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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연 Sep 30. 2023

노부부의 작은 바(bar)

회사 근처에는 작은 바가 하나 있다. 언젠가 근처를 지나는데 눈에 띄는 가게 하나가 보였다. 나는 호기심에 발길을 멈췄다. 창문에는 존 레논과 콜드플레이, 영화 택시 드라이버와 같은 포스터들이 붙어있었다. 빨간색 커튼 뒤로 보랏빛 조명이 흘러나왔다. 집에 돌아와 찾아보니 그곳은 일주일에 한 번 영화를 상영해 주는 바였다.


하루는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남성이 빗자루를 들고 가게 앞을 쓸고 있었다. 아무래도 바의 사장님 같았다. 편견이겠지만, 이런 감성적인 바의 주인이 노년의 남성이라니. 나는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곳에 더욱 관심이 갔다. 나는 사장님에게 가게 오픈 전인지 물었다. 사장님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는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 후로 수개월이 지났던 것 같다. 영화 상영을 하는 날 방문해 보겠다는 다짐은 여러 이유들로 인해 미뤄지고 무산되었다. 그리고 그날 무슨 결심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주에는 꼭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결심을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조금 어색한 마음을 안고 방문한 그곳에는 사장님이 분주히 움직이고 계셨다. 사장님은 영화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며 나를 반겨주었다. 한참 영화를 보고 있는데 사장님의 아내로 보이는 사람이 들어왔다. 그분은 자연스럽게 바에 앉아 영화를 감상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웃기도 하고 탄식하기도 하면서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영화를 감상했다. 영화를 사랑하는 노부부의 작은 바라니 너무나 낭만적이었다.


사장님이 연로하시다 보니 주문이 늦게 나오기도 하고 주문을 잊어버리시기도 했다. 그렇지만 모든 게 빠르게 돌아가는, 조금의 손해도 견디지 못하는 사회 속에서 가끔은 이런 기다림과 여유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상영 영화는 내 사랑(2017). 예술가 모드 루이스의 인생과 사랑 이야기였다. 대부분 배경이 오로지 집인 정적이고 잔잔한 영화였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리뷰를 찾아보는데, 내 방식대로 그들을 이해하려 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는 글이 있었다. 주인공들의 인생을, 또는 누군가의 인생을 내 방식대로 평가하고 이해하려 하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았다.


영화의 막바지 사장님은 다른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마지막은 다 저렇게 가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주인공의 마지막 모습을 되뇌었다. 삶이란, 아름답지만은 않지만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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