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주택에서 산다는 것_ 희망편 3) 하늘과 바다와 오름 가까이 산다
금요일이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이 연약한 인간들을 굽어 살피셔서 6일간 세상을 창조하고 하루는 쉬셨지요. 덕분에 오늘 제가 주말의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나는 매주 토요일 오전 근무를 하는 주 5.5 직장에 다니고, 그는 평일 주말 구분이 없는 스케쥴 근무자라 주말의 의미가 조금 애매하기는 하다. 그래도 주말은 소중하다. 함께 온전히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것으로 특별히 충분하다. 그래서 매주 주말을 어떻게 보낼 것이냐는, 매일 저녁 메뉴로 무엇을 먹을까 만큼이나 중요한 안건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냥 늦잠이나 좀 자고 하루 종일 집에서 푹 쉬는 것이 제일 좋은데, 일하는 데 부지런한 그가 노는 데도 열심이라 매번 뭔가 한다. 그를 만나기 전에는 주말을 보통 집 안에서, 그 중 8, 90%는 침대에서 보내던 나에게는 정말 놀라운 변화다.
물론 사방이 바다고 곳곳이 오름인 제주에 살면서 주말을 집에서만 보내는 건 좀 아까운 일이다. 특히 지금의 주택으로 이사온 후에는 집 주변 부터 녹색의 지분이 훨씬 많아졌고, 바다와 오름에 접근성이 더 좋아졌다. 제주 어디나 바다와 오름이 가깝지만, 시 중심이 아닌 외곽지로 이사를 오면서 차로 15분이면 함덕해변에 갈 수 있게 됐다. 반경 10분 내에 오름만 3~4개가 있다. 동쪽권 한정이지만 이런 저런 관광지와도 제법 가까워졌다. “나 제주도 살아”라고 말했을 때 “와, 좋겠다!”라고 말하는 상대가 떠올리는, 바로 그 제주도 라이프를 이제야 제대로 살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특히나 올해는 물이 따뜻해서 10월 초까지도 바다 수영을 했다. 덕분에 유자의 수영실력이 일취월장 했다. (개는 태어나서부터 본능적으로 수영을 잘 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초반에는 나 살리라며 허우적거려서 사방에 물을 튀기더니 지금은 꽤 안정된 개헤엄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 저곳 자주 다니다 보니 예쁜 물고기들이 많이 사는 비교적 한적한 해변도 발견했다.
수영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소금물에 푹 젖은 털을 박박 빨아서 타올 드라이를 꼼꼼히 한 다음, 햇빛에 일광욕을 하라고 테라스에 내보내준다. 저물어가는 햇빛 아래서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일어난 유자는 따끈따끈하고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식빵 같다. 내년에는 장비를 사서 스노쿨링을 해야지. 아니면 패들보드를 배워 봐도 좋을 것 같다. 유자 구명조끼도 하나 사주고.
바다에서는 수영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한동안 조개며 보말을 잡으러 다니다가, 요즘은 고망치기(구멍치기)에 재미를 붙였다. 물이 빠진 바닷가에 나가 돌 틈의 얕은 물에다 낚싯대를 드리우면, 돌 아래 숨어 있던 물고기가 낚여 올라온다. 대개는 뭉툭한 장어처럼 생긴 배도라치 따위가 잡힌다. 작은 것은 바로 놔주고 크기가 제법 되는 놈들만 가져다가 구워 먹으면 나름 별미다. 한 번은 돌 사이로 지나가던 문어가 잡혀서 숙회로 포식을 하기도 했다. 동그란 줄만 알았던 문어 눈동자가 이렇게 납작해지기도 한다는 걸 3N년을 살면서 처음 알았다. (소라나 전복은 마을 어촌계에서 씨를 뿌려 기르는 것일 수 있어서 채취하면 안 되는 경우가 많으니 주의!)
계절이 바뀌어 날씨가 선선해지고 억새가 꽃을 피우는 지금부터는 오름 시즌이다. 얼마 전에는 집에서 가까운 바농오름에 다녀왔다. 코스 3이 정비가 덜 되어 있다는 블로그 후기를 보았는데도, 괜찮겠지 하고 그쪽으로 하산했다가 엉덩이로 미끄럼을 타고 내려올 뻔 했다. 기피제를 뿌렸는데도 깨알보다 작은 진드기가 유자에게 잔뜩 붙어서, 차에 태우기 전에 털 한 가닥 한 가닥을 샅샅이 뒤져 잡아냈다. 실로 스릴이 살아있는 어드벤처의 고장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제주도에 360개나 되는 오름이 있다는데, 모두 나름의 추억을 담으려면 몇 년이나 걸릴까?
아, 제주도에 산다는 것은 어딜 가나 ‘힙’한 카페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모르긴 해도 제주도에는 편의점보다 카페가 많을 거다. 연예인 가족이 하는 유명한 카페나 웨이팅 대란이 일었던 프랜차이즈 카페, 뷰가 엄청나다는 카페 등이 모두 인근이라 간혹 사람 구경 겸, 드라이브 겸 다녀 올 때도 있지만, 아주 가끔 있는 일이고 보통은 놀러 가는 길에 눈에 보이는 아무 카페나 들어가서 텀블러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담아 나온다. 집 마당을 포함해서, 커피를 들고 앉는 곳이 카페지 뭐.
산으로 들로 나들이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날 잡은 것이나 사온 것들로 저녁을 차려 먹고, 행복한 휴일의 여운을 즐긴다. 실컷 놀아도 기운이 좀 있는 날에는 마당에 불을 피워 불멍도 하고 마시멜로도 굽는다. 내일 월요일이라는 걸 잊고 싶다는 마음으로 술 한 잔을 기울이기도 한다.
월요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주말을 즐겼지만, 어김없이 시간은 가고 월요일 아침이 밝아 온다. 또 한 주의 시작이다. 그래도 괜찮다. 출근길 하늘이 이렇다면, 불평말고 힘차게 출근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