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주택에서 산다는 것_절망편 1) 인간의 자연에 대한 투쟁
나는 ‘모기밥’ 인간이다.
무슨 말이고 하면 같은 공간에 비슷한 옷차림으로 있어도, 유독 모기에 많이 물리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함께 있는 사람들은 모기에 덜 물리는 반사 이익을 얻으니, 살아 있는 모기 퇴치기라고나 할까.
이런 내가 잔디마당이 있는 주택에 산다니, 굳은 결심이 필요했다. 더구나 우리 집 마당 한 켠에는 정화조가 묻혀 있어서, 무럭무럭 자란 모기가 끊임 없이 나와 세상을 향해 첫 날개를 펼쳤다. 이전 세입자가 이사를 나가던 날 인사를 나누느라 잠깐, 아주 잠깐 마당에 서 있던 사이 팔과 다리 열 몇 군데에 테러를 당할 정도였다. 제주도 중산간의 모기들은 비실비실한 집모기와는 차원이 달라서 물린 곳이 크게 부어 올랐다.
그는 나와는 달리 모기를 별로 타지 않는다. 물려도 딱히 가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 마당에서 내내 노동하던 그의 팔에 다닥다닥 모기 물린 자국이 있는 것을 보고, 보는 내가 가려우니 제발 모기기피제를 뿌리고 긴 팔에 긴 바지 입고 일하라고 당부할 정도였다. 정작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말이다.
그래도 마당에 나올 때마다 모기 때문에 울상을 짓고 도망쳐 들어가는 나를 위해, 모기가 숨어 있기 좋은 무성한 풀과 나뭇가지들을 손수 깔끔하게 정리해 주었다. 모기가 자꾸 빠져 나오는 정화조 뚜껑 주변에 시멘트를 덧발라 보완도 했다.
하지만 이 망할 놈의 생명체들은 생각보다 끈질겼다. 집 안까지는 잘 들어오지 않았지만, 마당에서 유자랑 놀거나 할 때마다 어김없이 모기 밥이 되었다. 결국 그가 특단의 조치를 취하고야 말았다. 본가에 가서 모기 약을 가져온 것이다. 실체를 본 적이 없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농약 비슷한 액체를 집 주변에 두루 뿌린 것 같았다.
놀랍게도! 이사 후 풀들을 정리하고 한 번, 그리고 비가 많이 온 다음에 약효가 떨어진 것 같다며 또 한 번 뿌린 후에는 모기들이 꽤 많이 사라졌다. 그래도 쾌적하게 있으려면 기피제를 맨 살이 드러나는 부위에 뿌리고 주변에 모기향도 좀 피워야 하지만 편하게 마당에 있을 수 있다.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자연친화적인 주택에서의 삶, 그건 다 ‘약 빨’이었다!
주택에 살면서 어떤 불편을 만날 때마다 그것을 손쉽게 해결해 주는 ‘약’이 있었다. 모기약은 시작에 불과했다. 여름 더위와 잡초 때문에 영 상태가 안좋았던 마당 잔디에 제초제를 뿌리니 가을인 지금까지도 잡초가 안 난다. 집에 자꾸 개미가 기어 들어와 실리콘을 보강하고 집 벽 쪽으로 개미약을 쳤는데, 그 후로는 개미의 그림자도 얼씬거리지 않는다. 막 싹을 틔운 텃밭의 채소들이 정체 모를 벌레에 초토화되어 살충제를 살포했더니, 다 죽은 줄 알았던 얼갈이 배추며 쌈채소며 푸성귀가 텃밭 가득 무성하게 자랐다.
어떻게든 자연을 해치지 않는 방법도 있겠지만, 매일 매일 시간을 투자해 잡초를 뽑거나 텃밭 옆을 지키고 서서 벌레들을 잡지 않아도 효과적으로 한 방에 해결해 주는 약의 유혹을 뿌리치기는 어렵다. 대신 벌레를 무서워하지는 않아서, 가끔 집에 들어오는 풍뎅이나 노린재 같은 무고한 벌레들은 손으로 고이 잡아서 내보내 준다. 지네처럼 유자를 물 수 있는 것들만 가차없이 죽이는데, 다행히 이사 온 첫 날 말고는 본 적이 없다.
주택에 산다고 하면 대번에 떠오르는 것이 잔디 관리나 벌레 문제일 것이다. 과격하게 말하자면 단독주택에서의 삶은 자연 속에 어우러져 평화와 여유를 즐기는 삶이 아니고, 끊임없이 자연과 맞서 싸우며 온갖 수단을 동원해 인간의 지낼 자리를 만들고 유지해 내는 투쟁의 삶이다. 우리는 그 투쟁에서 덜 자연적이고 더 편한, 지극히 인간다운 선택을 했다. 편리함 뒤로 작은 죄책감은 남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