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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니 Oct 02. 2022

나의 오래된 피아노

어릴 적 내 방 한편에는 피아노가 있었다. 중학교 때 아빠가 시집갈 때 가져가라며 사준 피아노였다. 나는 그 말이 정말 좋았다. 앞으로 내 인생을 함께할 소중한 상징 같았다. 나는 어찌나 좋았던지 그리 크지 않은 내 방에 억지로 피아노를 넣어놨다. 그러곤 주말마다 피아노를 쳤다. 말할 수 없는 비밀과 베토벤 바이러스를 보고는 얼른 다음날이 돼서 그곳에 나오는 피아노 곡을 연주해보고 싶은 마음에 들떴다.


스무 살이 되고 타지로 대학교를 다니며 친구들과 놀기 바빴던 나는 피아노를 치는 일이 거의 없었다. 피아노 위에는 악보 대신 화장품이 쌓였고 피아노 의자에는 옷들이 쌓여갔다. 그러다 크게 다쳐 밖에 잘 나가지 않게 된 나는 다시 피아노를 치며 그 시간들을 보냈다.


그런데 몇 번 이사를 하게 되자 부모님은 더 이상 피아노를 가져갈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친척 집에 맡겨 놓으면 독립할 때 가져가겠다며 떼를 썼지만 결국 아빠는 피아노를 중고로 팔아 버렸다. 시집갈 때 가져가라는 말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애써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트럭에 실리는 피아노를 보며 어찌나 슬프던지 그 감정은 소중한 것을 떠나보내야 하는 애석함이었고 믿었던 약속에 대한 원망이었다.


아직도 피아노를 생각하면 뭉클한 기분이 든다. 다시 찾을 수 있다면 찾고 싶을 정도다. 나는 왜 이렇게 사물에 정을 쏟을까 싶을 때가 있지만 피아노는 나에게 그냥 피아노가 아니었다. 그건 내 꿈이었고 기쁨이었고 위로였고 약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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