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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eavenlyp Oct 20. 2021

주택살이, 최대 수혜자는?

단독주택에서 산다는 것_ 희망편 2) 댕댕이에게 금수저를 물려주자

생각해 보면 이 모든 일은 요 사랑스러운 털복숭이를 집에 들이면서 시작됐다. 요 녀석이 없었다면 전세집에서 전세집으로 2년 마다 이사를 다녀도 별 문제가 되지 않았을 거고, 공동주택에서의 생활도 그럭저럭 할 만 했을 거다. 인생의 이 시점에 굳이 단독주택을 사겠다는 생각을 할 이유가 없었을 거라는 말이다. 


반려동물 금지가 계약 조건인 집들이 점점 많아졌고, 대형견에 대한 시선이 점점 더 날카로워졌고, 유자의 몸집이 점점 더 커졌기 때문에 개와 인간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을 해야 했다. 개가 그 조그마한 머리로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알 수 없지만, 다행히 이사를 한 이후로 유자는 한껏 행복해 보인다. 


아침 7시 10분, 출근 준비를 하러 1층에 내려온 나를 반기는 것으로 유자의 하루는 시작된다. 벌떡 일어나서 달려 오거나 요란스레 꼬리를 흔들지는 않는다-우리 개만 이런가요?- 비싼 개 침대가 되어버린 쇼파에 엎드려 누운 자세 그대로, 눈동자만 내 쪽으로 향한 채 꼬리를 슬슬 움직인다. 소파 좌방석에 꼬리가 부딪혀 둔탁한 탕, 탕 소리가 난다. 전날 산책을 소홀히 했다거나 하면 본 체 만 체 하기도 한다.

 

내가 출근을 하고 나면 그대로 좀 더 자거나, 어제 먹고 남긴 사료로 아침 식사를 하고 물도 먹고 집 곳곳을 순찰한다. 9시쯤에 2층에서 자고 있는 다른 인간을 깨운다. 1층에서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다 보면, 잠에서 깬 인간이 내려와 산책 수발을 든다는 걸 알고 있어서 일어날 때까지 계속 한다. 모닝 산책을 즐기고 새 밥과 깨끗한 물을 먹고 나면 다시 짧은 낮잠을 자거나 마당에 나가 논다. 

엄마아빠가 대청소를 하는 동안 마당에서 기다리는 유자 / 바깥을 내다 보는 게 취미다

그의 출근 전까지 보통 1~2번 정도 더 산책을 한다. 1시에 출근하는 날은 산책이 짧고, 4시에 출근하는 날은 좀 더 멀리까지 다녀온다. 출근하는 그를 배웅하고 한숨 늘어지게 자고 나면 내가 퇴근한다. 내가 저녁 먹는 것을 기다렸다가, 다 먹었다 싶으면 산책을 보챈다. 간단히 용변을 해결하고 돌아와서는 내가 채워준 밥과 물로 저녁을 먹는다. 


그가 퇴근해서 온 가족이 거실에 둘러 앉으면, 장난감을 물어와 놀아달라고 하거나, 괜히 낑낑거려서 한 번 더 산책을 하고 오기도 한다. TV를 보거나 술을 마시는 인간들 옆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12시쯤 인간들이 자러 가면, 자기도 잠이 든다. 택배가 오거나 꿩이 옆집 마당에서 날아 오르거나 할 때 충실한 반려견으로서 힘차게 짖어 쫓아내는 것 외에는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는, 꽤 규칙적인 하루하루다. 

놀자! / 잔다 zZZ

주택으로 이사를 했다고 해서 산책을 더 많이 하게 된 건 아니고, 하루 루틴이야 이사를 오기 전과 거의 똑같다. 산책을 나가 용변을 해결하고, 집에서는 조용히 먹고 자고 쉰다. 차이가 있다면 세 가지 정도인데, 그것들이 유자를 좀 더 태평한 강아지로 만드는 것 같다.


우선 집 안에서 짖거나 뛰어도 예전만큼 혼나지 않는다. 예전에는 컹! 소리가 한 번만 나도 대번에 달려가 짖지 못하게 했었다. 대형견은 울림통이 커서 실내에서 짖으면 소리도 시끄럽지만 건물이 울리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택배나 배달이 올 때마다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려 최대한 짖지 못하게 했다. 특히 아랫집에 어린 아이가 사는 터라 개가 신나서 뛰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시켜야 했다. 


이제는 조금 짖더라도 ‘집 안 지켜도 된다’거나, ‘밥 값 할 필요 없다”며 농담과 함께 말리는 정도다. 다른 집 초인종 소리나 복도를 오가는 인기척이 덜 들리니, 개가 경계 태세를 갖출 일 자체가 훨씬 줄었다. 관절에 무리가 갈까 점프는 여전히 못하게 하지만, 매번 반복되던 ‘안돼! 그만! 소리를 듣지 않으니 뭔가 달라졌다고 느끼기는 할 것 같다.


산책할 때의 주위 시선도 달라졌다. 이전에는 “그 개를 아파트에서 키우는 거냐”고 묻는 사람들이 간혹 있었다. 입마개 의무 견종이 아님에도, “큰 개를 데리고 다니려면 입마개를 해야지’라며 혼잣말 아닌 혼잣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개를 싫어할 자유와 권리’를 내세우고 싶은 모양인데, 그 자유와 권리가 ‘개를 키울 자유와 권리’보다 우위에 있거나 일방적으로 묵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웃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펫티켓을 지키고 신경 쓰는 것은 당연하지만, 반려동물 인구 천 만 시대에 공공의 공간인 도로나 공원에서 자기가 개를 좋아하지 않고 보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큰 짐승을 왜 데리고 나오냐는 눈빛을 보내고 뒷말을 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이사를 온 후에는 동네에 워낙 대형견을 키우는 집이 많아서인지, 나름 집에서 밥값 하는 개일 거라고 생각해서인지 그런 말을 듣거나 싸늘한 눈빛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 (사실 산책을 할 때 사람을 마주칠 일이 별로 없다.)


마지막은 마당이 있어서 좋은 점이다. 가장 좋은 건 애견카페에 가지 않아도 마당 안에서 목줄 없이 뛰어 놀 수 있다는 점이다. 혹시 돌발 상황이 생길까 사람이 함께 있을 때만 잠깐씩 풀어 주지만, 원반이나 공을 향해 힘차게 내달려 물고 돌아오는 모습을 보면 더없이 행복해 보인다. 기분이 좋아지면 잔디 마당에 드러누워 등을 비벼대기도 한다.

마당에서 뛰뛰

써 놓고 보니 정작 개는 변화를 잘 모를 것 같고, 개 주인이 좋은 일에 더 가까운 듯하다. 층간소음의 가해자가 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주택으로 이사를 오는, 어린 아이를 둔 부모의 심정을 느끼고 있다고나 할까. 더 이상 ‘뛰지마!’를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그 해방감!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모든 부모님&개엄빠시여, 탈 아파트 하고 자유를 얻으시길! Free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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