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놈의 '희발' 목소리

잠 못 드는 아내들에게

by 권해정

샤워를 하고 몸을 수건으로 닦고 있을 때였다. 거실에서 우당탕탕 소리가 나더니 ‘문을 열지 말라’는 소리가 들렸다. 반대편에서 거칠게 문고리를 잡는 게 느껴졌다. 나는 지렛대 삼아 변기에 두 발을 대고 몸을 문에 붙여 온힘으로 문을 막았다. (홀 더 도어) 어찌나 애를 썼던지 손톱까지 아팠다.


작게 열린 틈 사이로 우리는 대치했다. 그놈이 ‘시발’ 거리며 숨소리를 냈다. 한 손으로는 휴대폰을 잡고 문자 메시지로 112에 ‘빨리 와주세요, 903호’라고 텍스트를 보냈다. 현관 비밀번호도 보내야 했다. 하지만 손이 덜덜 떨렸다.


틈 사이의 숨소리 섞인 욕은 멈추지 않았다.


불쾌했다. 근데 좀 이상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나를 해하려는 놈치고 시발 소리가 매우 안정적이었다.


안 힘드나? 숨이 좀 차야하지 않나?

숨소리에 분노가 없네?

아는 사람 목소리 같기도?


가만히 들어보니 시발도 아니었다.

희발? 그래, 희발. ‘희~~ 발~~, 희~~ 발~~.’ 굉장히 규칙적인 ‘희발’ 소리였다.


꿈이라고 눈치채면 더 이상 꿈이 아니다. 나는 잠에서 깼다.

옆에서 남편이 ‘희~~ 발~~’ 하면서 코를 골고 있었다.



• 사진: UnsplashQuin Stevenson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DB RA BBANG DB 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