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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nugeun Dec 24. 2023

해밀턴 카키 머피 42mm

feat. 인터스텔라

 시계와 영화를 모두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시계를 모를 수 없다. 2014년에 개봉했던 영화 인터스텔라에 등장한 해밀턴 카키 필드 머피(Khaki Field Murph, 그러고 보니 마지막에 왜 ‘y’가 빠져 있지?)다. 작년 말에 중고로 구입했다. 

세일 기간에 찾은 자라 매장에서 마음에 드는 니트와 함께


제원

모델명: H70605731

다이얼 크기: 42mm

두께: 11mm

러그 크기: 22mm

세로 길이(러그 투 러그): 52mm

방수: 10 bar

파워리저브: 80 시간(h-10 무브먼트)

가죽 스트랩

공식 홈페이지 가격: 145만 원

 케이스백은 오픈 케이스백이다. 특별히 볼 건 없지만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시계 중 유일하게 무브먼트를 볼 수 있는 시계라서 종종 들여다본다. 

 야광은 다이얼의 숫자와 시침 및 분침에 발려있다.  

밤에 선명하게 사진 찍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참고로 해밀턴의 카키 필드 라인은 밀리터리 콘셉트를 추구하는 라인으로 단정하고 우아한 시계보다는 견고하고 내구성이 뛰어나면서 기능에 충실한 시계를 추구하는 라인이다. 

https://www.hamiltonwatch.com/ko-kr/collection/khaki-field.html


인터스텔라와 카키 머피

 영화와 이 시계의 협업 스토리는 아래 해밀턴 홈페이지와 중앙일보 기사에 아주 잘 정리돼 있다. 그 외에도 검색해 보면 수많은 시계 마니아들이 자신의 블로그나 YouTube에 잘 정리해 놓은 자료들을 찾을 수 있다.

https://www.hamiltonwatch.com/ko-kr/making-the-khaki-field-murph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49965#home

 위 기사에 잘 정리돼 있지만 원래 해밀턴에서 팔던 제품이 아니었다. 해밀턴에서 이 영화를 위해 제작한 소품용 시계였다. 그런데 시계가 그저 소품용 시계라고 하기에는 아주 괜찮게 디자인돼 있었고, 영화에서도 단순히 소품으로 소비되는 게 아니라 극 전개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그 영화가 탄탄한 스토리와 빼어난 연출을 바탕으로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면서 이 시계를 구매하고 싶다는 요청이 쏟아졌다고 한다. 비록 5년이나 걸렸지만 해밀턴이 그 요청에 응답하면서 현재와 같이 정식 상품으로 만날 수 있게 됐다. 

 최초에는 영화에 어울리는 특별한 케이스에 담은 한정판도 2,555개(지구에서의 7년을 의미하며 지구의 7년은 영화 속 밀러 행성에서의 한 시간과 같다고 한다) 출시됐는데 아쉽게 그 버전은 놓쳤다. 내가 구매한 버전은 이후 평범한 케이스에 담겨 출시된 일반 제품이다. 다행히 한정판과 시계 자체에는 차이가 없다. 


38mm VS 42mm

 해밀턴 카키 머피는 현재 두 가지 크기로 제공된다. 하나는 2019년에 처음 머피라는 이름을 달고 출시됐던 42mm 버전. 영화 속 소품으로 등장했던 시계와 동일한 크기로 제작된 버전으로 내가 지금 갖고 있는 시계는 이 버전이다. 

 내가 느끼기로 대략 2010년대 중반부터, 즉 첫 번째 카키 머피가 나오기 이전부터 트렌드가 바뀌면서 사람들이 점점 더 작은 시계로 갈아타고 있었다. 예를 들어 2010년대 초반만 해도 손목 둘레가 대한민국 평균(16~16.5cm)에 가까운 사람이 시계 동호회 카페나 사이트에 내 손목 크기에 어떤 크기의 시계가 어울리겠냐고 질문하면 42mm 정도가 괜찮다는 답변이 꽤 나왔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42mm는 다소 크다고 평하며 40mm 이하로 추천하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에 따라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 멋진 시계를 조금 더 작은 버전으로 갖고 싶어 했고, 이런 소비자의 목소리에 반응한 해밀턴이 2022년 말에 다이얼 크기를 줄여 38mm 버전을 내놓았다(20mm 러그에 길이 44.7mm). 아직 차보지 못했지만 다이얼 크기는 4mm가 줄었고, 길이는 7mm가 넘게 줄었기 때문에 42mm 버전과 비교해 착용감은 월등히 좋을 것 같다.

https://www.hamiltonwatch.com/ko-kr/h70405730-khaki-field-murph-38mm.html

 가만 보니 해밀턴은 소비자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긴 하는데 행동이 조금 굼뜬 것 같다. 2014년에 개봉한 인터스텔라에 나온 머피가 출시된 것은 무려 5년이나 지난 2019년이었고, 그 이후 다시 작은 버전이 나오기까지 3년이 걸렸으니 말이다.

