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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eavenlyp Oct 23. 2021

내가 뭐랬어, 편세권이랬지!

단독주택에서 산다는 것_희망편 5) 행복한 전원생활의 필요 충분 조건

불편한 것도 많았던 아파트 생활이지만, 그럼에도 떠나고 싶지 않았던 이유가 있다. 원래 살던 곳은 제주시내에서도 형성된지가 제법 오래된 주거 지역으로, 오래된 아파트들이 모여 있는 동네와 비교적 최근에 지은 빌라들이 모인 동네,  새로 지은 정부청사와 고오급진 단독주택들이 모여있는 동네까지 지근거리에 모여 있었다.


사람이 모여 산다는 것은 다시 말해 생활 인프라가 있다는 것! 아파트 단지 바로 근처에 소형 동네 마트가 2개, 조금 걸어 나가면 대형 식자재마트와 노브랜드, 영화관도 있었고, 제주도에서 나름 번화가에 속하는 제주시청과도 가까워서 친구를 만나거나 할 때도 편했다. 차를 타고 조금만 나가도 동문시장이 있고 수협공판장이 있어서 신선한 회와 해산물도 자주 사다 먹었다. 무엇보다 내 회사와도 10분 거리였다.


이런 모든 생활 인프라를 포기하고 시 외곽으로 나오면서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조건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편의점’이었다. 편의점, 길가다 발에 채이도록 보이는 것이 왜 중요한가. 부부가 즐기는 여가에 술이 빠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봐, 저녁에 기분 좋게 술 한 잔 하는데 애매하게 술이 똑 떨어졌어. 근데 근처에 아무것도 없어 봐. 차 타고 나갈 수도 없고 얼마나 찝찝하고 아쉽겠어.”


이 집으로 결정하기 전 그가 몇 천 만원 이상 저렴하고 신축에 평수도 넓지만, 멀고 외져서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집들을 탐낼 때 설득을 위해 쓴 카드가 바로 ‘도보권 편의점’이었다. 안주를 만들 재료들이야 장보러 갈 때마다 사 두면 다음 장보러 갈 때까지 떨어질 일이 없었지만 술은 수시로 떨어졌다.


사다가 쟁여 놓는 건 우리 부부에게 별 의미가 없다. 많이 사두면 그만큼 많이 마셔서 없애버리기 때문에 그 때 그 때 조금씩 사다 먹는 게 그나마 알코올 섭취량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실제로 술장고 용으로 미니냉장고가 있었는데 채우는 속도보다 마시는 속도가 빨라서 다른 용도로 쓰고 있다.) 만약 늦은 시간에도 뭔가를 살 수 있는 곳이 도보 거리에 없다면 애주가인 우리 부부에게는 상당히 아쉬운 상황이 벌어질 게 뻔했다.


지금 집은 다세대 빌라 단지 맞은 편에 있어서 상가에 편의점이 입점해 있었다. 이사 오기 전 집 수리를 할 때부터 도보거리 편의점의 강력한 위력을 느꼈다. 더운 여름철 땀흘리며 일하고 수분 보충할 때, 간단히 끼니 때울 음식들을 살 때도 길 건너 편의점이 아주 요긴 했다. 이사 후 집들이와 친구 초대를 할 때면 예를 든 것 같은 상황(한창 즐겁게 흥이 오르려는 데 술이 똑 떨어지는 상황)도 실제로 발생했고 편의점 4캔 만원 수입 맥주를 응급 수혈했다.


이렇게 써 놓으니까 정말 술에 목숨 건 사람들 같이 느껴지지만… 누구에게나 양보하지도 타협하지도 못하는 조건이 하나쯤 있기 마련이다. 행복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랄까. 예를 들어 멀리 가지 않고도 영화 연극 뮤지컬 같은 문화 생활을 한껏 즐기고 싶은 사람도 있고, 번화가에 인접해서 놀기 좋은 지역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대중교통으로 어디든 갈 수 있는 교통이 편리한 곳을 원하거나, 무조건 회사와 가까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코스트코니 이케아니 스타필드니 하는 대형 몰에 인접해 있어서 쇼핑과 여가를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지를 중요하게 보는 사람도 있다. 이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누릴 수 있는 곳이 아무래도 서울이니 그렇게 서울과 수도권으로 사람이 몰리는 것일 거고.


이런 조건들에 비하면 편의점 정도야 한없이 소박한 기준이지만, 욕심을 버려서인지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감사하다. 이 집을 선택할 때 초등학교와 가깝다는 것도 크게 작용했는데, 초등학교 옆에 몇 십 세대가 함께 사는 대형 타운하우스 단지가 있다. 이 단지 상가에 중국집, 고기집, 스시집, 분식집 겸 호프집이 있고 맞은 편에는 꽤 세련된 퓨전 음식 전문점과 카페도 있다. 차를 타지 않고도 외식을 하고 싶을 때 산책 겸 가볍게 나가서 식사를 할 수 있다니!


아무래도 주택단지 손님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문을 빨리 닫는 편이긴 하지만, 이것 참 호사스러운 전원생활이 아닌가! 심지어 동네 음식점 치고는 하나 같이 맛도 괜찮고 가격도 미친 제주도 관광지 물가를 생각하면 착한 편이다.


특히 카페는 정말 맛있는 핸드드립 커피 전문점이어서 손님이 올 때마다 꼭 한 번 데리고 가는 필수 코스가 됐다. 음, 다시 생각해보니 제주도 전체가 관광도시라 인구 밀도에 비해 많은 것들이 있는 듯도 하다.


집 주변 음식점과 카페들, 특히 부부의 주생활에 한줄기 빛이자 희망인 편의점이 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충실하게 이용 중이다. 딱 하나 아쉬운 건 빵집이 없다는 건데… 이 참에 하나 차려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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