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안녕을 위한 소심한 복수

by 이나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거리두기가 4단계로 격상됐던 적이 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다시 휴원하게 되었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부터 또다시 혼자서 두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바닥까지 가라앉았다. 지난번 가정보육 때 점심을 먹은 둘째는 졸려서 잠투정을 하면서도 누나와 더 놀고 싶어 했다. 울면서 낮잠을 거부하던 둘째의 짜증을 한 시간 이상 받아주며 달래야 했다. 그런 나에게 남편은 해맑게 말했다. 서울에 살고 있는 시숙이 내려와서 토요일 일요일 이틀 동안 골프 라운딩을 가기로 했다고. 멤버는 옆 동에 살고 있는 시부모와 시숙 그리고 남편이다. 아이는 함께 만들었는데 왜 육아는 전적으로 나의 몫일까? 시가 붙은 가족들 앞에서 나는 왜 이렇게 무력해지는 걸까. 며느리에게 두 아이의 육아를 맡기고 주말에 당신의 아들 둘과 함께 운동을 즐기러 가는 건 부당한 일이라고 시부모에게 내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화를 꺼내지 못하고 내 안에 쌓으면 내 마음에 깊은 우울이라는 우물이 생긴다.

남편은 6시 전에 일어났다. 잠귀가 밝은 나는 남편이 준비하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대로 누워 소리만으로 남편의 동선을 짐작한다. 집을 나서는 문소리에 아이들도 깼다. 평소보다 한 시간 이상 빠르게 나의 육아노동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아침은 간단하게 아이들에게 달걀 프라이와 우유를 줬다. 아침을 때우자마자 점심 걱정을 한다. 입이 짧은 첫째와 제대로 된 식사는 하지 않고 젤리만 달라고 보채는 둘째. 뭘 준비해야 할까. 생각하는 중간중간 첫째와 둘째가 하나의 장난감을 놓고 싸우면 중재를 해야 했다.

첫째에게 뭐 먹고 싶은지 물으면 답은 항상 정해져 있다. 칼로리만 높고 영양성분은 부실한 우동을 끓였다. 제대로 챙겨 먹이지 못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점심을 먹이고 첫째에게 부탁했다. 동생이 잠들 때까지 엄마랑 같이 잠든 척 누워있자고. 동생이 잠들고 나면 조용히 침실에서 나와서 보고 싶다고 했단 유튜브 영상을 보여주기로 했다. 둘째가 잠든 것 같아서 조용히 침대에서 일어나 보니 첫째도 함께 잠들어 있다. 혼자서 깨금발로 걸어 거실로 빠져나왔다. 짧은 자유시간에 일단 기분 좋아지는 노래라도 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여행과 관련된 노래를 볼륨을 낮춘 상태로 틀었다. “찌는 듯한 어느 여름 남인도에서 내가 애써 예약해 놓은 멋진 럭셔리 버스~ 하지만 그곳에 갔을 때 내가 만난 건 사람 염소 닭이 같이 타는 낡아빠진 시골버스 ~~ 누군가에게 실망스러운 일이 누군가에겐 럭셔리함~~ 그래 내가 탄 버스 럭셔리 버스 맞았어.” 그러다 문득 이 노래를 알려준 사람이 떠올랐다. 내 인생의 어느 순간을 스쳐 지나간 인연. 지금도 여전히 직장을 다니며 음악을 만들고 있을까? 과거 이메일을 주고받았던 ID를 SNS에 검색해봤다. 찾았다.

우리는 소개팅으로 처음 만났었다. 좋은 학교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다니고 있던 그는 경제적인 제약만 없다면 회사를 그만두고 음악만 하고 싶어 했다. 나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드라마 보조 작가로 일한 적 있었다. 경제적인 이유로 다시 회사로 돌아왔지만 계속 글을 쓰고 싶었다. 하고 싶은 일에 진심인 그가 멋있었다. 가을에 만나 다음 해 봄에 헤어져서 함께 한 추억이 많지는 않았다. 미운 정이 들 틈이 없던 사이라 쉽게 떠올릴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뮤직 앱으로 들어가 보니 그가 만든 노래 스무 곡 정도를 찾을 수 있었다. 그중에 그가 작사, 작곡, 편곡, 보컬까지 맡은 한 곡을 반복해서 들었다. 노래의 가사는 자신과 취향이 같은 여자에게 운명의 여인이라고 고백하는 가사였다. 내가 그와 헤어지지 않고 잘 만나고 있었다면 그는 나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노래도 만들어줬을까? 나는 ‘평양냉면’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지. 우리의 취향이 운명같이 들어맞지는 않았지. 그는 자신의 섹시한 목소리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는데 나는 만나는 동안 칭찬 한마디 없이 인색하게 굴었다. 셀프 칭찬하지 않았다면 내가 칭찬해줬을 텐데. 그때의 난 상대를 ‘우쭈쭈‘해주는 연애 스킬이 부족했다. 나는 그렇게 지난 간 연애사를 추억하며 남편이 아닌 외간 남자와의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는 것으로 남편에게 소심하게 복수했다. 남편은 알지도 못하고 아무런 타격감도 없다.

아이들이 낮잠에서 깨면서 과거에서 현실로 돌아온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운동 끝나고 점심까지 밖에서 먹은 남편이 들어온다. 남편이 샤워를 마치기 전에 나는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한다.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일단 도서관으로 향했다. 예약한 책을 빌리고 평소에 가고 싶었던 카페에 갔다. 커피도 한 잔 시키고 젤라또도 시킨다. 오늘은 둘 다 시킬 자격이 충분하다. 가방에서 책을 꺼내 펼친다. 전 남자 친구는 여전히 회사 다니고 연차도 쌓이고 직급도 올라가면서 연봉도 올랐을 텐데. 그러면서도 여전히 음악을 하고 있는데, 나는 왜 서울에서 남편 따라 마산으로 내려와 시댁 옆 동에 살면서 부정적인 감정만 키우고 있어야 하는 건가. 아니지. 뭐라도 해야지. 집에 들어가기 전에 에세이 한 편을 완성해 봐야지. 하다가 말다를 반복하고 있지만 아직은 포기하지 않았다. 혼자서 저녁까지 먹고 들어갈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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