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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May 05. 2024

토스카,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별은 빛나건만"

흔들거리며 화려하게 정원무대를 장식하던 하얀 모란도 바람 타고 사라진 지 오래, 고왔던 서부해당화 분홍 꽃자매들이 떨어지고 난 자리는 연녹색 잎으로 가리어졌다. 홍목련 크고 풍성한 잎은 가지도 보이지 않는 초록 몸뚱이로 서 있고, 한껏 부푼 장미는 새순들을 올리며 꽃망울 터트릴 준비가 한창이다.

한편에선 떨어지고 한쪽으론 삐죽거리며 저마다의 개성으로 가득 찬 오월의 정원은 세대교체가 한창이다. 아침을 열면 밀물처럼 하루는 쏟아져 들어오고 햇살에 소요스러웠던 시간들 미처 닫을 새도 없이 찾아오는 밤은 힘들여 피운 꽃들의 아름다움도 다음을 위해 쓸어 간다.

무엇이라 다를까? 늘 곁에 있는 음악의 변신도 당연스럽겠지만, 언제 들어도 한결같은 감동을 주는 오페라 아리아는 미세먼지로 찌든 삶의 촉촉한 활력소가 된다.


푸치니는 베르디 이후 이탈리아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사랑받아온 대표적인 오페라 작가다. 라보엠, 나비부인, 투란도트와 잔니 스키키, 토스카 등 세월과 상관없이 오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고 있는 주옥같은 명곡들로 살아있다.  토스카는 푸치니가 작곡한 3막의 오페라로 사랑받고 있는 작품이며 특히 무대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오페라로도 많이 공연되고 있다. 드라마적인 요소도 많아 영화로도 만들어졌고 여러 영화의 배경음악으로도 쓰였다.

원작 빅토리앵 사르두의 소설에 루이지 일리카와 주세페 자코사가 각색한 대본에 곡을 붙였다. 여러 이유로 3여 년의 시간이 걸려 1900년 1월 로마의 콘스탄치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당시 유행하던 베리즈모 오페라(사실주의 오페라)로 푸치니의 작품 중 특히 토스카는 그 경향을 많이 받은 작품으로 격정적인 선율과 화성이 곳곳에 녹아있는 감성적인 곡이다.

우리 귀에 익숙한 유명한 아리아로 1막 카라바도시의 "오묘한 조화" 토스카와 카라바도시의 이중창 "우리의 사랑의 집으로" 스카르피아의 "가라 토스카 너는 내 것이다" 2막에서 토스카의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3막에서 카라바도시의 "별은 빛나건만"과 토스카와 카라바도시의 이중창 "부드러운 손" 등 주옥같은 곡이 오페라 전편에 녹아있다.


곡의 줄거리를 요약하면 1막이 오르면서 카라바도시는 안드레아 델라 발레 성당의 성모마리아 초상화를 그리다가 사랑하는 여인 토스카와 비교해 가며 행복해한다. 나폴레옹을 추종하는 공화파인 친구 안첼로티가 갑자기 찾아와 숨겨주게 되는데 성당문이 잠기지 않은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토스카에게 적당한 변명을 하며 저녁에 만나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안첼로티를 쫓고 있던 왕당파인 로마 치안 총수 스카르피아에게 들키고 만다. 스카르피아는 토스카를 흠모하고 있던 중이라, 카라바도시에게 여자가 있는 듯한 음모를 꾸며 토스카를 질투심에 휩싸이게 만든다. 미사시간, 신성한 "테 데움(Te Deum)"이 연주되는 중에 스카르피아는 카라바도시를 교수대로 보내고 토스카를 차지하는 자신의 야욕을 채울 결심, "가라 토스카 너는 내 것이다"를 부른다. 신부들은 주님을 찬양하는데 스카르피아는 "토스카여! 너 때문에 천국을 버리노라"며 악마의 노래를 외친다.


2막에서 스카르피아는 카라바도시를 고문하지만 말하지 않자, 토스카를 불러 회유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참지 못한 토스카는 카라바도시를 살려주겠다는 스카르피아의 말을 믿고 그만 말하고 만다. 옆방에서 나폴레옹 군의 진군소식을 듣고 노래하던 카라바도시에게 화가 난 스카르피아는 사형선고를 내린다. 카라바도시를 살리고자 하는 토스카에게 욕정에 불타는 스카르피아는 하룻밤 자신과 지내면 카라바도시의 안전을 보장해 주겠다는 거짓 약속을 한다. 절망에 빠진 토스카는 예술활동을 하며 하나님을 섬기고 불쌍한 사람을 돕고 살아왔는데 왜 이런 고통과 시련을 주느냐는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아리아를 절절하게 부른다. 애원해도 소용이 없는 것을 알게 된 토스카는 카라바도시와 이탈리아로 도망가게 해 주겠다는 약속으로 몸을 허락하기로 한다. 하지만 스카르피아는 집행관들에게 총알을 넣고 쏠 것을 눈짓한다. 스카르피아가 통행허가증에 서명하며 토스카를 안기 위해 팔을 벌리고 오는 순간 토스카는 감춰둔 칼로 스카르피아를 찌른다.


