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처녀 마산댁 되다
평일 아침이면 잠에서 깨자마자 어린이집 등원시간에 맞춰 촉박하게 등원 준비를 한다. 20분만 더 일찍 일어났어도 매일 같이 이 전쟁을 치르지 않아도 될 텐데.. 등원시키고 혼자 집으로 돌아오면 자연스럽게 거실 창 앞에 놓인 테이블 앞에 앉는다.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가 볕을 받아 반짝반짝 빛난다. 숨을 돌리며 한동안 바다를 바라본다. 마산에 내려오기로 결정하고 시댁과 같은 아파트 단지의 이 집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이 바다 때문이었다. 매일 이 바다를 보며 살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남편과 나는 자전거 동호회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물론 서울에서.
라이딩 중간 휴식 시간에 옆자리에 앉게 된 우리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지만 이 남자가 서울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고향이 어디인지 묻는 질문에 남편은 당황했다. 대답 대신 자신이 사투리를 안 쓰지 않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사투리는 쓰지 않지만 억양은 남아있었다. 창원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는 정확이 몰랐지만, 몇 번 여행 갔던 부산에서 가깝다고 하니 어디쯤인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첫 만남 뒤 우리는 자연스럽게 곧 연인이 되었고 큰 다툼 없이 결혼을 생각하게 되었다.
일단 서로의 부모님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기로 했다.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이 예매한 KTX를 타고 예비 시부모님을 뵈러 갔다. 서울역에서부터 3시간을 달려 우리가 도착한 역은 창원이 아닌 마산역이었다. 그때야 나는 남편에게 왜 창원이 아닌 마산역인지 물었다. 마산이 창원 바로 옆에 붙어있고 지금은 같은 창원시라는 걸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다. 나는 그만큼 마산에 대해, 창원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마산에 살고 있다.
가끔 생각한다. 내가 이 남자를 만나지 않았다면 과연 마산에 올 일이 있었을까?
나의 이상형과 거리가 먼 남편이었지만 성실하고 직장인이라는 건 안심이 되었다. 큰돈을 벌지 못해도 매달 안정적인 수입이 있는 남자가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은 결혼 후 딸이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를 그만두고 시아버님이 하는 작은 사업을 함께 하고 싶다고 했다. 나에 의견을 묻긴 했지만 이미 마음에 결정을 한 느낌이었다. 더 이상 발전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회사를 계속 다니라고 할 수도 없었다. 문제는 남편이 아버님에게 새로운 일을 배우려면 마산으로 내려가야 했다. 나와 딸은 서울에 남을지 함께 이사를 할지 결정해야 했다.
서울과 경기 지역을 벗어나 살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나는 서울에 남고 싶었다. 친정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살게 되는 게 싫었다. 친구도 한 명 없는 곳으로의 이사는 내게 너무 큰 두려움이었다.
당시 친정 부모님도 이사를 하셔야만 했던 상황에서 우리 부부가 금전적인 도움을 드리지 않아도 되었다면 나는 아마 끝까지 서울에 남는 선택을 했을 것 같다. 사는 지역이 바뀌는 이사를 결심하고 남은 8개월가량의 이사 당일까지 혼자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이왕 이사 가기로 했으니 가면 생길 변화 중에 좋은 점을 찾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만나면 내성적인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잘 표현하지 못했다. 외향적인 친구들의 의견을 따라 휩쓸리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읽고 싶은 책을 읽으며 나에게 집중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다.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여행을 가듯, 같은 언어만 사용하는 아는 사람이 없는 동네로 이사 가서 혼자서 고독하지만 자유로워지기로 결심했다.
또 살던 지역, 공간도 변화가 생기며 나의 삶의 패턴도 습관도 바뀌길 바랐다. 운동도 하고 집안 청소도 더 자주 하며 좀 더 알찬 하루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서울에서 계속 살았다면 딸을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 입소 대기를 해야 했지만, 이사 갈 아파트 단지 안의 어린이집은 원하는 시기에 바로 입소가 가능했다. 딸이 어린이집에 가면 새로운 것을 배울 시간이 생길 테니까.
막상 마산에서 살게 된 지 1년이 되어가는 지금의 나는, 딸을 어린이집에 보낸 낮 시간에 일주일에 두 번 필라테스를 하고 2주에 한 번 수요일 오전에 책을 1~2권을 읽고 독서모임에 참석한다.
문화센터 꽃꽂이 수업을 한 학기 들었고 함께 수업을 들었던 친구들과 도예수업을 들으며 컵과 화병, 접시 등을 만들었다.
도예수업은 전처럼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친구들이 원해서 나도 덩달아 참석했던 것 아닌가 생각하며 잠시 쉬고 있다. 딸은 어린이집에서 잘 적응해서 친구들이 생겼고 등하원 시간에 그 친구들과 마주치며 나도 자연스럽게 딸 친구의 엄마들과 친구가 되었다.
하원하고 다 같이 키즈카페에 가기도 하고 어린이 뮤지컬을 보러 가기도 하면서 공동육아의 좋은 점을 누리고 있다. 엄마들과의 모임에서는 전보다 좀 더 주체적으로 내 의견을 말하고 그 의견대로 되지 않아도 마음이 위축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생활습관도 사람들과의 관계도 이사 전보다 조금 달라졌지만 전체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은 날들이다. 확실하게 얻은 건 앞으로 (한국에서) 어디로 이사 가든 잘 적응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다.
반대로 잃은 것이 있다면, 반짝이는 바다를 매일 봐서인지 처음 느꼈던 기쁨과 감흥은 점점 사라지고 새로운 바다가 보고 싶은 마음이 자주 든다.
내 앞에 있는 아름다움은 이제 내게 당연한 것이 된 건지...
이렇게 금방 사라질 기쁨이었다면 시댁과 좀 떨어진 아파트로 이사할 걸 그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