 아무튼 사실 42mm 버전도 다이얼 크기만 보면 그렇게 큰 시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물론 내 기준에서). 다만 시계줄을 고정하는 러그 부분이 조금 넓고 길게 뻗어 있어서 다이얼 크기에 비해 시계가 더 커 보이는 경향이 있고, 길이도 평균적인 42mm 다이얼 시계에 비해 조금 긴 편이긴 하다. 그 때문에 찼을 때 손목에 착 달라붙는다는 느낌은 없다.

 그럼에도 그럭저럭 차고 다닐만하다. 다이얼 크기가 44mm였던 파네라이 510과 무려 46mm였던 네비타이머 월드 및 IWC 빅파일럿을 차고 다니면서 느꼈는데 시계가 마음에 들면 어느 정도 크더라도 계속 손목에 올리게 된다. 이 시계 역시 꾸준히 손목에 올라오고 있다.

 게다가 42mm 버전에는 38mm 버전에는 없는 두 가지 메리트가 있다. 

 첫 번째는 바로 이 시계가 영화에 등장한 바로 그 시계라는 것. 쿠퍼는 38mm 버전이 아닌 42mm 버전을 머피에게 남기고 우주로 날아갔다. 이후 블랙홀을 거쳐 5차원으로 넘어가 인류를 구원할 데이터를 딸에게 전달하기 위해 초침을 움직여 모스 코드를 전달한 시계가 바로 42mm 버전이다.


 워너브라더스 제공 사진

 또한 42mm 버전의 시계에만 초침에 ‘eureka’라는 글자가 모스 부호 형식으로 들어가 있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머피가 아버지가 보내준 모스 부호를 읽고 인류를 구원할 방정식을 완성한 뒤 서류 뭉치를 던지며 ‘유레카’라고 외치는 장면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해밀턴에서 이 장면에서 영감을 얻어 카키 머피를 발매하며 초침에 ‘eureka’를 모스 부호로 새겨주었다. 언뜻 보면 그냥 얼룩 같지만 자세히 보면 모스 부호를 읽을 수 있다.

모스 부호는 다음과 같다. 

https://ko.wikipedia.org/wiki/%EB%AA%A8%EC%8A%A4_%EB%B6%80%ED%98%B8

아래와 같이 다이얼 중앙부터 바깥으로 읽어나가면 된다.

E(·), U(··-), R(·-·), E(·), K(-·-), A(·-)   

 해밀턴에서 얼마나 진심으로 이 상품을 기획하고 생산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든다.


질리지 않는 매력

 이제 구매한 지 1년 2개월 정도 된 것 같다. 비슷한 시기에 구매한 오메가 씨마스터 다이버 300M(2220.80.00) 모델과 번갈아 가면서 잘 차고 다녔다(참고로 씨마스터는 영화 ‘007 카지노 로얄’에서 다니엘 크레이그가 차고 나온 것을 보고 반해 구매했다). 

 무난한 디자인에 특별한 스토리가 담겨 있다는 게 이 시계의 매력이다. 무난하기 때문에 어느 착장에도 잘 녹아들고, 특별한 스토리가 담겨 있어서 쉽게 질리지 않는다. 


 시계에 달려 나오는 가죽 스트랩도 꽤나 품질이 괜찮다. 악어 무늬를 넣고 가운데를 볼록하게 만든 송아지 가죽 스트랩인데 디자인도 좋고 착용감도 좋다. 날씨가 서늘해지면 주로 이 가죽 스트랩을 채워서 차고 다니다가 더워서 땀이 나기 시작하면 원래 갖고 있던 러버 스트랩으로 바꿔 채워서 차고 다닌다. 


 최근 오메가 씨마스터 300 오버홀을 맡기러 충정로에 있는 스와치 그룹 서비스 센터에 갔을 때 간 김에 함께 점검을 받아봤는데 아직 아무 이상 없다는 확인도 받았다. 

 참고로 충정로 서비스 센터에 가면 시간 오차 확인 및 조정이나 자성 제거, 브레이슬릿 세척 정도는 무료로 받을 수 있다. 

https://naver.me/GrSNYVQe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잘 차고 다닐 것 같다. 오메가 씨마스터 300 오버홀 비용(88만 원…)을 보고 나니 해밀턴 오버홀 비용은 굉장히 합리적으로 보이는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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