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해정 Sep 27. 2021

백반 먹고, 이 동네에 살기로 했다

효창동에 이사 온 날, 그리고 떠납니다

어서 와요. 보여줄 집 많지. 그런데 저, 밥은 먹었어요?


작은 키에 동그란 안경을 쓴 부동산 사장님은 만화에 나오는 박사님 같았다. 세계 평화를 지키기 위해 힘쓰고 돌아온 '로보트'의 가슴팍을 열어 기름칠을 해주는 박사님. 웃는 얼굴로 목숨을 내놓고 싸우라고 하는, 속내를 알 수 없는 박사님 말이다. 


나와 신랑은 지쳐있었다. 상견례부터 결혼식 계획까지 순조로웠기에 남들 다 겪는 그런 갈등은 없는 것 같았다. 착각이었다. 갈등은 '집 구하기'에 모두 몰려 있었다. 도무지 우리가 가진 돈으로는 마음에 드는 집을 찾을 수 없었다. '신용대출을 좀 받자' '신용대출만은 안 된다' '경기도로 가자' '서울이어야 한다' 핑퐁처럼 오가는 이견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얻은 결론은 발품. 우리는 서로의 직장을 고려해 6호선 라인을 타기로 했다. 


월드컵경기장역부터 시작해 망원, 합정, 성수, 광흥창, 대흥, 공덕역에서 내렸다. 돈이 맞으면 집이 마음에 들지 않고, 마음에 드는 집은 돈이 부족했다. 공덕역에서 한 차례 더 싸웠고, 다음 날 효창공원앞역에서 다시 만났다. 

 


효창공원앞역 바로 앞에는 100년 역사의 금양초등학교가 있다. 봄이면 교정에 핀 화려한 목련이 밤거리를 비춘다.


저녁 안 먹었으면 같이 밥이나 먹죠?


역 바로 앞에 있는 부동산에 들어가 전셋집을 구한다고 하자, 사장님은 보여줄 집이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건강때문에 식사 시간을 맞춰야하는데, 괜찮으면 함께 식사하자고 했다. 마침 배가 고파왔다.


어리둥절하게 부동산 밖으로 나와 근처 백반집에 갔다. 신랑과 나는 묵묵히 밥이 나오길 기다렸다. 어제 남은 앙금이 그대로여서 분위기는 무거웠다. 드디어 식사가 나오고, 한 숟가락 먹자마자 우리는 단박에 알았다. 여기 엄청난 집이구나. 


고슬고슬한 쌀밥을 직접 구운 김에 싸고, 사투리로 '생지'라 하는 겉절이만 올려 먹어도 맛있었다. 그렇게 한 공기를 먹고, 또 한 공기를 추가해 반으로 나눠 계란찜과 김치찌개에 먹었다. 칼칼하면서도 시원한 국물에 밥을 으깨는데 흥이 났다. 식당에서 나오자마자 우리는 눈을 반짝였다. 


여기가 우리가 살 곳이다. 


"효창동은 말이죠. 효(孝)가 창(昌)성하다고 해서 효창동이에요. 그러니 얼마나 동네가 좋아. 조용하고 깨끗해요. 오죽하면 동네에 있는 파출소가 할 일이 없어서 이사를 갔어."


보여줄 집이 많다면서, 사장님은 딱 하나의 집을 보여주었다. 신혼부부가 만족할만한 집은 이 집뿐이란다. 사장님은 정말이지 박사님이었다. 효창동 박사님. "여기 건축한 사람들이 다섯 명인데, 모두 대학 동문이었어. 그래서 건물 이름이..."



효창동을 떠나다 

효창동은 우리 두 사람이 고른 첫 번째 동네다. 서로 다른 동네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두 사람이 만나, 한 번도 온 적 없는 동네에 터를 잡았다. 어떤 길이든 처음이고, 어떤 식당이든 처음이었다. 마주치는 사람, 나무, 새, 모든 것과 처음이라는 인연을 맺었다. 


백반집은 단골이 되었고, 1만원에 국내산 치킨을 파는 호프집 사장님과는 장본 것을 나누어가질 정도로 친해졌다. 주민센터에 있는 수영을 2년 동안 다니며, 아무도 없는 새벽 거리를 내 것인양 뛰어 다녔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효창공원을 걸으며 산책 나온 강아지에 곁눈질로 인사하고 이웃과 직접 키운 바질을 커피와 교환했다. 동네가 너무 좋아서 '효창동 좋아요'라는 SNS를 운영하기도 했다. 


일요일 오전에는 무조건 외식을 했다. 이 근처에는 오래된 식당이 많다. 그중에서도 해장국은 '투어'라는 이름을 붙여도 될 정도다. 흔히 말하는 '3대 해장국집'으로는 창성옥, 용문해장국, 그리고 한성옥이 있다. 또 차를 타고 5분만 가면 삼각지 평양집의 내장곰탕을, 후암동의 일미 감자탕의 감자탕을 맛볼 수 있다. 이들 식당은 모두 최소 50년은 되었다. 이중 나의 추천은 80년된 한성옥이다. 


그렇게 3년을 살았다. 작년에 전세금을 크게 올린 주인과 한바탕하면서 결국 다른 동네로 이사하기로 했다. 다시 그 부동산을 찾아갔지만 살림이 많아져 만만한 집이 없었다. 이사까지 시간이 좀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급하게 들어오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해, 10일 뒤에 이사를 하기로 했다. 오늘부터 당장 살림을 정리해야 한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교수는 '동네를 여행해보라'는 과제를 준다. 이제 익숙한 곳이지만 이사온 그 날처럼 동네를 다시 천천히 살피고 있다. 눈길이 닿는 장소마다 모두 추억이다. 


남산이 보였던 거실. 창문에 서서 해가 뜨고 질 때마다 벅찼다. 이제 떠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