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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받을수록 우리를 버리니까

김두루한(참배움연구소장)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경쟁 입시 도가니에서 시달린 학교생활   

 

광복을 맞은 1945년 뒤로 대한민국의 남한 사회는 학교 교육의 목적을 어디에 두었던가? 제헌 헌법에 밝힌 대로 ‘자유 민주주의’를 내세웠다.

하지만 나라가 갈라져1950년 한국 전쟁을 겪으며 이승만 정부의 대한민국 남녘의 학교 교육은 ‘반공’을 내세웠다. 이승만 독재 정부는 4.19 학생 혁명으로 무너졌지만 짧은 ‘민주화’의 광장은 또다시 5.16 이후 박정희 공화당 정권의 ‘국민총화’, ‘새 역사창조’의 이념 아래 무게 중심이 성장 위주 ‘경제 산업 발전’으로 바뀌었다.

‘민주주의’를 내세웠지만 독재 정권이 유지되면서 학교에선 학생들이 숨막히는 학교생활이 끝이 보이지 않은 채 이어졌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에서 보듯이 점점 더 가열되는 경쟁 입시의 도가니 속에서 학생들은 꼼짝하기 어려웠다.     


어려운 말로 온갖 법령을 만들고 공문서를 쓰는 얼빠진 문화 사대주의 그늘    


그동안 우리 사회는 어떠했는가? 정작 보통 사람은 죽었다 다시 깨어나도 알 수 없는 어려운 말로 온갖 법령을 만들고 공문서를 쓰는 얼빠진 문화 사대주의에 한동안 젖어 있었다.     

① 누구나 배우면 성공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는다. (입시제도의 속뜻은 끝까지 밝히지 않는다)

② 국어교육은 삶으로부터 유리시키고 문법 등으로 어렵게 가르친다.

③ 신문 등에서도 용어를 되도록 어렵게 쓴다.

④ 민중이 자각하면 큰일난다.    


①~④와 같은 생각은 든사람(지식인)들이 ‘학벌’을 내세우고 ‘학연’을 맺어 ‘학교’와 ‘언론사’에서 ‘참’이 아닌 거짓을 일삼았다.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의 ‘국무총리’를 지냈거나 ‘국회의원’을 지낸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초등학교 한자 교과서 병기’를 내세우고 있는 실정이다.     


‘빌린말’을 쓰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돌려줘야 한다


학자들이 새말을 만들어 쓰지 않고 ‘빌린말’을 쓰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 더욱이 학자라는 사람들은 어떠했는가? 

첫째로 생각과 느낌을 담고 ‘뜻’을 주고받는 ‘말(글)’을 스스로 만들어 쓰기보다 ‘빌린말’을 쓰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둘째는 일본 책과 서양 책으로만 공부를 하면서 식민 통치에 필요한 글들을 써 제낀 잘못은 제대로 반성하지 않았다.

셋째는 일본 말투나 서양 말투를 본뜨고 흉내 내는 것에 그친 교육과정, 교과서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예컨대, ‘국어를 부려쓰는’ 이라 못하고 ‘국어가 사용되는’이라 쓰듯이.     

이처럼 학교에서 ‘교육’을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고향을 버리고 우리 말과 우리 삶을 버리며 중국, 일본, 서양 사람들 삶을 흉내 내는 것이 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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