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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후 Dec 15. 2018

33. 직장인 독서 모임

중산층 진입 실패의 르포르타주 - 취준생  바보 아빠

실적에 대한 압박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하루하루가 벅찼지만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은 정신적, 경제적 안정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새 학년이 되면 새로운 친구들이 생기듯이 회사에서도 흉금을 털어놓을 동기들이 생겼고 그중 네 명이 모여서 독서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동기 중 맏형 뻘인 정수형이 모임을 주도했는데, 우리는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같이 책을 읽고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모임의 콘텐츠는 다양하고 풍요로워졌습니다. 책과 이야기에 먹거리 탐방이 더해지고, 함께 여행을 간다거나 같이 무엇을 배워보면서 ‘학교 밖 견문’을 넓혀갔습니다. 역사, 경제, 문화, 과학 등 여러 주제를 번갈아 가며 책을 읽었는데, 가령 <신의 물방울> 같은 만화책을 볼 때면 와인도 같이 마셔보고, <커피의 역사> 같은 책을 읽을 때는 부암동의 찻집을 일부러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모임 덕분에 청평에서 수상 스키도 배워보고, 안동 만휴정의 시내 소리도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해가 거듭되면서 독서 모임은 삶의 한 부분으로 안착되었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자취를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인터넷 포털에 카페를 만들어서 책 목록 정도만 간략히 기록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모임의 2차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몇몇 분들의 참가 신청이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다른 분야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읽는 것, 이야기 나누는 것, 가서 보는 것, 함께 먹는 것, 이런 것들이 한 해 한 해 쌓여 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우리의 ‘살아감’이 나무의 나이테 같이 잘 정돈되어 가길 바랬습니다. 먼 훗날이 되었을 때, 추억이 없는 것처럼 공허한 것이 없다고 하지요? 서로를 감싸주는 장미꽃잎처럼 서로의 시간을 감싸준 우리들은 베니스의 상인이 말했듯 ‘여름이면 더워지고 겨울이면 추워지는 평범한 사람’이었고, 우리의 독서 모임은 그런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행복을 갈망한 것이었습니다.




모임에는 한 가지 규칙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한 줄이라도 독후감이나 감상문을 써서 나누었습니다. 그런 탓에 영화를 보고 나름의 느낀 바를 인터넷에 올리곤 했습니다. '공감하기에' 세상은 참 좋아졌습니다.



호우시절: 그 시절(時節), 그 시절(詩節) 속에 그대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을 살펴보면 

정규분포의 평균이 어디인가를 논하는 것은 의미 없어 보입니다. 

관객의 연령에 따라서, 그리고 성별에 따라서도 호불호(好不好)가 나뉘어질 듯하네요.


시절은 30대의 어느 날입니다. 

지나치게 잔잔하다는 의견이 있습니다만, 그러나 30대의 사랑은 그만큼 조심스럽습니다. 

재회는 더욱 그렇습니다. 

맑은 대숲을 걷고, 시(時)와 시(詩)를 얘기하고, 

가만히 손을 잡아보거나 조금 더 마음을 표현해 보는 게 전부 인 사랑에는 

겉보기와는 다른 긴장감이 있습니다. 

20대는 공감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는 의견도 있던데, 그 의견에 공감합니다.


시절은 초록과 연두를 구분하라고 하네요. 

극복하지 못할 게 없는 사랑은 짙은 청춘의 전유물입니다. 

동하(정우성) 와 메이(고원원)가 보여주는 연둣빛 감정 교차에는 

더 이상의 덧칠이 그림을 탁하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어려있습니다. 

미소년과 미소녀의 잔상이 가득한 두 사람의 눈빛은 시절을 버거워합니다.


양분된 감상평에도 불구하고, 

주재원으로 고생하는 지사장(김상호)의 애달픈 타향살이에는 모두들 공감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 눈치 없는 사람 아닙니다. 이거 한 잔만 하고 일어서겠습니다"라는 표현에는 

클리셰라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너무나 진솔한 우리의 인생이 담겨 있습니다. 

그만큼 "저 말하는 저 심정, 내 다 알지"라고 말하기도 조심스럽습니다. 

어찌 다 알 수 있겠습니까? 동하와 메이의 입장도 그렇습니다.


두보가 호우지시절(好雨知時節)이라 읊었다지요? 

동하는 "Not today"라고 답하고, 메이는 눈물을 흘리며 그 비를 맞습니다. 

시절과 그 시절을 살아가는 사람이 

때를 알고 내리는 비와 때를 알고도 흘려야 하는 눈물이 되어 서로 만나네요. 

사랑, 그 끝나지 않는 이야기가 또다시 들려옵니다.


  그리워하면 언젠간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루어져 가기를

  힘겨워 한 날에 너를 지킬 수 없었던 

  아름다운 시절 속에 머문 그대여...

  - 부활, <Never Ending Story>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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