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엄마는 신과 같은 절대적 존재라고 했다. 엄마가 세상의 중심인 시절은 언제까지일까? 내게도 엄마가 나의 전부인 시기가 있었다. 국민학교 2학년 때 서울의 한 변두리의 투룸 빌라로 이사를 했다. 중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그 집에서 5살 어린 남동생과 작은 방을 나누어 사용했다. 지금 떠올리는 어떤 오후는 내가 몇 살 때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그 빌라에서 있었던 일이라는 것만 기억한다. 목소리가 크고 활발한 성격의 엄마는 평소와 다르게 말이 없었고 안방 침대 헤드에 상체를 기댄 채 앉아 있었다. 내 신경은 그런 엄마에게 쏠려 있었다.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문 앞을 서성였다. 엄마에게 쓸데없는 질문을 간격을 두고 이어갔다. 내가 잘못한 게 있는지 묻고 싶었다. 이 상황에서 내가 잘하면 엄마의 기분이 달라질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런 나의 마음을 엄마는 모르는지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건지 반응하지 않았다. 갑자기 엄마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방문 앞으로 저벅 걸어왔다. 그리고 나에게 귀찮게 하지 말라고 소리치고는 방 문을 ‘쾅‘ 닫았다. 나는 닫힌 문 앞에 서서 기다렸다. 방 안의 작은 소리도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하면서.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엄마가 방 문을 벌컥 열고 거실로 나왔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는데 일단 먹자.” 엄마가 말했다. 나에겐 슈퍼에 다녀오라고 했다. 나는 식빵과 치즈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 계란이 삶아져 있었다. 엄마는 오래 사용해서 상한 자국이 많은 노란 플라스틱 양푼을 꺼냈다. 껍질을 깐 삶은 달걀을 숟가락으로 짓이겼다. 즐거운 마음으로 정성껏 만든 샌드위치는 아니었다. 마요네즈에 버무려진 포슬포슬한 계란과 아삭한 오이가 만난 샌드위치는 생각보다 맛있었다. 만든 샌드위치를 남김없이 나누어 먹은 뒤 엄마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나와 동생을 대했다. 과거의 기억을 되짚어 보면 엄마는 내가 어릴 때부터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했었다. 그때마다 나는 엄마의 죽음 이후의 나를 떠올려 보려고 했지만 엄마 없이 내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상상할 수 없었다. 이제는 엄마가 당신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도 나는 동요하지 않는다. 엄마는 그날 정말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던 걸까? 엄마가 죽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먹고 싶었던 음식이라면 엄마의 소울푸드는 오이 달걀 샌드위치였을까? 설마 아니겠지. 그냥 힘든 마음에 무심코 내뱉었던 말에 소심한 내가 크게 내가 반응했던 거라고 믿고 싶다. 그렇다면 엄마의 진짜 소울푸드는 뭘까?
나는 오랫동안 기억 속 그날의 엄마를 떠올리며 그때마다 야속하다고 생각했다. 엄마처럼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에서야 잠깐이라도 혼자가 되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날 나와는 다르게 작은 방에 들어가서 혼자서도 잘 놀던 동생처럼 엄마에게 매달리지 않았다면 나도 상처받지 않았을까? 육아와 별개로 살다 보면 여러 이유로 슬프고 화가 날 때가 있다. 부정적인 감정으로 휘청거릴 때조차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 내 몸이 아플 때에도 아이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몸을 움직여야 한다. 특히 남편과 심하게 다툰 날이면 속상한 마음에 아이들의 작은 실수에도 화가 난다. 나에게도 엄마의 오이 달걀 샌드위치 같은 음식이 필요하다. 언제든 쉽게 구할 수 있고 비싼 가격 때문에 지갑을 열기 망설이지 않아도 되는 소박한 메뉴. 나에겐 커피와 조각 케이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