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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eavenlyp Oct 24. 2021

말은 나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

제주 이주를 꿈꾸는 이들에게

지금까지 30대 직장인 기혼 여성이 제주도심에서 외곽으로 이사를 하고, 주거 형태를 공동 주택에서 단독주택으로 바꾸면서 생긴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보셨습니다. 하고 싶은 얘기들은 더 많았는데 분량이 자꾸 늘어지면 안 되니까 이쯤에서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


죽 살펴보니 생각보다 별 것 없고 평범하지요? 인생 가장 큰 금액의 쇼핑을 하면서, 또 단독주택에 살기 시작하며 몇몇 에피소드가 생긴 것 말고는, 저의 삶은 여전히 잔잔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지금으로부터 약 23년 전에, 저와 비슷한 선택을 했는데요. 연고도 하나 없는 제주도에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이주를 하겠다는 결정이었습니다. 그 때 당시 저희 외할머니께서는 “말은 나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는데, 망아지 새끼도 아닌 너희들이 왜 제주도에 가냐”며 우셨다고 합니다.


사실 할머니의 걱정은 일리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의 제주는 제 기억에도 지금과는 사뭇 달랐거든요. 제주로 이주를 하고 살았던 동네에는 편의점은커녕 동네 슈퍼도 없었습니다. 대신 구판장이라고 부르는 구멍가게가 있었죠. 계란을 한 판이 아니라 몇 알 단위로 팔았고, 과자도 몇 종류 없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학교 준비물을 사려면 30분 정도 차를 타고 다른 지역까지 가야했습니다. 당연히 자장면조차 배달되지 않았고요. 어릴 때는 엄마에게 왜 우리는 이런 동네에 살아야 하는거냐며 불평을 했던 기억도 납니다. 지금은 그런 기억까지 아련하게 느낌으로 남아 있으니 신기할 따름입니다.


아무튼 성인이 되고 다시 제주로 돌아올 마음을 먹을 수 있었던 건 지금의 제주가 그 때와는 그래도 많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힙’한 카페나 음식점이 정말 많이 생겼고요. 스타벅스니 서브웨이니 하는 프랜차이즈들도 꽤 들어왔습니다. 왜 그런 게, 있어도 딱히 많이 가지는 않지만 또 우리 지역에 없으면 서운하잖아요. 꽤 괜찮은 퀄리티의 공연이나 전시도 자주 진행되어서, 문화 생활에 있어서도 크게 아쉽다는 느낌 없이 살고 있습니다. 시 외곽에 있는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나온 후에도 그렇습니다.


물론 제가 큰 어려움 없이 제주 생활로 복귀할 수 있었던 것은, 여기에 저의 인생의 일부가 여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이 있고, 중고등학교 시절의 친구들이 있지요. 23년 전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제주에서의 삶을 일궈 오신 부모님이 있었기에 우선은 부모님의 울타리로 들어가서 힘을 비축하면서 독립을 위해 준비를 할 수 있었고, 인생을 함께 보내고 싶은 동반자를 찾은 뒤에는 부모님의 정서적 지지와 도움을 바탕으로 독립된 가정을 꾸렸습니다.


한동안 제주 이주 열풍이 불었다가 지금은 그 열기가 시들해지고 오히려 인구 유출이 심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 아닌가 싶습니다.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혹은 여행을 와서 느끼는 제주의 모습과 삶의 터전으로서 제주는 정말 많이 다르니까요. 팍팍한 도시의 삶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치유 받고 여유롭게 힐링하는 삶을 그리지만, 사실 제주에서도 일개 소시민의 삶의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저 역시 여전히 매일 아침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잡아 떼고 하루하루 열심히 일해 집의 대출금을 갚고, 매달의 생활비를 쓰는 재미 없는 직장인입니다.


그래서 제주 이주를 결정하고 실행한 사람들에게 제주에 와서 좋은 점들보다 제주에 와서 잃은 것들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이겠지요? 꼭 제주까지 오지 않더라도 귀농이나 귀어처럼 도심 가까이에서 그렇지 않은 지역으로 이주를 한 분들이 모두 겪는 일일텐데요. 적당한 직장을 구하는 것이나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 새로운 분위기에 적응하는 것, 대중교통이라든지 여러 문화·편의시설 같은, 이전엔 당연하게 누리던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것까지. "내가 이러려고 제주에 왔나" 싶기도 할 것이고, 모르긴 해도 이민을 할 때와 비슷한 정도의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외할머니의 “말은 나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에는 동의하지 않는답니다. 제주도 어쨌든 사람 사는 곳이고, 제주에서만 느낄 수 있는 다른 종류의 행복이 있는 것도 분명하니까요. 문제는 내가 어떤 행복에 가치를 두는 사람인지를 스스로 알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겠지요.


저 역시 제주도에 내려오고 얼마 안 됐을 때는 서울로 복귀하려고 새 직장을 알아보기도 했고, 실제로 면접을 보고 합격도 했었답니다. 그런데도 다시 떠나지 않고 여기에 머무르기로 결정한 것은, 어느 날 문득 ' 나는 이런 것 없이는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이구나',를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것이라면 뭐... 바다 냄새, 멋진 하늘, 어딜 가나 초록 천지인 오름과 들판... 그런 것들이고요.


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처럼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요. 최근에 서울에 갔을 때 친구와 차를 타고 가다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답니다. 한 쪽으로는 아파트 단지가 있고 한 쪽으로는 한강이 흐르고, 가까이에서는 가로등이, 멀리서는 서울의 야경이 멋지게 빛나고 있었어요.


친구가 갑자기 한 마디 하더라고요. "나는 이런 걸 못보면 살 수 없을 것 같아"라고요. 친구의 '이런 것'이란 뭐랄까 온갖 즐거움과 편리함이 가득 차있는 세련되고 발전된 도시의 모든 것들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그 때 저는 속으로 "이 아파트 차도 소음 심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친구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어느 하나가 틀렸거나 더 잘났거나 한 것 없는, 그저 다른 종류의 행복일 뿐이죠.


제주 이주 또는 귀촌, 귀농, 귀어를 고민하고 있다면, 본인에게 행복감을 주고 절대 포기 할 수 없는  '이런 것'이 무엇인지 꼭 생각해 보셨으면 해요. 혹시 저와 비슷한 종류의 행복에 조금 더 가치를 두고 싶은 분이라면, 언젠가 제주에서 만나 뵙길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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