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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해정 Oct 19. 2018

첫 사수에게 마지막으로 들은 말은

명절이 지나면 많은 사람이 이직을 준비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 말은 내 옆자리에서 현실이 되었다. 함께 웹진을 운영하는 후배가 돌연 이직을 선언한 것.  


1년 전 우리는 한 팀이 되어 웹진을 맡았다. 한참 어리지만 밝고 씩씩해 좋았는데, 좀더 일하다 보니 '반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대학생활을 말하는데 어쩐지 나와 비슷했다. 알고 보니 같은 학과에, 복수전공까지 같은 대학 후배였다. 특히 복수전공으로 택하는 학문은 소수만이 택하는 거여서 더욱 각별했다. 이점 때문에 나와 후배는 꽤 친해졌다고 자부한다.  


지난주 금요일에 환송회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말만 지나면 당장 새로운 회사에 출근한다는데 긴장되지 않는다고 하는 걸 보니 대단하기도 했다. 나도 첫 직장을 떠날 때 그랬던가. 환송회를 마치고 지하철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던 때에, 선배를 사수로 만나 좋았다고 말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해주고픈 이야기가 하나 있었는데 꾸욱 참고 손을 흔들었다.
              


첫 직장에서 나의 사수는 엄청 깐깐했다. 그러나 그의 깐깐함은 정당했다. 사회초년생인 나의 어리바리함은 볼만했으니, 나를 대함에 불만은 없었다.


사수와 회사에 이직을 고하고 마지막 출근 일. 삼겹살집에서 환송회를 가졌다. 따를 술이 없어지고 모두가 주섬주섬 외투를 찾을 때 사수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일 이야기는 이제 마지막이라며, 한마디만 하겠다고.  


숫자와 이름은 늘 틀려있다


텍스트라는 우주를 헤매며 '틀린 글자'를 찾아 바로잡는 과정을 해내야 하는 편집자에게 보내는 고참의 진심이자 노하우였다. 숫자와 이름은 오타 나기 쉽고, 오타가 나면 큰일 나니 잘 살피라는. 아마 보고서를 쓰는 일이 많은 사람이라면 공감할 거다. 숫자와 이름은 늘 틀려있다. 그 역시 이전 직장 선배에게 들은 말이라고 했다.


이제 매체를 떠나 기자니 편집자니 하는 직함은 어색하고, 이 말을 해준 사수의 깐깐함은 가물가물해졌지만, 텍스트를 앞에 둘 때마다 늘 이 말이 떠오른다. 숫자와 이름은 늘 틀려있다.  


후배를 보내며 나는 이 말을 고대로 전해주고 싶었다. 새로운 직장에서도 텍스트를 다루는 업무가 있다니, 이 말이 어쩌면 도움 되지 않을까. 하지만 어쩐지 꼰대스러워 말하지 못했다. 손을 흔들며 '앞으로 샌드위치는 누구랑 나눠 먹지?'라는 농담을 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이 말이 맴돌았지만 결국 입 밖에 내진 않았다.


우리에겐 늘 첫 사수가 있었다. 혹은 누군가의 첫 사수였다. 당신이 그에게 들은 마지막 조언은 무엇인가. 또 당신이 사수로서 후배에게 들려준 마지막 말은 무엇인가. 10월, 떠나는 이가 많은 이달에 응원과 격려의 말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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