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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eavenlyp Oct 24. 2021

도망가자, 지금 어디든 가야할 것 같다면

도망가자, 행복을 찾아서, 나만의 낙원으로

하고 싶은 말은 다 했는데요. 갑자기 생각난 것이 있어서요.


우리는 ‘존버’라는 말이 통용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뭐 존버가 주식과 가상화폐 투자판에서 나온 이야기라고 하지만, 여기저기서 흔하게 쓰이고 있죠. 죽을 힘을 다해 버티고, 버티지 못하면 낙오하고, 낙오한 자에게는 비난이 뒤따릅니다.


애써서 버티고 싶지 않은 젊은 세대에게 누군가는 ‘요즘 애들은 너무 쉽게 포기한다’, ‘요즘 애들은 어려운 건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쉽게 싸잡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말이죠. 좀 포기해도 된다고, 좀 도망쳐도 된다고 그래도 별 일 안 생긴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육지, 그 중에서도 서울로 대학을 가는 것이 다른 나라로 유학을 가는 것이나 다름 없게 여겨지고, 수도권 대학을 간 사람의 이름을 플랜카드로 만들어 학교 벽에 걸어 놓던 제주에서 저는 나름 ‘성공한 케이스’였습니다. 제가 고등학생일 때까지만 해도 여자인 친구들은 성적이 되어도 타 지역으로 보내지 않고 같은 지역의 교대나 사대로 보내는 일이 많았지만, 저희 부모님은 없는 형편에도 저를 육지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의기양양하게 서울로 갔던 저는 7년 만에 서울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제주도로 돌아왔습니다. 아니, 이렇게 살다가 큰일 날 것 같아서 도망쳤습니다. 물론 서울에서의 삶이 무가치했느냐 하면 그것은 절대 아니지만-대학 전공과 첫 직장에서의 경력을 살려서 지금 직장에서도 먹고 살고 있거든요-, 들이는 인풋에 비해 아웃풋이 미미했고 몸과 마음에 압박이 심했어요.


좀 더 버텼다면, 조금 더 나를 몰아붙여서 자기계발을 하고 그래서 돈을 많이 주고 안정적인 직장에 무사히 취업했다면, 아직도 서울에서 살고 있었을까요? 이름을 대면 다 아는 회사에 들어가서 부모님의 자랑이 되었을까요? 모를 일입니다. 어쨌든 결론은 ‘존버’에 실패해서 낙오한 셈이지요.


하지만 제가 자기합리화에 능하다고 말씀 드렸지요. 저는 도망친 저를 비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행복을 찾아 삶의 형태를 바꾸는, 적극적이고 용기 있는 선택을 했다고 생각해요. 덕분에 좋은 사람과 결혼도 하고, 집도 사고, 개도 키우고, 몸과 마음이 건강합니다. 매일 아침의 하늘을 보며 행복을 느끼는 소박한 사람이 되었어요.


그런데 말이죠. 버티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아니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에 살다 보니 한계에 부딪혔을 때 빠져나오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젊고 아까운 인생들이 스스로를 극한으로 몰아 붙이다 스러지는 일이 종종 벌어지는 걸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왜 바보같이 계속 그러고 있었냐’, ‘나였으면 진작에 빠져나왔다’라고 안타까움을 빙자한 비난의 글이 따라 붙는 것을 보면 더 마음이 아파요. 그렇게 떠난 이들에게는 그래도 된다고 말해 주는 이가 없었던 거였을 테니까요.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최선을 다해보고, 그래도 영 안 될 것 같으면 주변의 막연한 기대 같은 것은 과감히 실망시켜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스스로 행복하고 맘 편하다면 그게 제일 중요한 거고, 남들이 좀 실망해도 내 인생에 크게 별 일 안 생깁니다. 저희 엄마도 비싼 돈 들여 육지에서 공부 시켜 놨더니 별 것도 못 되고 왔다고 속으로는 실망 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제가 행복한 것을 보며 잘 됐다고 좋다고 말씀 하시거든요.


도망친 곳에는 낙원이 없다고 하지만요. 도망친 바로 그 곳에서 낙원을 발견하지 못하리라는 법도 없어요. 궁지에 몰린, 벽에 막힌, 낭떠러지 위에 서있는 모든 분들. 도망갑시다. 행복을 찾아서. 나만의 낙원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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