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도시에서 만난 아드리아해
Sipar 해수욕장은 오파티아에서 조금 더 아래로 내려와야 하는데, 지중해 북쪽 아드리아해 Adriatic Sea 의 또 다른 내해에 위치해있다. 크로아시아가 면하고 있는 아드리아해 자체도 이탈리아 반도에 둘러싸인 데다가, 지중해 특유의 온화한 기후 때문에 대양의 압도적인 규모감이 느껴지지 않아 한없이 잔잔한 거대 호수같이 보이기도 한다.
나중에 Dubrovnik로 가는 길에는 바다인지 호수인지 정말 구분이 안 되는 구간도 있었다. 구글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천여 개가 넘는 길쭉길쭉한 섬들이 서로 겹쳐서 아드리아해와 면한 크로아시아의 해안선과 평행하게 위치하고 있다. (당최 섬들에 가려 수평선이 보여야 말이지...) 당시에는 Opatija와 거의 같은 지역으로 생각하고 따로 폴더 정리를 해두지 않았더니, 오파티야와 한데 묶어 기록해버리게 되었다. 이러니 게으른 여행자의 기억은 왜곡될 수밖에 없는 거다.
희고 작은 조약돌로 이루어진 해변이라서 맨발로 다니기엔 발바닥이 조금 아프다. 한국에도 조약돌 해수욕장이 꽤 있지만 아무래도 지형적 특성이 다르다 보니 이곳의 해변은 어둡고 동글동글한 자갈이 쌓인 우리네 바닷가에 그려지는 그림과 사뭇 다르다. 파도가 밀려와 물을 흠뻑 적신 해변의 가장 바깥 경계에는 큰 모래 알갱이들이 쌓인 듯 보이고, 육지 쪽으로 올라올수록 회색 벽돌이나 콘크리트를 잘게 부수어놓은 것처럼 보인다. 어찌 보면 인공적으로도 보일 수 있는 흰 조약돌이라는 캔버스. 그 위로 파도가 밀려왔다 나갔다를 반복하면서 아드리아해의 푸른 바다색이 자연스럽게 번져나가자 인공의 질감은 어느덧 사라져 버렸다. 파도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사이렌의 노랫소리에 홀린 선원들처럼 바닷속으로 하나둘 뛰어들 수밖에. 발바닥을 간지럽히고 발가락 사이로 드나들던 물결의 유기체 같은 움직임이 여전히 또렷하다. 바람을 타고 귓가에 와 닿던 습하고 따뜻한 대양의 숨결도.
아주 잠깐 동안에 불과하지만, 바다에 발만 담그고 앉아 있노라면 천진난만하던 어린 시절의 순수가 슬쩍 되살아난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항구도시의 작은 마을에서 자란 유년기의 기억 때문인 것 같다. 여름이 되면 아버지와 삼촌은 나와 동생을 데리고 동네 앞바다로 수영을 하러 갔다. 제대로 된 해변이나 정식 해수욕장은 아니었기에 작은 바위길 사이를 지나야 바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어른들에게는 가슴 높이 정도의 수심이었지만, 내게는 발이 닿지 않는 깊이여서 튜브를 끼고 바다 위를 둥둥 떠다녔다.
태풍이 지날 때마다 집채 같은 파도가 육지를 삼켜버릴 것처럼 해안가를 덮치던 태평양 연안의 거친 바다. 나는 바다를 무서워하면서도 그 무한함 너머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순한 양처럼 변한 여름의 바다로 뛰어들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수박에 끈을 묶어 튜브에 연결해서 물속에서 갖고 놀게 해 주셨는데 당시에는 무거운 수박이 물에 뜨는 게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지치고 배가 고파질 때쯤 수박을 잘라먹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여름이 되어 백사장만 찾으면 손 끝에서부터 시작해서 찌릿한 목덜미를 지나 혀끝을 간질이며 침샘을 자극하는 그 수박의 달면서도 짠맛을 아버지께 말씀드렸더니, 정작 당신은 ‘어, 그런 적이 있었던가’라는 반응을 보이셔서 당황한 적이 있었다. 아버지에게는 여느 때와 같은 여름날의 주말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기억에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딸이 '부력'이라는 개념을 어렴풋이나마 처음으로 알게 된 역사적인 날이었다고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유월의 해변이다. 단순히 지중해라서 그런가 보다 하고 고개를 갸웃하다가도 이런 날씨는 허벅지를 가볍게 꼬집어보게 될 만큼 '지나치게' 좋은 셈이다. 해변이 가장 가까이 보이던 작은 식당의 바깥 테이블을 하나 잡아 아까 주문해놓은 해물파스타를 식거나 말거나 느릿느릿 먹었다. 햇빛을 너무너무 사랑해서, 볕만 보이면 열심히 광합성하는 자유로운 영혼들을 구경하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마어마한 인파가 모여드는 유명 관광지에서는 사람 빼고 모든 것을 관찰하려 들면서 나긋한 풍경 속에 드문드문 찍힌 점같이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유독 눈이 가는 건 나의 습관일까, 아니면 인간의 보편적 기질 중 하나일까.
