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대한 낯설고 익살맞은 이야기.
어렸을 때 서점에 갈 때면 아버지께서 내 책은 내가 고를 수 있게 해 주셨다. 물론 이상한 책을 고르면 두고두고 놀리기는 하셨지만 일단은 다 사주셨다. 내가 고른 물건이 주는 즐거움은 그 자극이 작지 않았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기억은 아무리 작은 것도 내 취향과 성격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을 느낀다.
나는 흔히 말하는 다독가가 아닌데도 책을 좋아한다고 느낀다. 책에 대한 심적 부담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통해 책을 좋아한다고 느낀다.
도서관을 좋아한다. 읽고 싶은 책 또는 차선의 책들을 막 찾아와서 책상에 쌓아놓고는 한 권을 반 정도 읽으면 많이 읽는 거다. 시원한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으면 책 내용이랑 상관없이 그렇게 평화로울 수 없다. 3시간이 넘어가면 슬슬 집에 가고 싶어 지지만 집에 돌아가면 다시 도서관에 가고 싶다.
대학교 때 심심하거나 할 일 없으면 도서관에 가서 습한 공기와 책 냄새를 맡으며 캔커피를 따 먹고 놀았다. 책에 코를 박고 한참 졸고 일어나기도 하다가 (공공재에 침은 흘리지 않았다) 말 그대로 재밌는 책을 보기도 하고 보기 힘든 외서 화집도 구경하고 봐야 하는 책을 보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전자책이 발달되지 않았던 스웨덴 시절에도 딱 한번 예스 24에서 책을 다섯 권 정도 엄선해서 택배로 받았는데 먼 길 날아온 한글이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다. 물론 5권 다 정독하지는 않았다. 그냥 쉽게 말해서 패션, 요리, 부동산 이런 것처럼 카테고리로써의 책이 좋았고 지금도 그렇다.
소설책은 기분 전환 용으로 완벽하다.
기다리던 프로젝트가 무산되던 날 소설책을 읽으면 금방 기분이 풀어졌고
부부싸움을 하고 나서도 소설책을 읽고 나면 쉽게 기분이 풀어져서 남편에게 열심히 사과하고는 했다.
세상에 책이라는 물건이 있어서 나는 내 스트레스를 다루는데 꽤 자신이 있다.
그런데 말이지. 왠지 모르게 책 자체에 대한 이야기와 그림은 왠지 모르게 오그라드는 느낌이 있다. 고리타분한 느낌도 들면서 읽고 싶은 마음이 잘 안 생긴다.
왜 그럴까...? 이 지점에서 조용히 검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고 있다가 발견한 익살맞은 책.
작가의 세련된 유머에 푸흡 웃음이 나고 그렇게 웃는 나를 보며 속으로 은근히 내가 되게 세련되게 느껴져서 기분 좋은 그런 책이다. 본문에서 설명하는 책들에 줄임말로 주석을 달아놓았는데 이게 이 책의 유머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
능동적으로 책을 하나 골랐다는 것은 능동적으로 다른 수많은 책들은 고르지 않았다는 뜻이고
읽지 않은 책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책과 우리의 관계는 절대 지속적이거나 동질적이지 않고
오히려 내용을 읽었음에도 까먹거나 그때의 내 환상이나 환경의 영향으로 왜곡해서 내 마음대로 이해하게 될 수 밖에 없고
그래서 여러 모양의 독서가 있고
책 한 권 한 권 보다도 책과 책의 관계 속에서 더 의미 있는 발견을 할 수 있다.
번역도 완벽해서 너무 멋진 책이지만 그럼에도 졸릴 수 있는 거니까. 일단 후퇴. 다음을 기약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