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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eavenlyp Oct 19. 2021

밤은 길고 님은 없고

단독주택에서 산다는 것_절망편 3) 이제는 귀신보다 인간이 무서울 나이

“왜 아직도 안자고 있어?”

“무서워서 잠이 안 와.”

“뭐가 무서워, 유자 껴안고 자.”


스케쥴 근무를 하는 그는 간혹 야간 근무로 집을 비운다. 그런 날이면 나는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한다. 집을 한 바퀴 돌면서 문단속을 단단히 하고 커튼과 블라인드로 창을 가린다. 은은한 간접등 하나만 켜둔다. 침대에 누워 애써 잠을 청해봐도, 작은 소리에 자꾸 귀가 쫑긋 선다. 


평소에는 들리지도 않았던 냉장고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고, 바람이 창에 부딪히는 소리에도 예민해 진다. 유자가 거실을 돌아다니는 소리가 꼭 사람 발걸음 소리처럼 들리는 때도 있다. 누군가 나쁜 마음을 먹으면 우리 집을 침범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주택 살이를 때때로 불안하게 만든다. 


“집에 훔쳐갈 것도 없는데 누가 오겠어.”

“내가 있잖아. 나를 훔쳐가면 어떡해.”


심드렁한 그에게 장난을 섞어 항변한다. 반쯤은 진심이다. 이전에 살던 집에 도둑이 들 뻔한 적이 있어서 트라우마가 있다. 엄마가 새벽에 깨서 거실로 나갔다가 주방 쪽으로 살금살금 걸어가는 불청객의 그림자를 보고 오빠인 줄 알고 이름을 불렀는데, 초보 도둑이었던 건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져서인지 냅다 뒤돌아 도망을 쳤다. 


게다가 도둑이 집에 들었던 경로는 미처 잠그지 않았던 내 방 창문이었다. 그 날 따라 엄마랑 자고 싶어서 내 방에 없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내 방에서 자고 있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생각만해도 아찔하다.


그런 경험이 아니더라도, 제주도의 밤은 아주 깜깜해서 무섭다. 지금에야 좀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가로등이 몇 없고 띄엄띄엄 있는 인가도 밤이면 잠에 드니 ‘칠흑 같은 어둠’이 무엇인지 실감할 수 있다. 먼 바다에 떠 있는 어선의 집어등과 하늘의 별들만 밝게 빛난다.


여행자에게야 사뭇 다른 제주의 새카만 밤이 낭만적으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해가 지면 집 밖을 나서기가 꺼려지는 이유일 뿐이다. 어릴 때는 그 어둠에서 귀신이 나올까 무서웠다면, 이제는 어둠을 틈타 숨어드는 사람이 더 두려운 나이가 됐다.


아파트야 경비실에서 사람이 늘 지키고 있고, 1층이 아니면 높이가 있어 사람이 들어오기 어려우니 현관문만 잠가도 든든하다. CCTV가 곳곳에 설치돼 있고 공동현관도 비밀번호를 눌러야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기도 하다. 


반면 우리 집은 성인이 맘만 먹으면 넘을 수 있는 울타리와 소박한 단창이 전부다. 믿는 구석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마당에서 얼씬거릴 때마다 당장이라도 물어 뜯을 것처럼 매섭게 짖어 대는 유자의 생체경보시스템인데, 사실 위급한 상황이 벌어지면 유자는 사람이 지켜야 할 존재지 딱히 사람을 지켜주진 못할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타운하우스 단지라 적당히 가까운 거리에 집이 있고, 이웃들과도 안면을 트고 지낸다는 점이다. 무슨 도움이 될까 싶은데, 의외로 심리적으로 안정감이 든다. 외따로 떨어진 곳에 있는 단독주택보다는 보안상 낫지 않을까 했던 생각이 적중했다. 밤에 무슨 일이 있을 때 ‘불이야!’를 외치면 이웃 한 둘쯤 나와보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기대도 있고. (물론 가까운 사람이 더 위험할 수도 있지만)


사실 이런 모든 걱정들은 다 내 과거 경험에 상상력이 더해져 만들어진 기우일 것이다. 우선 우리 집이 속한 타운하우스 단지는 유흥업소나 상업시설과는 한참 떨어진 마을에 있다. 또 으슥한 골목에 있지 않고 대로변을 끼고 바로 노출돼 있다. 이렇게 외부 시선에 그대로 노출되는 단독주택은 범죄심리학적으로 범행이 쉬운 곳을 찾는 침입자들을 오히려 위축하게 한다나 뭐라나.


또 어디에서 사나 어느 정도의 불안은 피할 수 없다. 빌라에 살던 중학교 때는 하교하는 나의 뒤로 모르는 사람이 집 계단까지 쫓아 왔던 적이 있다. 그 후로 오랫동안, 집에 들어갈 때마다 계단이나 복도에 누가 따라 붙지는 않았는지 주의 깊게 살피면서 후다닥 뛰어 들어가는 게 일상이 됐다. 


설령 아파트 고층에 살아도 깊은 밤 낯선 얼굴의 이웃과 엘리베이터를 같이 탈 때의 두려움 정도는 있지 않은가. 내가 버튼을 누를 때까지 잠자코 있다가 내가 내릴 층의 바로 아래층을 누르는 정체모를 이웃 말이다. 아님 새벽에 도어락을 잘못 눌러 잠을 깨우는 만취한 이웃이라던지.

유자는 창 밖을 내다 보다가 낯선 이가 접근하면 짖어댄다. 그럴 일이 많지 않아서 보통 저러다 잠들지만.

혹 영 잠 못 드는 날이 많아지거나 나중에 아이가 생긴다거나 하면 좀 더 심리적 안정을 얻기 위해 사설경비업체를 이용할 생각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문단속을 꼼꼼히 하고 불을 하나 켜두는 것으로도 그럭저럭 잠들 수 있으니 유자의 생체 경보시스템을 믿어 보려 한다.


여차하면 2층 침실 창문에서 방충망을 뚫고 뛰어내려서 24시간 운영하는 길 건너 편의점으로 뛰어가야지. 그럴려고 내가 편의점 가까이 있는 집을 샀지. 암 그렇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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