호로록 파스타를 입으로 가져가는 소리에 고양이 한 마리가 발치에 그냥 대놓고 드러누웠다. 녀석은 얻어먹지 못할 거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고 있지만, 못 먹는 접시 아래에서 등이나 비벼 보는 거다. 우리는 꽤 오랫동안 그렇게 서로 심드렁한 채로 앉아있었다. 슬슬 서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한 해님은 잠이 와서 눈이 살살 감기는 고양이에게나 하릴없이 배만 부른 여행자에게나 똑같은 그늘을 드리워 주었다.
노 저을 필요도 없이 쪽배에 파라솔 하나 꽂고 바다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그가 부럽고, 부럽고 또 부러웠다. 저러다 지겨워지면 한숨 자고, 더워지면 다시 바다로 뛰어들겠지. 어릴 때야 남들처럼 먹는 것과 놀이에 충실했으나, 자라면서 이상하리만치 승부욕이 사라지고 타인에게 질투심을 느끼게 되는 일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저는 저대로, 나는 나대로-' 라는 단순한 생각의 출발점은 각자의 차이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그것을 존중할 수 있는 다름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세상의 이면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일들을 이해하기 위해 때때로 불완전한 내면의 잣대로 나와 타인을 저울질하기도 하지만... 좀 그러면 어때.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미완의 인간이 아니던가. 새삼 보잘것없는 질투심에 불타 저 멀리 점처럼 보이는 배를 한참을 좇았더랬다. 당신은 절대 기억하지도 못할, 형체도 잘 보이지 않던 쪽배 위의 그 남자는 추억 미화의 차원에서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건강한 구릿빛 피부의 중년 남자로 정리하기로 한다.
해변을 따라 Volosko 방향으로 다시 올라가면 아름다운 산책로로 유명한 오파티야 해안공원에 이른다. 이곳은 일상적인 산책이나 수영, 가볍게 일광욕을 하고 가기에도 좋도록 만들어진 일종의 인공 해수욕장이면서 해수풀을 가진, 지역민과 관광객 모두를 위한 복합적인 용도의 공원이다. 이를테면 사적인 용도의 리조트가 공공재인 해변가로 튀어나온 느낌이랄까.
굵은 자갈이 섞인 콘크리트로 조성된, 둥근 해변의 라인을 따라 걷다 보니 군데군데 따스한 햇살 아래 등을 드러내고 일광욕을 하는 사람들이 꽤 보였다. 아직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기 전이라 해수욕을 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막 수영을 끝내고 뭍으로 올라온 건강한 인상을 가진 아주머니는 이 근처에 사는데 거의 매일 오후 이렇게 수영을 하러 나온다고 했다. 바닷물에 종아리까지만 담근 채 앉아있는 내게 물이 너무 맑고 시원하니 들어오라고 권한다. 깜빡하고 수영복을 챙겨 오지 않았다고 했더니 세상 안됐다는 표정으로 다음엔 꼭 챙겨 오라면서.
해가 드는 장소면 거리낌 없이 겉옷을 벗고 온 몸을 드러내는 그들과 조금이라도 해가 든다 싶으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 만든 그늘로 온몸을 가려버리는 나. 이런 우리의 차이를 짧은 몇 개의 단어를 이어 만든 말로 온전한 이해를 구할 수 없어 휴양지에서 굳이 물에 들어가지 않는 나의 핑계는 늘 수영복이 없다-였다.
하늘이 좋은 날 바닷가에서 ‘멍때리기’ 대회를 한다면 (군중이 밀집하는 형태의 콘테스트를 전혀 즐기지 않긴 하지만) 한 번쯤 나가봐도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나름대로의 일광욕을 실컷 즐기고 나서 어느 아담한 호텔 근처의 공원 벤치에서 책도 읽고 노트에 짧게 기록도 남겼다. 분수에서 솟아나던 물줄기의 소리, 키가 큰 나무 곳곳에서 들려오던 새들의 지저귐, 해수욕을 끝내고 나온 사람들의 발걸음이 만들어내던 오파티야의 생동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