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루한(참배움연구소장)
지난 130여 년 동안 일본을 거쳐 들어온 ‘학교’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식민교육’과 ‘독재교육’에 젖어 오늘날까지 하나도 바꾸지 못한 채 학교 중심으로 ‘교육’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1888년 봄 일본에서 박영효가 고종에게 올린 건백서의 내용입니다. 국사⋅국어⋅국문을 가르쳐야 한다는 박영효의 건백서는 향후 그가 걸은 길에 비추어 ‘식민교육’을 내세운 것으로 여겨집니다.
“(1) 먼저 인민에게 국사⋅국어⋅국문을 가르쳐야 합니다. 【先敎人民以國史及國語國文事 】
본국의 역사⋅문장을 가르치지 않고 단지 청국의 역사와 문장을 가르치는 까닭으로 인민이 청국을 근본으로 삼아 중시하면서 자기 나라의 제도는 알지 못하는 데 이르렀으니, 이를 가리켜 “근본은 버리고 말단을 취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不敎本國之歷史文章 而但敎淸國之歷史文章 故人民以淸爲本而重之 至有不知自國之典故者 此可謂捨本取末也】
누군가를 위해 바로 그들을 관리해야 한다는 권리와 의무를 느낀 적이 있는가? 이것이 바로 ‘교육적’ 태도다. 약 250년 전 프로이센에서 비롯한 ‘근대 학교’의 교육은 “중요한 문제에 대해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길러내야 하는 것이 이상이었다. (독일 철학자 피히테가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글에서 다섯 가지 인간상 중의 마지막으로 규정한 것임) 이것이 학교 제도가 아이들의 개성을 뿌리뽑게 된 연유이다.
오늘날 배움터에서 참배움꽃을 피우기 어려웠던 까닭은 무엇인가? 교육부로 대표되는 국가 권력(정부)이 ‘교육과정’을 쥐고 ‘대학입시’로 옭아맨 낡은 틀 아래 ‘국․검정’ 교과서를 강요했기 때문입니다.
학생은 안중에도 없는 교육 제도라 생각한다면, 이젠 우리 모두가 ‘교육’ 현안을 ‘교육’으로 풀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새롭게 학생이 배움의 당사자란 관점과 틀(구조)로 접근해야 합니다. 공식 학교에서부터 ‘가르침(교육)’을 넘어 ‘참배움’을 일으켜 나라가 굳이 배움터를 만든 뜻을 살려야 한다고. 자본주의를 떠받치는 복지 체제의 한 바탕인 학교(배움터)가 살아나야 한다고. 그래서 묻게 됩니다. 이처럼 있으나마나인 배움터가 제 구실을 하면서 대한 나라가 제대로 갈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배움터를 살리는 참배움을 어떻게 일으킬지를. 이제 밝히고 싶습니다. 왜 ‘교육’이 아닌 ‘배움’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