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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eavenlyp Oct 22. 2021

오픈! 홈 레스토랑

단독주택에서 산다는 것_희망편 4) 요리 스킬을 수련 중입니다

우리 집은 ‘텅’ 지역이다.


무슨 말인고 하면, 배달 어플에 접속했을 때 주변에 배달 가능한 업소가 없는 지역이라는 뜻이다. 이사하던 날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짜장면을 배달해 먹을까 하고 배달 앱을 켰는데, 음식점 이름이 쓰여 있어야 할 공간에 ‘텅’ 한 글자만 덜렁 써있었다.


이제껏 그는 나의 패스트푸드 사랑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종종 “배달음식 너무 많이 먹는 것 아니냐”며 잔소리를 하기도 했다. “나 정도면 배달 음식 안 먹는 편이다”라고 응수해 왔는데, 주택으로의 이사와 함께 그가 바라던 대로 배달음식의 시대는 종말을 맞았다. 밥 해먹기 귀찮은 날 간단하게 먹기 좋은 짜장면도, 한 달에 두 세 번은 먹던 치킨이나 햄버거도, 맵고 짜고 자극적인 음식이 끌릴 때  시켜먹던 야식도 이제 모두 안녕인 것이다.


배달의 민족이 사는 나라에서 쉽고 빠르고 편한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한다는 것. 많은 사람들이 단독주택의 단점으로 꼽을 만큼 치명적이다. 요리 스킬이 초급 수준이거나 배달음식을 사랑하는 편이라면 분명 ‘텅’ 지역에서의 생활이 괴로울 수 있다.


하지만 아쉬워했던 것에 비해서는 꽤 맛있고 풍요로운 식생활을 즐기고 있다. 그가 호텔조리를 전공한(!) 전직 요리사(!)로써 식재료의 사이클을 관리하는 것이나 메뉴 선정, 요리를 대부분 맡아 하고 있는 덕분에, 배달음식이 빠져나간 자리를 제철음식 위주의 건강한 식사로 채울 수 있었다.


나도 요리에 문외한은 아니고 나름 요리를 할 줄 아는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전공자이자 취미가 냉장고 정리인 남자를 따라잡기란 쉽지 않다. 퇴근 길에 “국물이 없어 콩나물국을 끓여야겠으니 콩나물을 사와라”, “오늘 메뉴는 홍어삼합이니 홍어를 한 팩 사와라” 등의 지령이 내리면 시키는 대로 회사 옆 마트를 들러 식재료를 조달하고, 심부름과 뒷정리를 담당하는 보조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구운 돼지갈비를 배달 받을 수는 없어도, 거대한 몸집의 그릴에다 훌륭한 풍미의 통삼겹을 구워먹고, 피자나 치킨은 냉동 제품을 구매해 에어프라이어에게 맡겨 만든다. 전문점에서 만든 것에 비하기야 어렵지만, 나름 ‘대기업의 맛’이라 아쉬움을 달래 주기에 충분하다. 이 외에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장 볼 때 재료를 사두었다가 대개는 직접 만들어 먹는다. 훌륭한 스승과 함께 다양한 요리를 하면서 나의 요리 스킬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

고기 구워 먹기
이것저것 차려놓고 먹는 편입니다


특히 코로나 시국과 맞물려 ‘홈술’을 자주 즐기게 되면서 안주류에서는 스킬 숙련도가 최고치를 찍어, 집에 있는 몇 가지 재료들로 그럴듯한 메뉴를 연성해낼 수 있게 되었다. 보통 그날의 메인 안주와 함께 저녁을 먹은 다음, 이어지는 술자리-2차인 셈이다-에 곁들일 간단한 안주를 만든다. 술자리의 맥이 끊기면 안되기 때문에 조리 시간은 10분 내외다.


냉동 열빙어를 에어프라이기에 구워서 마요네즈에 간장, 후추를 더한 소스와 함께 먹으면 이자까야가 따로 없다. 냉동 우동 사리와 장국을 사두었다가 저녁이 좀 모자라 출출할 때나 국물류가 당길 때 라면 끓이듯 후루룩 끓이면 소주 안주로 그만이다.


식자재마트에서 냉동으로 파는 닭근위나 무뼈닭발, 곱창 같은 것들을 사다 쟁여 두면 포장마차 분위기 내는 안주도 뚝딱 완성할 수 있다. 근위는 고추, 마늘과 함께 기름에 익히고, 곱창은 에어프라이어에 바짝 굽는다. 닭발은 불닭볶음면 소스에 이것저것 더해서 후다닥 볶아내면 술이 술술 넘어간다.


포장마차 분위기가 나는 안주로는 번데기도 빼놓을 수 없다. 가격도 비싸지 않고 통조림이라 보관도 오래 가능하다. 통조림 안의 국물을 절반 정도 비우고 비운 만큼 물을 조금 넣고 마늘, 후추에 베트남 고추 한두 개 꺾어 넣으면 나의 ‘최애’ 안주인 번데기탕 완성이다.


좀 더 가볍게 먹고 싶은 날은 멸치육수를 내서 순두부 한 팩을 툭툭 잘라 넣고 간장 양념을 얹어 먹는다. 비슷한 변주로 도토리묵을 가지고 묵사발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나름 영양 만점 건강 안주인 셈이다.


평범하게 계란말이나 소시지 야채 볶음도 해먹고, 이도 저도 귀찮은 날은 나초에다 케찹과 핫소스, 치즈를 얹어 먹기도 한다. 나날이 레시피가 다양해지고 있으니 몇 년쯤 지나면 손쉽게 만드는 안주 레시피 100 이런 요리책이 하나 나올지도 모르겠다.


사실 가장 큰 변화는 혼자 있을 때도 좀 더 챙겨 먹게 된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귀찮으면 배달앱에 손을 뻗거나 그도 아니면 라면이나 대충 끓여 먹고 치웠었는데, 요즘은 냉장고 속 남은 식재료가 버려지지 않도록, 이리저리 조합해서 만들어 먹는 편이다. 맛도 좋고 보기도 예쁜 파스타, 덮밥 같은 한 그릇 음식이 단골 메뉴다.


그야말로 잘 먹고 잘 사는 삶이다. 배달음식을 못 먹는 건 전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하나, 입맛이 돌아 뭘 먹어도 맛있어서 자꾸 살이 붙는다는 것. 건강하고 맛있지만 살은 덜 찌는 다이어트 레시피를 찾아 봐야지. 술도 좀 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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