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이었다. 서랍을 열었는데 커피통에 원두가 단 한 톨도 남아 있지 않았다. 순간 당황해서 미동도 않고 빈 유리병을 바라보고 있었다. 5초가 흐른 후 내 안에서 두 개의 자아가 충돌했다.
A. '그깟 커피가 뭐라고. 오늘은 스킵하지 뭐.'
B. '돌겠네! 난 카페인이 필요하다고!'
이번에도 B가 이겼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쌀 한 톨보다 커피 한 알이 아쉬운 상황이라서다. 평일에는 집에서 커피를 마실 일이 없으니 근처 카페에서 소량을 사거나 온라인으로 주문하는데 까먹을 때가 있다.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어서 비상용&여행용으로 사다 둔 드립백을 꺼냈다. 원두가 없으면 브루잉 도구가 모두 무쓸모하게 되므로 물만 끓여 붓는 드립백이 간편하고 좋다.(브루잉 책을 사서 읽어 봤지만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갓 내린 필터 커피의 신선함에는 비교할 수가 없겠으나 원두가 다 떨어진 마당에 맛이 중요하겠는가. 출근하지 않는 주말에도 커피를 찾아 헤매는 한 마리 목마른 하이에나가 되는, 또 다른 자아로 인해 내가 커피 중독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에 딱 한 잔씩 마시는 커피를 마시지 않은 날 나타나는 금단 두통을 커피로 해소하는 게 악순환이라면 악순환이려나. 카페인은 뇌로 흐르는 혈관을 수축시켜 미미한 두통을 진정시키기도 하니 가끔 편두통이 찾아오는 나로선 위에 부담이 되는 진통제 대신 선택하는 차선책이기도 하다.
정확히 언제부터 커피를 마시게 되었는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저 아주 오래된 습관이 되었고 나 같은 사람이 꽤나 많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우리는 으레 대화를 시작하는 도구로 커피를 이용하고, 상대방도 당연히 커피를 즐길 것이라고 가정해 버린다. 초면이거나 잘 알지 못하는 상대가 커피나 한 잔 하자고 권유한다면 이렇게 대답해 보라.
"저는 커피를 안 마셔요."
그럼 대부분 적잖이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일 것이다.
"... 아, 그래요?"
그리고 높은 확률로 곧 왜 커피를 마시지 않냐는 질문을 던진다.
물론 아이스브레이킹 차원의 질문일 수 있고 정말 궁금해서일 수도 있다. 커피는 차고, 차는 기호 식품이다. 내가 녹차를 좋아하지 않듯 누군가는 커피를 선호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쉽게 간과한다. 대학 생활을 하며 커피의 쓴 맛에 조금씩 노출되었는데, 직장 생활을 시작한 사회 초년생 시절에도 텁텁한 그 맛에 영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오전 9시를 기준으로 아직 잠이 덜 깬 대뇌 활동에 미치는 커피 속 카페인의 위력을 실감하게 되면서 아침 커피는 습관이 되었다. 사람들은 직장에 몸을 출근시켜야 했을 뿐 아니라 아직 침대에 누워있는 정신을 일으켜 세울 무엇인가가 간절히 필요했을 것이다. 매일 아침 강남행 2호선 지옥철에 영혼을 싣고 싶지 않았던 그 시절의 나는, 적어도 그랬다.
에스프레소처럼 농도가 진한 커피와 원샷으로 아주 연하게 내린 아메리카노는 잘 구분하지만, 지금도 바디가 무겁다거나 탄내가 난다거나 산미가 강하다는 구분이 모호하다. 커피는 커피 열매를 볶은 향이 나는 게 당연하지 어떻게 달달한 초콜릿이나 향긋한 꽃내음, 고소한 아몬드의 향이 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어릴 때 만화 '신의 물방울'에서 와인 한 모금의 은유를 위한 작가의 저세상 수준의 드라마틱 연출을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대부분의 로스터리에서 자신들의 제품의 향과 맛을 묘사할 때 비슷한 최상급 표현을 쓰는 이유는 우리 문화권에서 음료의 맛에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표현 방식이 한정적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거기엔 문화와 관습, 언어권과 보편 상식이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원산지가 같은 커피빈이라도 각 나라와 지역별 로스터리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볶은 콩이 수많은 카페와 집으로 배송될 것이다. 커피를 다루는 바리스타의 스타일과 개성에 따라 만들어진 커피의 맛을 우리 모두의 미각은 각기 다르게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맛을 추상화된 카테고리로 구분해 내고, 그들만의 차 문화를 향유한다. 내게 커피는 일종의 각성제 역할을 하는 기호식품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식품 이상의 '관계의 맛'을 만들어내는 흥미로운 여가 생활일 수 있다. 게다가 커피 도구는 그 용도와 별개로 매력적인 수집 아이템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사용할 수 없는 오래된 그라인더 같은 빈티지 도구들이 찐 커피 콜렉터 사이에서는 고가에도 활발히 거래되고 있다고 하니. 스타벅스와 블루보틀에 싫증난 사람들에게 직접 만드는 커피 문화는 끝없이 탐험할 수 있는 취미의 바다이자 수집 활동의 들판이 아닐까.
23시를 향하고 있는 현재 오후 3시에 마신 커피의 카페인 성분이 여전히 혈관을 타고 온몸을 순환하고 있다. 예전에 저장해 두고 끝맺음하지 못했던 글까지 꺼내 두드리게 만드는 강력한 카페인의 기운에 러시아 선수들이 도핑을 하는 이유를 아~주 약간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