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분 이상의 노동

by 이나은

내가 서른 살 무렵에 엄마랑 나눴던 대화 기억나? 엄마가 나에게 결혼하면 내 살림 생기고 좋다고 했지. 그래서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날까? “뻥치지 마”라고 대답했어. 그때 나는 엄마의 말이 진심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 엄마가 힘들어 보였어. 아침마다 잠에서 깨기 힘들어했지. 침대에 누운 채로 학교에 가야 하는 내 이름을 소리쳤지. 그 소리에 깜짝 놀라서 잠에서 깨서 하루를 시작하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엄마보다 내가 먼저 깨려고 휴대폰 알람을 맞추었지. 진동소리만으로도 나는 잠에서 깰 수 있는 아이 었으니까. 엄마보다 먼저 일어나 씻고 교복을 입고 현관문을 나설 때까지 엄마는 내 학교에서 먹을 도시락을 챙겨주지 못했어. 어떤 날은 엄마가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한 상태로 매점에서 간단하게 사 먹으라며 돈을 주었지. 또 어떤 날은 점심시간 전에 도시락을 학교로 가져다준다고 했어. 점심시간이 시작되고 교문 앞으로 나가서 엄마를 기다렸어. 나와 함께 점심을 먹으려던 친구들도 교실에서 기다리게 만들었지. 그게 참 싫었어. 친구들을 기다리게 만드는 상황이. 엄마가 해야 되는 많은 일 중에 내가 밀려난 기분이 들기도 했거든. 고등학생이 되면서 급식을 먹을 수 있어 좋았어.

마흔의 나는 엄마처럼 남매를 키우고 있네. 나는 엄마와는 다른 엄마가 될 거라고 생각했고 그럴 자신도 있었어. 내가 나를 너무 과대평가했던 것 같아. 올빼미형 인간이 엄마가 된다고 하루아침에 아침형 인간으로 바뀌진 않더라. 하루 삼시 세 끼를 만들고 아이들에게 챙겨 먹이는 일이 이렇게 힘든 일이었다는 걸 내가 해보니 알겠어. 역시 뭐든 직접 해봐야만 알 수 있나 봐. 그래서 엄마가 불만 많은 딸에게 결혼하라고 꼬신 거였나? 남편은 회사에 나가 네 식구가 한 달을 살아갈 월급을 벌고 나는 집에서 아이들 육아를 하지. 아이들을 낳지 않았다면 남편도 나도 각자 1인분의 노동만을 생계를 꾸려갈 수 있었겠지?

내가 다시 돈을 벌어서 경제적으로 남편에게서 독립되고 싶다고 말하면 엄마는 언제나 늘 같은 말을 했잖아. 집에서 편하게 애들 키우지 뭘 밖에 나가 돈 벌 생각을 하냐고. 또 다른 사람들은 말해. 남의 돈 버는 것보다 집에서 내 새끼 키우는 일이 더 보람 있지 않냐고. 요즘 같이 외벌이만으로 살기 힘든 시기에 워킹맘이 아닌 전업주부로 내 아이를 내가 키울 수 있는 상황이 다행이기도 하지. 그런데 엄마, 엄마는 알잖아. 내 아이를 키우는 일은 너무 당연한 일로 여겨지는지. 월급을 주는 사람도 없고. 남들이 인정하는 경력도 쌓을 수 없고. 여전히 전업주부는 집에서 쉰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다 큰 애들은 처음부터 지들이 잘나서 알아서 다 큰 것처럼 행동하고 나처럼 말이야.

첫째를 임신했을 때 남편에게 주의사항을 알려줬어. 출근하면서 아이와 함께 집에 있을 나에게 ‘쉬고 있어’라는 말을 하면 화를 참지 않겠다고. 밥 챙겨 먹을 시간, 화장실 갈 시간도 부족한데 쉴 시간이 어디 있냐고. 엄마는 이미 해봤으니까 아니까 적어도 엄마는 나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 아니야? 그래 뭐 엄마 말을 잘 듣는 딸도 아니니까 엄마가 뭐라 하든 나는 또 내 식대로 해나가 볼게. 내가 애쓰는 게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라는 것도 알 것 같아. 나는 내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하다고 믿어. 엄마로만 사는 나는 행복하지가 않는 것 같아. 나중에 다 큰 아이들한테 내가 너희들 때문에 이렇게 살았다고 그런 말을 하지 않는 게 요즘의 내 목표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어.

어려운 형편에 아빠의 월급을 아끼고 아껴서 나에게 예쁜 옷을 사서 입히고 유치원 가기 전에 아침마다 미용실에 다녀온 아이처럼 머리도 예쁘게 묶어줘서 다른 친구들이 부러워했지.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공부를 잘했던 것도 아니고 뛰어나게 잘하는 것도 없었어. 엄마는 나에게 뭔가를 더 바라지 않고 지금도 충분히 자랑스러운 딸이라고 항상 말해줬지. 그 말에 나는 진짜 내가 잘났다고 특별한 아이라고 착각하기도 했어. 엄마가 나에게 완벽한 엄마는 아니었지만 엄마 나름의 최선을 다 했다는 것도 이젠 알아. 세상에 완벽한 엄마가 존재하기는 할까? 나는 왜 그렇게 엄마에게 바랬던 게 많은 걸까? 저밖에 모르고 저 잘나서 큰 줄 아는 딸을 키우느라 고생했어 엄마. 나는 완벽한 엄마가 되는 건 빠르게 포기했어. 육아를 하는 틈틈이 내가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도 챙기면서 스스로의 행복도 챙기는 엄마가 되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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