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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eavenlyp Oct 19. 2021

고지서가 무서워요. 너무 무섭고.

단독주택에서 산다는 것_절망편 4) 사실 진짜 무서운 건 ‘돈’이지

‘다음 집은 어디?’를 안건으로 한창 가족회의를 벌이던 시기, 아파트파인 내가 내세운 주된 장점 중 하나가 바로 ‘겨울에 따뜻하다’는 것이었다. 그랬다. 정말 오래된 구축 아파트, 그나마도 외부로 연결된 베란다 창은 이중창이 아닌 아파트인데도 겨울이 그다지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가스는 온수와 요리에만 썼고, 정말 차가운 기운이 돌 때나 손님이 올 때만 한 번씩 난방을 했다. 집이 층층이 쌓여 있으니, 위아래 집이 난방을 하면 우리집도 어느 정도 온기가 유지되는 효과가 있었다. 물론 따뜻하다, 정도는 아니었고, 살짝 썰렁하다, 정도의 느낌으로 살긴 했다. 유자를 위해 늘 베란다로 통하는 문을 조금 열어 놓았던 터라 더 서늘했다. 한겨울에도 가스비가 5만원을 넘지 않았으니 말 다했지 뭐. 


하지만 아파트파의 패배로 우리의 다음 집은 주택이 되었다. 가스요금은 ‘루베’라는 단위 당 가격이 매겨지는데, 주거 지역 한복판에 있는 아파트와 외곽지로 한참 나온 곳에 있는 단독주택과는 단가 자체가 다르다. 거의 2배 차이가 나고, 가스비가 비싸기로 유명한 제주도 내에서 따져봐도 거의 최고 가격이다. 간단히 셈해 봐도 앞으로 가스요금을 2배쯤 내야 한다는 뜻이다. 


막간을 이용한 작은 TMI. 제주도는 도시가스가 들어온 지역이 일부 주거지역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고, 가스비가 육지에 비해 매우 비싸다. 겨울 기온이 다른 지역보다 높은 편이기는 하지만 찬바람이 세게 불기 때문에 난방은 거의 비슷하게 필요하다.

 

다행히 이사를 여름에 한 터라, 온수를 쓰는 걸 제외하고는 보일러가 돌아갈 일이 없었다. 창이 많아 바람이 잘 통하는 집에서 아파트에서보다 훨씬 시원하게 여름을 보냈다. 시스템에어컨도 매립돼 있어서 집을 손보는 노동을 한 직후나 비가 오는 날, 손님이 오는 날이면 문명이 선사하는 쾌적한 찬바람을 즐겼다. (윌리스 캐리어 만만세) 여름 내 에어컨을 필요한 만큼 켰고, 제주도의 필수 가전인 제습기를 24시간 풀 가동했지만 전기요금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의외로 처음 받은 가스요금 고지서의 숫자 역시, 이전 아파트에서와 별 차이가 없었다. 아무래도 첫 달은 집이 비워져 있던 기간도 1주일 정도 포함되고, 날이 더워 찬물로 씻기도 해서 그런 것 같았다. 


한 달을 꽉 채워야 정확히 얼마나 나올지 알 수 있겠지. 더욱 긴장되는 마음으로 다음달 고지서를 기다렸다. 어라, 이번에도 이전 집에서 나오던 평균 금액과 비슷한 액수다. 가스비가 비싸다는 압박감에 사로잡혀서 늘 뜨거운 물로 하던 설거지를 찬물로 하고, 기름이 묻은 그릇만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 헹궈서 그런 걸까? 아니면 씻을 때마다 물줄기 아래에서 멍하니 뜨거운 물을 맞고 서있는 습관을 버려서 그런 걸까? 아무튼 잔뜩 겁먹었던 것에 비하면 꽤 선방했다. 


하지만 진짜는 지금부터지. 어느덧 완연한 가을이다. 가을과 함께 찾아온 10월 추위에 집 안에 썰렁한 한기가 감돌고 있다. 창문을 닫고 있으면 사람의 온기로 집 안이 꽤 훈훈한데, 집안에서 개를 기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전체 환기를 해야 할 때가 있다. 서늘한 가을바람이 들어온 자리는 사람과 개의 체온만으로는 좀처럼 데워지지 않는다.


그리하여 이번 주말, 처음으로 난방을 가동할 생각이다. 대체 얼마나 나오는 지 알아야 곧 다가올 겨울을 맞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으니까. 한 편으로는 클래식한 기름 난로, 5방향에서 열이 나온다는 전기 난로, 온풍기, 대류식이라 건조하지 않게 공기를 데워 준다는 난방기까지, 온갖 난방용품을 검색하고 있다. 혼자 1층에서 자는 유자를 위해 전기방석도 하나 사야 한다. 아니 이러다 전기요금 폭탄을 맞는 건 아닌지 몰라.

소파에서 자는 유자에게 이불을 덮어 주고 싶은 계절이다. 잘 자다가 더워지면 걷어 차버리는 것까지 사람같다.

사실 이전 아파트에서 살 때는 7~8만원 정도를 기본 관리비로 내왔다. 2층이라 쓰지 않는 승강기 이용료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주택으로 이사하면서 새롭게 화재보험을 가입해서 고정지출이 생기긴 했지만, 그걸 감안해도 4~5만원 정도 가스요금이 더 나오는 것쯤이야 크게 상관 없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고지서가 무섭게 느껴지는지 모를 일이다.


아파트에서도 맘 놓고 보일러를 가동하면 가스비가 몇 십 만원씩 나온다는데 뭐. 일단 난방 없이도 춥지는 않게 살면서 5만원 이하 가스비를 유지했던 아파트 시절의 경험을 십분 살려봐야겠다. 이전 아파트는 서향이라 오후가 되어서야 살짝 해가 들었지만, 지금 주택은 남쪽과 동쪽으로 각각 창이 나 있어서 아침부터 한낮까지 하루 종일 따신 해가 들어오니 그래도 좀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우선 실내복부터 긴 팔로 바꿔 입고 더 추워지면 수면바지와 양말을 챙겨야지. 이걸로 모자라면 커튼을 방한 기능이 있는 것으로 바꿔 달고, 극세사 담요와 보조 난방기를 사야겠다. 따뜻한 국물요리를 더 많이 해먹고, 그와 유자와 꼭 붙어 체온을 나눌 거다.


고지서는 매달 말 날아온다. 두구 두구 두구- 개봉박두! 이번 달 고지서는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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