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믿으시나요? 수능 시험을 끝낸 후 대학 원서를 작성하던 시기가 떠오른다. 서울 소재의 대학 중 호텔경영학과에 다니고 싶다는 목표를 정했지만, 수능점수는 턱없이 부족했다. 나와 비슷한 수능 점수를 받은 친구는 내신관리를 잘 해온 덕분에 미리 수시 지원을 한 상태였고 수능과 함께 합격이 확정되었다. 나는 오로지 정시뿐이었는데 망했다. 재수를 할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 엄마는 또 점을 보고 왔다.
"네가 가려던 학교에 원서 쓰면 갈 수 있데."
"내 인생이 걸린 문제인데 점쟁이 말 들으라고?!"
지금 와서 생각하면 원서를 쓰는 일이 인생까지 걸만한 일이었을까 싶지만 그때의 나에겐 인생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했던 순간이 맞다. 호텔경영학과에 원서를 넣는다는 건 상향지원을 넘어 원서료를 버리겠다는 생각과 다름없어 보였다. 결국 나는 점수에 맞춰 경영학과 산소(02) 학번이 되었다.
여중, 여고를 거쳐 여대에 들어간 나는 미팅의 기회가 오면 일단 손을 들었다. 4대 4 미팅이었다. 장소는 건대입구역 근처의 호프집이었다. 주말 늦은 6시, 약속시간에 맞춰 도착했고 남자들은 한 명도 시간에 맞춰오지 않았다. 주문을 못한 채 일행들과 수다를 나누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꽤 긴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우리의 미팅 상대들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주선자이며 참석자인 친구는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재차 양해를 구했다. 나중에는 어디 얼마나 대단한 친구들인가 얼굴이나 보고 가자는 마음에 한 시간 넘게 기다렸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약속시간에 한 시간 이상 지각한 상대들과 잠깐의 대화만 나누었지만 나는 집에 가고 싶어졌다. 친구들이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질문을 이어가는 동안 나는 가방 끈을 손에 꼭 쥔 상태로 집에 그냥 갈까 말까를 고민했다. 그러다 주워듣게 되었다. 상대들이 내가 목표했던 대학에 다니고 있다는 걸. 이렇게 불성실한 친구들이 그 학교에 다닌다고? 나는 의문이 들었다. 직접 질문할 의욕은 없었는데 때마침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친구가 물었다. 정원보다 지원자가 적어서 그들은 미달된 학과에 합격했다고 했다. 물론 호텔경영학과는 아니고 공과대학이긴 했다. 내가 원서를 넣지 않았을 학과이지만 뭔가 억울하고 부러운 마음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점쟁이의 말이 맞았던 것인가? 그 학교에 원서를 쓰라고 했지 호텔경영을 쓰라고 하지는 않았잖아. 공과대학 다니면서 부전공으로 호텔경영을 전공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혼자서 먼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만약'의 늪에 빠졌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 친구들이 하나둘 입사지원서를 쓰고 면접을 보면서 마음이 조급해졌다. 학교 취업정보센터에서는 졸업예정자일 때 본인이 갈 수 있는 최고 레벨의 회사에 합격할 확률이 크다고 안내했다. 나도 가만히 있으면 알 될 것 같았다. 꼭 가고 싶었던 회사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경험 삼아 입사 지원하고 면접을 봐볼까 싶어서 지원했던 벤처기업에 덜컥 합격했다. 최종면접에서 같은 과 친구를 떨어뜨리고 합격한 회사에 출근하기로 했다. 남의 돈을 버는 일은 녹록지 않았지만 내가 하고 있는 업무가 누구나 할 수 있는 시시한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매일 아침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출근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지하철을 타야 했다. 30분 정도를 이동한 뒤 열차에서 내려 사람들에게 떠밀리듯 녹색라인의 열차로 환승했다. 어제도 보고 오늘도 보고 내일도 함께할 팀원들과 사무실에 앉아 반복되는 업무를 처리하다 점심을 먹고 다시 일하고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기운이 쏙 빠졌다. 저녁을 먹고 TV를 좀 보다 보면 내일 출근을 위해 잘 시간이 되었다. 그렇게 일하고 받은 월급에서 일부를 떼어 용돈으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모두 엄마의 손으로 들어갔다. 내 이름으로 적금 통장 하나 만들 수 없다고? 왜 재주는 내가 부리고 돈은 엄마가 받아가는 느낌이지? 엄마가 나를 낳고 키워졌으니까 당연한 건가 다들 이렇게 사는 걸까? 아닌데 내 친구는 회사를 다니면서도 집에서 용돈을 여전히 받던데. 그 친구는 한 달에 얼마를 모을까? 나보다 월급도 많은 것 같던데 나중에 결혼할 때 결혼자금을 스스로 충당할 수 있겠지. 그럼에도 그 친구의 부모는 결혼자금을 보태주겠지? 생각은 하염없이 이런저런 가정(假定)을 반복했다. 회사를 다니기보다 조금 더 공부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금보다 전문분야의 일을 찾고 싶었다.
다니고 싶지 않은 회사를 다니면서 돈을 모으는 것도 아닌 상황. 회사를 그만두고 편입을 해서 하고 싶은 일, 지금의 나로는 부족하고 성장해야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나는 퇴사를 고민하는 중에 엄마에게 내 의사를 전달했다. 엄마는 반대했다. 얼마 뒤 엄마는 점을 보았는데 내 사주는 일을 쉬면 안 되는 사주라고 했다. 공부를 하더라고 회사를 다니면서 해야 한다고 했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 고민할 때 초인간적인 영역 너의 팔자는 그렇게 정해져 있다는 말은 내 머릿속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던지, 한번 들은 말은 뽑아도 뽑아도 잡초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 말에 흔들리지 않을 자신은 없지만 또 그 말을 전적으로 믿을 사람도 아니지 내가.
"점쟁이가 그런 말을 했다고? (성장을 멈추라는) 무슨 그런 팔자가 있어? 거기 어딘데?"
나는 엄마를 앞세워 점집으로 쫓아갔다. 엄마를 문 밖으로 내보내고 점쟁이와 단둘이 마주 앉았다.
내 얼굴에 뭔가 써져있었던 걸까? 표정으로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던 걸까? 점쟁이는 엄마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와는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지금은 직장에 다니기보단 공부를 더 해야 한다고 디자인 쪽 공부를 해보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디자인 쪽을 공부할 생각은 아니지만 회사를 그만두면 안 된다는 말은 어디서 나온 걸까? 내가 회사 그만뒀을 때 제일 손해 보는 사람이 누구일까? 엄마 말 안 들어. 점쟁이 말도 안 들어. 내 마음대로 하고 내 선택의 책임도 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