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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Feb 29. 2024

프로벤자 내 고향으로

La Travita 중 바리톤, 제르몽의 아리아 "Di Provenza"

Life is opera라는 매거진으로 오페라에 관한 글을 쓴 지가 일 년이 지났다.  그렇지만 겨우 다섯 편의 글을 올렸을 뿐이다. 나의 필명이 opera(오페라)니, 늘 부르고 있어서 인가? 욕심만 많았지, 게으른 데다 음악적 소견이 부족해 제대로 표현하기 힘들어서였나? 글 한편을 쓴 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에 부족해도 성의껏 제대로 써보자는 마음만 앞서 매거진을 많이 채워나가지 못한 것 같다.

굳이 토를 단다면 작년 일 년 동안에는 스케치하며 글 쓰느라 곁길, 아니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에 바빴던 탓이기도 했다.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기에 마음이 좀 더 간 것 같다.


인생은 이미 한계가 정해진 길을 가는 것이다. 어찌 생각하면 이미 답을 알고 가는 것이라고 할까?

조금 더 가고 조금 덜 갈 수는 있다. 그래도 답이 있다는 것은 늦게 시작한 사람이나 일찍 시작한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것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히 주어진 답을 찾기 위해 가는 여정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조금 더 쉽게 때론 화려하고 즐겁게, 모험을 하기도 하며 고통 속에서도 견뎌야 할지도 모를 위험도 감수해야 하지만 가다 보면 예측하지 못했던 결과를 맞이할 수도 있는 답이다.

꼭 그래서였던 것은 아니더라도 언제부터인가 나는 좀 더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싶었다. 오랜 직장생활은 원하는 대로 바꿔가며 해보진 못했지만, 좀 더 자유로워진 일상에서는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보자는 마음이었다고나 할까?


좋아하는 시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에서 저자는 양갈래 길 앞에서 고민하다 결국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했고 그 일로 인생이 달라졌음을 고백한다. 나름의 해석을 붙인다면 이 시는 "가지 못한 길"이 아니라 "가지 않은 길"이다. 자신의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가지 못한 길"이 아니라, 당당하게 자신의 의지로 택한 "가지 않은 길"이기에 태어난 삶의 주관자로서 자신을 표출하는 용기에 힘을 주는 시라 할 수 있다.

어렸을 적 가졌던 원대한(?) 꿈은 이루지 못하고 살았지만, 나는 "가지 못한 길"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가고 싶은 길"이 있다면 어떤 방법으로든 꿈꿔 왔던 것을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경험하고 싶었다. 물론 모든 소망을 원하는 대로 이룰 수는 없다. 하지만, 100%가 아니더라도 직, 간접 경험으로 향유할 수는 있다. 그래서 배움에 욕심이 많은지도 모르겠다. 잠시라도 유유자적하며 멍하니 쉬지를 못하는 천성이라 그렇기도 하겠지만, 도둑질 빼고는 다 배워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어른들의 말씀에 익숙한 어린 시절을 보낸 여파인지는 몰라도 배우다 보니 배우는 즐거움도 조금씩 알아가면서 더 배우려고 한 것 같다.


음악도 일종의 가지 않은 길이다. 클래식을 좋아하지만, 곡소개도 좔좔 표현해 내지 못할 정도로 이론에는 약하지만, 그저 몇 시간이고 말하지 않고 있어도 싫지 않은 좋은 친구처럼 감상하면 행복하다. 자클린 뒤프레, 고티에 까퓌송,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가 자신의 스타일대로 연주하는 드볼작의 첼로협주곡, 같은 곡이지만 각각 다른 음색의 곡을 하루종일 들어도 싫지 않다. 좋아하기 때문이다.

음악을 사랑했지만, 여건도 소질도 없었기에 일찌감치 엄두도 못 내다 마침내 여건이 주어졌을 때? 과감하게 도전해서 악기를 배웠다. 플루트는 제법 자유로운 경지? 에 이르게 되었고, 동생이 배우던 첼로로 시작한 첼로는 아직 헤매고 있긴 해도(아마 앞으로도 놓지는 못할 테니 쭉 헤맬 수도 있겠지만...) 요즘 나의 음악친구로 함께 해 주고 있다. 특출한 경지에 이르진 못했지만, 맛을 보고 즐거움을 경험했기에 하게 되는 것이다.

