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흐름 기록 : 알면 사랑한다
# 이사 > 예민함 >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 나를 사랑하는 방법 > 알면 사랑한다 > 졸덕하는 이유 (덕질 졸업)
내가 사는 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웃 때문이다.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옆집은 여름에도 양파껍질을 까서 놓은 박스를 복도에 그대로 방치해서 썩은 냄새 때문에 복도 쪽 방 창문을 못 열었었다. 그리고 안마의자를 바닥에 아무것도 깔지 않고 사용해서 그 끔찍한 진동으로 사람을 괴롭히는 윗집은 화장실 변기에 별별것을 다 넣어서 우리 집 화장실에 똥물이 폭포처럼 줄줄줄...
하.. 다신 기억하고 싶지도 않을 정도다. 또 아랫집은 희롱하는 주둥이를 갖고 있다. 엄마랑 내가 엘리베이터에 탔는데 딸인 내 앞에서도 그 더러운 주둥이를 나불거렸고 나중에는 엄마에게 삿대질하면서 덤비기까지 했다. 언젠가 내가 반드시 증거 확보해서 신고한다.
게다가 내가 사는 쪽 라인의 사람들은 자기 집에서 생선을 굽거나 청국장을 끓이고서 현관문은 열지만 복도 창문을 열지 않는다. 그래서 겨울 빼곤 복도 창문을 늘 열어두는 우리 집 복도 쪽 창문으로만 냄새가 빠져나간다. 당연히 나는 방 창문을 열 수 없다. 그런 음식 냄새는 찐득찐득하다.
또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옆집은 하루종일 수시로 담배를 피우는데, 겨울에는 비상계단에서 피운다. 비상계단 문을 닫고 피우면 괜찮은데, 한겨울 밤에 복도에서부터 피우면서 간다. 6년 전 처음 이사 왔을 때는 우리 집 복도 쪽 창문을 열어두니까 거기에서 피우는 아주 몰상식한 짓도 했다. 새벽에 자다가 담배냄새 때문에 깨어나서 우리 집 앞 복도창문에서 담배 피우지 말라고 한소리 했던 게 아직도 선명히 기억난다. 어떻게 저렇게 몰상식할까 싶었다.
이렇게나 끔찍한데, 그렇다고 이사할 수 있는 자금이 없다. 그래서 교통도 오지게 불편한 이곳에서 가장 좋아하는 아파트 앞 공원을 자주 간다. 서울에서 자주 볼 수 없는 탁 트인 공원. 주변에 큰 건물이 없다. 탁 트인 곳으로 해가 뜰 때 그 매콤한 햇살이 맛이 좋다. 해 질 때는 낮은 상가 건물들 사이로 천천히 요구르트와 뽕따색으로 물들고 탁 트인 곳엔 손톱 달이 떠 있는 것도 예쁘다. 근처에 산이 있어서 가끔 밤에 산책할 땐 개, 고양이가 아닌 다른 동물들을 마주하기도 한다.
나 또한 꽤나 예민하다. 인생에서 내가 지금 당장 제어할 수 없는 부분들에 대해 100%를 채워야 만족하는 내 마음의 시스템을 수정해야 할 것 같다. 70%면 100점. 최고만족점수를 주고, 40%면 pass 인.
그렇지 않으면 나의 강박증과 비슷한 이 삶은 늘 괴롭고 심장이 빨리 뛰고 견디지 못해 부들부들 거리며 온갖 화를 안고 사는 것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과연 이게 잘 지켜질지는 모르겠다. 아니다, 만족 자체를 추구하면 안 되는 것일까? 사실 이건 내 성향을 바꾸는 일이라 바로 지킬 수도 없고 혹여 변해나간다 하더라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한동안은 이렇게 예민한 나를 꾸짖기에 바빴다. 예민함이 디자인을 할 때 디테일한 부분까지 작업을 한다는 장점도 있긴 하지만, 그만큼 너무 피곤하다. 또 회사생활할 때 예민함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옆 사람이 머리를 안 감고 온날은 하루종일 나는 그 사람을 피한다. 자리에 앉아있을 때 스멀스멀 흘러들어오는 그 냄새.. 강한 체취.. 그럴 땐 내 자리에 디퓨저를 놓던지 레몬 오일을 살짝 발라놓은 마스크를 하루종일 끼고 있는다.
이런 나를 꾸짖어 봤자 나는 더 예민해지고 더 화가 올라왔다. 버릇은 끊어내기보다 다른 습관으로 덮는 게 좋다고 했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다. 나를 꾸짖는 게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게 낫지 않을까? 언제나 나는 나 자신에 대해 불만이 가득하니까.
나를 사랑하는 방법. 무엇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사실... 내 성향 그대로, 일을 허투루 하지 않는 게 나를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예민함을 발전시켜 세심하게 일할 때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래서 가끔 원데이 클래스로 한국화를 그리러 가는데, (어차피 선생님이 스케치는 다 해주시고 내가 컬러를 입히는 작업을 한다.) 이때 머리카락 혹은 동물의 털을 세필붓으로 한 올 한 올 그려갈 때의 쾌감이란... 캬! 그때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하고 다 끝나고 나면 목과 눈이 뻐근하지만 진짜 즐겁고 기쁘다. ㅎㅎ
무튼, 결론은 없다. 그냥 내 성향대로 조절하고 방어해 가며 살아가는 수밖에. 내가 바꿀 수 없는 현실에 대해 미리 걱정하고 불안해하지 않는 아주 어려운 숙제를 안고 가는 수밖에.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알면.. 사랑한다고 한다. 최재천 박사님의 유튜브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나도 나를 좀 더 알아가고 바뀌는 환경에 따라 사람에 따라 또 함께 변화하는 나를 유심히 볼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게 이 글쓰기이다. "의식의 흐름 기록 전시관" 일주일에 한 번, 내 의식이 무얼 걱정하는지 내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를 보면, 내가 무엇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열망하는 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타고 다시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 열망하고 갈구하는지에 대해서 즉, 나를 들여다보게 된다.
음.. 내 하루에서 덕질을 빼놓을 순 없으니, 알면 사랑한다는 것을 대입해 보면.
사랑한다? 더 가까이 가서 더 많이, 깊이 알고 싶어 진다. 그래서 유료 서비스도 사용해서 소통하고 싶어 진다.
음.... 그런데 졸덕한적이 있다. 여전히 그들을 응원하고 호감의 눈으로 바라보지만 이제는 덕질까지는 아니다. 더 가까워지는 게 싫어졌다. 가까워지면서 모르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는 것들을 알았을 때, 역시나 나는 내가 원하는 이미지 안에 그들을 가두어 보고 있음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그리고 그 안엔 나도 함께 가두어 두었다는 것도.
지금처럼 멀리서 간간이 들려오는 소식을 듣고 응원하는 게 더 평안하다. 이건 탈덕과는 다르다. 덕질 졸업이다. 그때 나는 가까이 가려 노력하며 알게 된 것에 브레이크가 걸렸고, 내가 기대한 것과 현실의 차이가 느껴지는 찰나, 뒷걸음질 쳤다. 상처받은 건 아니다. 인지하지 않으려 한 골짜기를 마주하고 인정했을 뿐.
지금은 몬스타엑스, 크래비티, 세븐틴, 투바투, 르세라핌 다 좋다. 재밌고. 다만 이전만큼 그때 그날들만큼 덕질하긴 어려울 것 같다. 그때와 그때의 내가 아니기 때문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