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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eavenlyp Oct 19. 2021

쓰레기 버리러 차로 3분

단독주택에서 산다는 것_절망편 2) 인간은 끊임없이 쓰레기를 만들어 낸다

이사를 오자마자 (제품 가격의 절반을 배송비로 내고) 바구니 모양의 하얀색 분리수거함을 샀다.


이전 집은 분리수거함을 따로 놓을 공간이 없어서 재활용쓰레기는 그냥 아무 상자에나 대충 담아 두었다가 버릴 때만 분리해서 버렸는데, 이제 다용도실에 놓인 3단 분리수거함에 플라스틱과 병과 캔을 각각 깔끔하게 담아 두었다 버릴 수 있다.

택배 몇 번 시키면 스티로폼에 종이가 가득가득..

그런데 이게 너무 순식간에 찬다. 생수 페트병은 물론이고, 부부의 취미가 하루를 마무리하고 기울이는 한 잔 술이다 보니 술병이 쌓여도 너무 빨리 쌓인다. 택배 몇 번 받으면 갈 곳 없는 스티로폼이며 종이 박스가 다용도실에 굴러다닌다. 그나마 배달이 안 되는 지역으로 와서 망정이지, 제주시내에 살 때처럼 배달음식까지 시켜먹었다면 하루에 두 번씩 분리수거함을 비울 판이다.


재활용쓰레기 뿐일까. 사람 둘에 개 한 마리 사는 집에 무슨 쓰레기가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20L짜리 쓰레기 봉투도 새 걸 꺼내기가 무섭게 버려야할 때가 온다. 음식물쓰레기야 말할 것도 없다. 최대한 남기지 않고 먹어 치워서 버리는 음식이 나오지 않게 조심해도, 식재료를 손질할 때 나오는 것들은 어쩔 수가 없다.


당연히 주택으로 이사를 한다고 해서, 유난히 쓰레기가 늘어나는 건 아니다. 다만 이전에 살던 아파트는 단지 입구에도 쓰레기를 배출하는 곳이 있었고, 단지 밖에 바로 클린하우스*가, 3분 정도 걸어가면 재활용도움센터가 있었다. 그야말로 쓰레기를 버리기에 최적의 환경이었던 것이다.

*생활쓰레기를 효율적으로 수거하기 위해 일정한 장소에 쓰레기를 내놓도록 만든 시설


클린하우스는 2016년부터 도입된 쓰레기 배출 방식으로, 월, 수, 금은 플라스틱, 화, 토는 종이와 안타는 쓰레기 이런 식으로 요일 별로 버릴 수 있는 쓰레기가 정해져 있다. 오후 3시부터 새벽 4시까지 운영한다. 재활용도움센터는 24시간 운영하고 요일에 관계 없이 쓰레기 배출이 가능하다. 두 시설 다 도보로 방문 가능한 거리에 있다 보니 쓰레기를 버리는 데 어떤 불편도 없었다.


하지만 이사 후 상황이 달라졌다. 차로 3분 거리에 있는 재활용도움센터까지 가야 한다. 쓰레기 한 번 버리자고 30분 넘게 걸어갈 수 없으니, 보통 주에 한 번 정도 함께 청소나 설거지 같은 집안일을 하고 나서 차를 타고 나가 쓰레기를 버린다. 번거롭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쓰레기를 줄이려고 캔이나 플라스틱 병에 붙어있는 라벨과 스티커를 완전히 제거하고, 납작하게 밟아 최대한 부피를 줄이는 등 당연한 것들을 더 열심히 했다. 음식물 쓰레기는 1주일씩 집에 쌓아둘 수 없으니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가 버렸다. 위생상으로 좋지 않은 걸 알아도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방법도 쓰레기가 만들어지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곧 한계에 봉착했다.


쓰레기 사태를 해결한 것은 문명의 이기와 자본의 힘이었다. 우선 하루에 한 개쯤 나오는 생수병을 없애기 위해 정수기를 렌탈해 들였다. 물을 사 먹는 돈보다 정수기 렌탈하는 비용이 좀 더 비싸긴 하고 정수기도 필터가 쓰레기로 나온다지만, 4개월에 한 개와 하루 한 개는 비교가 안되니까.

이제는 없으면 안되는 음식물쓰레기처리기

가장 골칫거리였던 음식물쓰레기는 미생물이 자연방식대로 분해해 준다는 음식물쓰레기처리기로 해결했다. 뭔가가 발효되는 것 같은 쿰쿰한 냄새가 은근히 다용도실을 떠다니기는 해도 냉동실에 음식물쓰레기를 쌓아 두는 것 보다 훨씬 나았다. 이사를 하고 매일 같이 택배를 불렀던 쇼핑 욕구가 사그라들자 종이와 스티로폼 쓰레기는 자연스럽게 줄었다.


이제는 마트에 가서도 최대한 플라스틱 포장이 없는 것을 고르고, 필요 없는 비닐을 쓰지 않게 장바구니를 챙긴다. 음식물 쓰레기도 철저히 분리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섞인 채 배출용 비닐에 담아 버렸었는데, 음식물 처리기를 들인 후로는 미생물이 뼈나 생선가시, 갑각류 껍데기처럼 음식물이 아닌 것들은 분해를 못하다 보니 꼼꼼히 분리 배출한다. 소주병과 맥주캔만큼은 줄이지 못했지만, 소주병은 깨끗이 헹궈서 근처 편의점에 가져다 주고 돈으로 바꿔오고 있다.


사실 어떤 불편도 없이 쓰레기를 버릴 수 있었을 때는 쓰레기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지구야 미안해) 주택으로 이사를 하고 차로 3분이라는, 직접적인 불편함이 생기고서야 내가 얼마나 끊임없이 쓰레기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자각을 하게 됐다. 부끄러운 일이다.


이왕 깨달은 김에 한 걸음만 더 노력해 봐야지. 제로웨이스트까지는 아니어도, 음식을 포장해다 먹을 때 집에 있는 냄비나 그릇을 가져가고, 카페에 갈 때는 집에서 놀고 있는 텀블러를 챙기고, 아무 생각 없이 한 장씩 빼내 쓰는 비닐들도 다른 것으로 바꿔보고 하는 식으로. 아름다운 섬, 나의 제주가 ‘쓰레기섬’이 되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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