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 익은 행복

아이와 이야기 나누고 싶은 어린 시절

by 이나은


유치원에 다니던 무렵의 내 꿈은 발레리나였다. 그 어린 나이에도 나는 우리 집에 돈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발레를 배우고 싶다는 말을 엄마 아빠에게 꺼내지 않았다. 원하는 걸 원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발레 학원에 보내주지 못해서 미안해할 엄마의 얼굴을 보지 않을 수 있었다. 부모님은 우리 가정의 경제적인 형편 안에서 나와 내 동생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을 다 했다. 가끔 가족 모두가 어린이대공원으로 놀러 갔다. 어린이대공원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가족공원이기도 했고, 다른 테마파크보다 입장권과 놀이기구 이용권이 저렴했다. 나는 다람쥐통 타기를 좋아했다. 놀이기구 중 다람쥐통을 좋아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친구들이 가본 롯데월드나 자연농원에도 가보고 싶었다. 가족 모두와 함께 가고 싶었다. 네 명의 입장권을 사려면 큰돈이었다. 발레를 배우는 일은 매달 학원비를 지불해야 하고 주기적으로 용품을 사야 하는 일이지만 놀이동산에 가는 일은 일회성이니까 한 번쯤 욕심을 부려도 될 것 같았다. 물론 롯데월드 년간 회원권을 목에 걸고 다니는 친구들이 부럽긴 했지만 그것까지 바라는 건 아니었다. 엄마에게 롯데월드에 가고 싶다고 표현했지만 엄마는 내 이야기를 듣고도 반응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갖고 싶은 게 있어서 이야기를 했을 때 엄마가 한번 안된다고 결정하면 떼를 쓰고 바닥에 드러눕기를 시전해도 소용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미 꺼낸 이야기를 되풀이하면 엄마에게 혼난다는 걸 알았기에 조용히 입을 닫았다. 매년 봄이면 자연농원의 튤립 축제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중에서야 엄마의 침묵은 불허가 아닌 대답을 지연하기 위한 방법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6학년이 된 봄. 우리 가족 모두 함께 자연농원 튤립 앞에서 환하게 사진을 찍었다. 혼자서 좋은 여행지에 갔을 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행복하다. 그리고 가족들이 떠오른다.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그러면서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린다. 모두 함께 하려면 얼마가 필요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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