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마음

by 이나은


노란 원복을 입는다. 개나리색 유치원 버스를 타고 논과 밭 사이를 달린다. 엄마는 내가 8살이 되기 전에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아빠의 일을 따라 서울에서 경기도로 왔다. 엄마는 자식을 서울에 있는 국민학교에 입학시키려는 굳은 의지를 보였다. 외가가 있는 서울의 한 산동네로 이사했다. 내가 입학한 학교는 한 반에 달동네 아이들과 부촌의 아이들의 섞여 있었다. 내 짝꿍은 쉬는 시간이 되면 내가 본 적 없는 과자를 책상 위로 꺼냈다. 아이들이 과자 주위로 하나 둘 모였다. 과자 하나만 달라는 아쉬운 소리가 들렸다. 짝꿍의 마음에 든 몇몇만 과자의 맛을 볼 수 있었다. 하루는 짝꿍이 나에게 물었다.

“너도 먹고 싶지?”

“아니.”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많이 먹는다고 하지 않던가. 나는 그 과자의 맛을 몰랐고 궁금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아쉬운 소리를 하고 싶지 않았다. 대답을 한 뒤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졌다. 짝꿍이 주먹으로 내 코를 가격한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살면서 처음으로 코피를 흘렸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알 수 없었다. 집이 잘 살면 친구를 때려도 되는 건가? 그때 나는 결심했다. 네가 살고 있다는 유엔빌리지에 나도 꼭 살겠다고. 같은 곳에 살면 동등한 처지가 되고 함부로 나를 때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린 마음에 품을 수 있는 희망이었다. 불혹을 앞두고 있는 나는 그 꿈이 다시 태어나기 전에는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걸 안다. 혹시 모르겠다. 내 아이들이 BTS와 같은 세계적인 가수가 되어 늙은 어미의 로망을 이루어 줄지도.

유엔빌리지에 살겠다던 8살은 자라나 마산에 살고 있다. 서울에서 마산으로 1박 2일에 걸친 장거리 이사가 내 의지는 아니었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나는 일을 그만두었다.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동안 쉬면서 결혼 준비를 하고 새로운 직장을 구할 생각이었다. 허니문 베이비가 생기며 일을 쭉 쉬게 되었다. 남편의 세 식구의 외벌이 가장이 되었다. 흔히들 말하는 가장의 무게를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남편이 내 몫까지 떠안으며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결심을 한 것 같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겠다는 남편을, 마산으로 내려가고 싶다는 남편을 말릴 수 없었다. 나는 회사로 돌아가 일을 하며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대신 서울을 떠나왔다. 회사를 그만두면 안 되는 거였다. 복직할 직장이 있었다면 나는 아이와 둘이 서울에 남았을 것이다.

살고 싶은 곳에서 산다. 먹고 싶은 걸 먹는다. 머물고 싶은 공간에 머문다.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마음껏 사랑한다.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며 건강하게 사는 게 요즘 나의 꿈이다. 살고 싶은 서울에 살지 못하면서 덧붙여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기 어렵게 되었다. 나의 부모님과 내 오래된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선 KTX를 타고 3시간을 달려야 한다. 살고 싶은 곳에 살지 못한다고 해서 나를 낙담한 채로 두진 않는다. 지금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독서모임에 나가고 필라테스로 건강을 챙기며 글쓰기 수업을 듣는다. 서울을 떠나와 만날 수 없는 친구가 그립기도 하고, 마산에 왔기에 만날 수 있는 새로운 인연도 있다. 그러다 문득 TV 속에서 내가 사랑하는 장소를 마주한다. 늦가을의 부암동을 보면 코 끝이 시려진다. 잠수교를 보면 나도 자전거를 타며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싶어 진다. 해가 진 뒤 강변북로를 달리는 수많은 차들의 빨간 브레이크 등을 보면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하고 싶다. 당장 그럴 수 없는 현실을 알기에 울컥하기도 한다. 내가 지금 간절하게 그리운 과거는 서울에 살던 나일까, 아니면 나의 젊은 시절일까?

6살인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날이 멀지 않은 느낌이다. 과거의 엄마처럼 나도 내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전에 서울로 이사를 가고 싶다. 초등학교 입학이라는 핑계로 서울에 올라갈 이유를 만들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서울의 집값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서울에서 집을 구하기 위해선 더 많은 돈이 필요해진다. 그래서일까 마음이 급해진다. 마산이 싫은 건 아니다. 우리가 가진 예산으로 서울에선 구할 수 없는 평수의 아파트에서 살 수 있었다. 거실의 창으로 바다가 살짝 보인다. 딸은 바다의 윤슬을 보며 예쁘다고 말할 수 있는 아이로 컸다. 가끔씩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에서 밀려 지방으로 내려왔다는 생각에 무력해지는 마음이 싫다.

아이들이 없었다면 남편이 약속했던 2년 동안만 마산에서 살고 미련 없이 혼자라도 서울로 돌아갔을 거다. 남편은 평일에 마산에 살면서 본인이 선택한 일을 계속하면 된다. 마음을 끄는 구직공고는 대부분 근무지가 서울이다. 엄마보다 아빠를 더 좋아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로 이사를 한다면, 아빠를 주말에만 볼 수 있다. 요즘처럼 남편이 주말에도 일을 한다면…… 서울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큰지 내가 가장 잘 아는데 엄마이기도 한 또 다른 내가 그 마음은 욕심이라고 나를 타이른다.








이전 08화천사가 천사를 데려오는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