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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eavenlyp Oct 28. 2021

그렇게 유자가 되었다

강아지 입양과 이름짓기

임보자 분의 집으로 가는 길은 참 멀었다.


1시간 반도 넘게-제주도에서 1시간 반이면 거의 한 쪽 끝에서 끝까지 가는 수준이다- 달려서 임보자분의 집으로 갔다. 아무래도 남의 집에 가는 건데, 빈 손으로 가기 뭐해서 마트에 들러 유자청을 하나 샀다. 음료수를 살까 하다가 겨울이라 날도 춥고 해서 따뜻하게 마시기 좋은 것을 골랐다. 


임보자분은 이미 두 마리의 대형견을 기르고 있었다. 동네를 떠돌아 다니는 떠돌이 개 3마리를 발견해서 임시로 마당에 매어두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이 두 마리 자매견(순딩이와 까불이)까지 구조하게 된 상황이었다. 원래 기르고 있는 개들의 케어를 위해서도 임보 중인 강아지들을 위해서도 빨리 입양처를 찾아야 했다. 


드디어 강아지들을 실물로 만났다. 이미 어느 정도 자라 아기 강아지 티는 나지 않았다. 비쩍 말라 몸집에 비해 팔다리만 길쭉한 느낌이었고, 사실 아주 예쁘다거나 귀엽다거나 첫눈에 반했다거나 하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냥 이 중 하나를 오늘 우리 집에 데려가게 되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을 뿐이다. 


막상 눈으로 보니 둘을 떼어 놓고 하나만 데리고 간다는 게 너무 잔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냉정하게 우리가 책임질 수 있는 건 하나였다. 임보자 분이 배려해 주어서 1시간 정도 머무르면서 간식도 줘 보고 이름도 불러 보고 반응도 살폈다. 


나는 좀 더 사람에게 잘 오고 손길을 피하지 않는 순딩이를 데려 오고 싶었고, 그는 골격이 좀 더 크고 활발한 까불이를 원했다. 내가 이 강아지들로 정했으니 둘 중 하나 선택권은 그에게 주기로 했다. 까불이는 이름을 불러도 절대 오지 않고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하면 피해 다니지만 간식만큼은 잘 받아 먹는 강아지였다. 


임보자분은 그동안 쓰던 밥그릇과 배변패드, 그리고 사료까지 여러 물품들을 챙겨 주었다. 생각해 보니 참 준비 없이 찾아 갔는데 정말 고마운 분들이었다. 거듭 감사의 인사를 전하면서 유자청 대신 까불이를 데리고 차에 탔다. 처음으로 긴 시간 차를 타보는 까불이가 간이 이동장에서 불안해 하기에, 품에 안았다. 따끈한 강아지는 얌전히 안겨 있었다. 


이제 집에 도착하면 우리 강아지가 되는 것이다. 집에서부터는 새 이름으로 불러 주고 싶은 욕심에 한시간 반동안 이름을 열심히 고민했다. 


강아지의 이름도 나름 다양한 유형이 있다. 털 색깔에 따라 짓거나(까망이, 하양이, 탄이, 초코), 계절이나 자연에서 따서 짓거나(사월, 가을, 구름, 나무), 먹을 것(소금, 두부, 치즈, 체리)에서 따 오기도 한다. 아주 촌스럽게 짓거나(대박이, 순돌이, 똘이, 덕구), 명품 브랜드 이름(샤넬, 구찌, 디올, 루이)에서 따오기도 한다. 


고민 끝에 '까불이'는 '유자'가 됐다. 유자청과 바꿔온 강아지니까! 먹을 것의 이름이기도 하고, 털 색깔도 누르스름 한 것이 얼추 맞아 떨어지고, 부르기도 쉽고 발음도 부드럽다. 후에 왜 유자라고 지으셨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이야기할 스토리가 있어 좋다.


다음 날, 임보자 분에게 이름을 유자로 지었고, 첫날 밤에도 크게 낑낑거리는 것 없이 잘 적응했으며 병원도 다녀왔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임보자분이 딱히 연락을 자주 해달라거나 사진을 보내달라거나 하는 건 없었지만 그냥 우리를 믿고 보내 주었으니 안심시켜 주고 싶었다. 이후로도 꽤 오랫동안 유자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임보자분이 와서 좋아요를 눌러 주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이가 없는 신혼부부나 커플은 입양 후보 중에서 기피 대상 1순위라고 한다. 아이가 생기면 개를 다른 곳에 보내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가 보다. 케어해야 될 개가 너무 많아 보내지 않을 수는 없고, 임보자분이 얼마나 걱정하면서 보내셨을까 싶다. 


혹시 글을 보신다면, 걱정하지 마세요. 유자랑 차 타고 오면서 말해줬거든요. 너는 이제부터 평생 내 개라고, 내가 책임진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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