 3막에서 카라바도시는 사형집행을 기다리며 토스카와의 아름다운 사랑을 회상하며 "별은 빛나건만"을 부른다. 토스카는 카라바도시에게 거짓 사행집행이라고 얘기하며 함께 떠날 것이라 한다. 사격수들이 총을 쏜 후 토스카는 카라바도시를 일으키러 하지만 카라바도시는 실탄을 맞고 죽어있다. 스카르피아에게 속은 것을 안 토스카는 절규하다 자신을 잡으러 오는 소리를 듣고 성탑 위로 뛰어 올라가 몸을 던져버린다.


아름답고 애잔한 아리아가 많은 오페라 토스카, 특히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Vissi d'arte, vissi d'amore)는 20세기 최고의 소프라노 마리아칼라스를 위한 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그녀의 일생자체가 곡을 말해 주고 있으며 뼛속에서 절절히 호소하듯 감동적인 소리의 분출은 토스카의 내용을 몰라도 의미를 알게 만드는 것 같다.


오페라 테너 아리아 중의 백미라고 해도 모자라지 않을 아름다운 "별은 빛나건만"은 처형을 기다리고 있는 카라바도시가 토스카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애절하게 불러가는 비통함이 넘치는 간절한 곡이다. 듣는 이의 마음속까지 훑어내는 절절함은 돌려 다시 듣게 만든다.


"별은 빛나고 대지는 싱그러웠지

정원의 문이 삐걱대더니, 길을 따라 발소리가 바스락대며 땅을 스쳤어

향기로운 그녀는 다가와 내 품에 안기고

오, 부드러운 입맞춤 오, 달콤한 어루만짐

나는 떨리는 손길로 베일을 벗기고 그녀의 고운 얼굴을 드러내었어

아, 그 사랑이란 춘몽은 영원히 사라지고

시간은 모두 흘러가

나는 이제 절망 속에 죽는구나!

나는 이제 절망 속에 죽는구나!

이토록 삶이 절박한 때가 있었던가!

이토록이나!"

(나무위키)


토스카를 부른 많은 성악가들이 있지만, 개인적으론 토스카역에 마리아 갈라스, 루치아 파바로티가 부르는 "별은 빛나건만"이 가장 마음에 와닿는 듯하다. 물론 cd로 자주 접할 수 있는 이유도 있겠지만 원곡이 가진 감정을 딱 어울리게 소화시켜 자신의 것으로 완벽하게 표현해 내었기에 잊히지 못하는 성악가로 기억되는 것이다.   


이태 전 우연히 본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 생각난다. 남주(男主) 테이트의 아버지는 새우잡이 하는 어부인데, 여주(女主) 카야와 가까워지려는 아들 테이트에게 '너 습지에 사는 여자애와 친하다는 소문이 들리는데 사실이니?" 부모로서는 당연한 걱정을 하며 묻는 아버지에게 데이트는 아니라며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멋쩍은 아버지는 라디오 볼륨을 올린다. 라디오에서는   레나타 테발디가 부르는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가 흐르고, 아버지는 "역시 푸치니란다"라고 말한다. 이 장면으로는 테이트와 카야의 미래가 밝을 것 만 같았지만, 토스카를 본 사람이라면 어딘가 암울한 정경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영화의 복선처럼 둘의 관계는 몇 번의 위기를 맞지만 나중에는 좋은 결말을 맺는다. 카야를 붙잡아 준 또 다른 사랑, 습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카라바도시의 사랑 외엔 매어둘 곳이 없던 토스카의 삶은 사랑하는 이와 죽음으로써 함께 하는 비극이 되고 말지만, 아름다운 음악으로 승화되어 오페라를 아끼는 사람들의 마음에 잊히지 않는 위안으로 남아있으니 그 역시 위대한 사랑의 승리라 아니할 수 없겠다.



p.s. 1. 마리아 칼라스가 부르는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https://www.youtube.com/watch?v=16QLg8aOwl8

2. 아름다운 미성이 그리운 파바로티의 목소리로 들어보는 "별은 빛나건만"

https://www.youtube.com/watch?v=HUUIVh3O9zs

3. 레나타 테발디가 부르는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https://www.youtube.com/watch?v=9AEAiKtpelo&list=RD9AEAiKtpelo&start_radio=1

4. 스카르피아 역의 티토 곱비와 함께한 1964년 코벤트 가든 실황을 유튜브로 볼 수 있다. 흑백이지만 전성기의 마리아 칼라스의 연기와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오페라 무대를 녹화한 드문 영상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rT-86Otwz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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