, 우리가 지난번에 같이 수업을 했잖아요. 제가 엄마에게 말씀을 드렸어요. 선생님 진짜 잘 가르친다고요. 제가 지금껏 배운 선생님 중에 최고라고요. 그렇게 말씀드렸으니까 됐죠? 이제 놀죠. 저는 제 할 일 할 테니까, 선생님은 선생님 할 일 하세요. 그러시면 돼요.”    


어떻게 이런 말을 그렇게 공손하게 말할 수 있을까요? 그 시간 이후 훈이는 통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과외를 하면서, 사실상 그 집을 그냥 들락날락하면서 저는 열심히 컴퓨터 게임에만 몰두하는 훈이를 지켜볼 뿐이었습니다. 신기하게도 훈이는 게임을 하면서 가끔씩 공부와 관련된 질문을 툭툭 던지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역시 신기하게도 훈이의 성적은 너무 잘 나왔습니다.     


몇 개월 후 결국 저는 불편한 맘을 견디지 못하고 과외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리고 또 몇 달이 지나 다른 선생님으로부터 훈이의 비결을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커닝이었습니다. 반 1등부터 5등까지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그리고 조직적으로 저지른 커닝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너는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니?'라며 꾸중을 많이 들었습니다. 훈이 얘기를 들으며 저는 이런 걱정이 들더군요.

'그 아이들은 커서 어떤 일을 함께 도모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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