감상만 해도 마음이 행복한데, 흉내라도 내며 직접 할 수 있다는 즐거움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희락을 준다. life is opera 매거진을 운영하는 것도 독자분들 중에서 혹 체험하는 음악을 하시고 싶다면 언제라도 도전해 보시라는, 감상할 때와는 또 다른 행복을 맛볼 수 있음을 알려드리고 나눠드리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다.


오페라도 같은 연유다. 어쩌면 생의 다양한 모습과 가장 많이 닮은 것이 오페라일지도 모른다.

짧은 시간이지만, 삶의 순간을 표현하는 실질적인 대본이 있고, 선율로 표현되는 장대하며 아름다운 음악이 있으며 생의 주인공인 인간이 내면을 끓어내어 관객들과 공감하는 경험을 선사하는 위대한 창작물이기 때문이다. 몰입할 수 있도록 잡아당기는 끌림은 때론 다른 클래식분야보다 강하다는 생각도 들게 만든다. 물론 개인적 소견이다.


일 년 전 처음으로 올렸던 "잘 가라 지난날이여"는 트라비아타(춘희)에서 주인공인 비올레타가 부른 유명한 아리아다. 베르디의 대표적인 오페라로 아직도 꾸준히 공연되고 있는 라 트라비아타는 원작자 뒤마 피스가 쓴 소설 "동백꽃 여인"을 각색해 만든 곡으로 "길을 잃은, 방황하는 여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일본에서 춘희로 번역한 것이다. 라 트라비아타는 지난 매거진 글에 올려놓았기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시면 된다.

라 트라비아타에는 여러 유명한 곡이 많이 있지만, 오늘은 특별히 좋아하는 한곡을 소개한다. 남자 주인공 알프레도의 아버지인 바리톤 제르몽이 부르는 "프로밴자 내 고향으로"이다. 비올레타에게 푹 빠진 아들에게 고향 프로방스로 돌아가지는, 가슴속에서 끌어올리는 듯한 애절함으로 호소하는 아버지의 간절한 노래다. 아름다운 아리아기도 하지만, 프로방스는 늘 가고 싶은 나의 애정하는 곳이라 더 정이 가는 노래다.  

많은 곳을 여행한 편이지만, 가고 싶은 곳은 아껴두는 법이라 그런가, 시간적 여유가 많이 필요해서 그랬는지 아직 자유롭게 찾아다니지 못한 곳이기에 노래에도 더 애착이 가는지는 모르겠다.

눈을 조용히 감고 들으면 진하고 묵직한 곡은 넓은 바다  자유로히 펼친 새의 날개가 주는 파동으로 고요한 울림이 퍼져 나가는 바다가 연상된다. 평안과 위로를 함께 주는 아름다운 곡이다.

"프로벤자의 하늘과 육지를 누가 네 마음에서 지워 버렸느냐? 누지워 버렸느냐? 프로벤자의 하늘과 땅을!"

애끓는 심정으로 시작되는 아들바보 아버지의 절절한 노래는 청중들의 심금까지 울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유튜브에서 두곡을 찾아 올려본다. 먼저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바리톤 레나토 부루손(Renato Bruson), 그리고 어느 분이 올렸는진 몰라도 네 명의 유명한 바리톤이 부르는 "프로벤자 내 고향으로"를 올린다. 1분 정도의 소개글과 네 분의 연주시간은 18분 정도다. 같은 곡을 다른 네 사람의 목소리로 듣는데 이 아리아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겐 행복한 시간을 선사할 것이다. 유명한 바리톤이다 보니 부른 때가 다를 뿐 레나토 브루손은 네 명의 곡 중에도 들어있다 마리오 세레니(Mario Sereni), 레나토 부루손, 에토레 바스티아니니(Ettore Bastianini), 드미트리 호보르톱스키(Dmitri Hvorostovsky) 순이다. 많은 분들이 알고 있는 레나토 부루손 외 세 분은 모두 고인이 되셨다. 생전에 열정적으로 불렀던 아름다운 곡을 이렇게 들을 수 있다는 좋은 시절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행복한 마음이다.




1. 레나토 부루손이 부르는 "Di Provenza"

https://www.youtube.com/watch?v=sMXK8FsucKs


2. 네 명의 바리톤이 부르는 "Di Provenza"를 마음껏 감상해 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해 올려 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PdiZWKbi2Q


3. 혹 라 트라비아타에 대한 글, "잘 가라 지난날이여"을 듣고 싶으시다면

https://brunch.co.kr/@okspet/367


4. 대문 그림은 프로방스를 떠나지 않았던 화가 세잔의 "생빅투와르산과 큰 소나무"(1989)(사진출처:위키디피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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