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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Jan 06. 2024

어떤 개인날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 2막의 아리아


몇 해 전 일본 나가사끼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나가사키는 규슈에서 멀지 않을뿐더러 원폭이 투하된 곳이기도 하고 특히 오페라 나비부인의 배경이 된 곳이라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했다. 일본 소도시에는  예전 풍광이 많이 남아있는데 나가사키는 더 그런 분위기였다. 항구도시 나가사키는 일본에서 제일 먼저 개항한 도시로 유럽인들이 많이 살던 곳이었기에 유럽문화가 일찍 성행했다.


오페라 나비부인(Madama Butterfly)은 푸치니의 3대 오페라 중 하나로 오늘날까지도 많이 공연되고 있으며 특히 일본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오페라 라고 한다. 물론 자국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 것이기도 하고, 서구문명을 일찍 받아들여 그들의 문화와 예술을 좋아하기도 했고 어쩌면 20세기 초 향수가 있어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자코모 푸치니(Giacomo Puccini·1858~1924)는 베르디 이후 이탈리아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로 라보엠, 마농레스꼬, 토스카, 쟌니 스키키, 그리고 파바로티가 떠오르는(개인적 의견이다) 유명한 투란도트를 작곡한, 우리에게도 익숙한 세계적인 오페라 작곡가다. 베르디가 웅장한 스케일의 곡을 주로 썼다면 푸치니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사실주의 표현에 입각한 베리스모 작곡가로 특히 여 주인공들의 심리 아름답게 표현한 곡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토스카, 마농 레스꼬, 투란도트 등 그의 많은 작품들이 여주인공의 이름을 딴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오페라 "나비부인"은 일본 항구도시 나가사키를 배경으로 동양적인 정서와 분위기를 오페라로 만들어 성공시킨 작품으로 "존 루터 롱"의 단편소설을 미국의 번역가인 "벨란스키"가 희곡화 한 것을 "루이지 일리카"와 "주세페 자코사"가 이탈리아 대본으로 쓴 것에 푸치니가 곡을 만든 3막의 오페라다.

오페라의 배경은 청일전쟁당시의 19세기 후반이다. 1854년 현실적인 판단으로 미국에 개항한 일본은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러시아 등과도 조약을 맺어 새로운 문물을 빨리 받아들이게 된다. 동아시아 문화에 비교적 생소했던 유럽에서도 일본과의 교역을 통해 지식층에서는 일본문화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져 있던 때였다. 일본을 가보지도 않았던 푸치니가 오늘날까지 사랑받고 있는 일본 정서가 녹아있는 오페라를 만들 수 있었던 것도 당시 동양문화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준다 할 수 있다.

나비부인은 근대 서양인들의 오리엔탈리즘을 잘 반영하여 성공시킨 명작으로 원래는 2막으로 만들어졌으나 초연은 실패했다. 초연 실패 후 3막으로 개정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어느 오페라보다 여주인공의 아리아가 많이 나오고 평소 유럽인들이 동경하던 동양의 아름다운 이국풍경을 표현했는데 한편으로는 일본 문화가 동양을 대표하는 느낌도 들어 아쉬운 면도 없지 않다.


잘 알려져 있지만 대략적인 줄거리는 많은 오페라가 그렇듯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되어있다.

나비부인 초초상은 부유한 가문의 딸이었지만 집안의 몰락으로 게이샤가 된 열다섯의 어린 아가씨다. 오페라 1막에서는 해군장교로 부임한 핑커톤대위와 결혼하는데 핑커톤은 당시 장교들의 행태대로 미국에 결혼할 여인이 있지만, 현지에서 초초상과 결혼한다. 속칭 '현지처'로 초초상과 결혼하지만, 핑커톤과의 결혼에 모든 것을 건 초초상은, 종교까지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새로운 삶을 꿈꾼다.

3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난 2막에서 초초상은 금발의 아들을 키우며, 오늘은 내일은 하며 미국에 간 핑커톤이 돌아오기만 기다린다. 어느 맑게 갠 날 마침내 핑커톤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접한 초초상은 벚꽃잎으로 단장을 하고 밤새 눈도 붙이지 않고 기다리지만, 다음날에야 핑커톤은 미국에서 결혼한 부인과 함께 와서 아들을 좋은 환경에서 키우겠다고 달라고 한다. 어린 나이에 사랑하는 핑커톤에게 모든 것을 바친 초초상은 더 이상의 미래는 없다는 것을 깨닫고 아이를 보내고 자결한다는 내용이다.


나비부인에는 "사랑의 이중창"등 아름다운 곡이 많이 있지만, "어떤 개인날"은  여주인공의 대표적인 아리아다. 날마다 핑커톤 대위를 기다리던 초초상에게 하녀가, 한번 떠난 외국인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자 그럴 리가 없다며  그이는 반드시 돌아올 거라는 애절한 마음으로 부르는 2막에 나오는 아리아다.

핑커톤이 떠나면서 3년이 지나면 돌아오겠다고 한 약속을 떠올리며 남편이 돌아오는 그날의 모습을 상상하며 부르는 아리아다. 아리아를 들으면 가사를 한 번쯤 읽어보고 싶게 만든다.


"어떤 개인날 저기 푸른 바다 수평선위로 연기가 한 줄 피어오르면

배가 한 척 나타나겠지

하얀색 함선은 항구로 들어오고

환영의 예포소리로 가득할 거야

보이지? 그분이 오고 있어!

나는 곧장 그분께 가지 않겠어, 가지 않을 거야 나는 언덕 위에 숨어 기다릴 거야

누구지? 누굴까?

그분이 오신 거라면 뭐라고 말씀하실까

멀리서 "나비부인"하고 부를 거야

나는 대답하지 않고 숨어 있을 거야

마중 나가는 순간에 조금은 놀래주고

죽지 않을 정도로만 말이야

처음 얼굴을 뵐 때는 조금 어색하겠지만

그분은 말씀해 주시겠지

"어여쁜 부인이여

바베나 향이 나는 그여"

결국 오셔서 날 불러 주실 거야

모두 그렇게 될 거야 내가 그것은 약속하지

당신은 걱정하지만

나는 그분을 분명히 믿으며 기다리고 있으니까..."


이 곡은 나에게도 작은 추억이 있는 곡이다. 족히 20년은 된 듯한 오래전, 모음악대학의 졸업 공연, "나비부인"을 관람한 적이 있었다. 요즘은 오페라 무대도 현대적으로 해석해 장치하지만, 예전 특히 졸업 연주회는 미대생들과 정성 들여 세팅하곤 했다. 분홍색이 주를 이루는 무대 한가운데서 하얀 게이샤화장을 하고 벚꽃 장식을 한 여주인공의 떨리는 아리아가 인상적이었다. 세계적인 소프라노들이 애절하게 부르는 익숙한 "어떤 개인날"이 참신하고 정확하게만 귀에 전달되어 비교되기도 했으나, 정작 그 학생은 얼마나 떨렸을까? 누군지도 기억나진 않지만, 그 역시 대중에게 첫 데뷔였던 "어떤 개인날"을 평생 잊지 못했을 것이다. 가사로 곡으로 그리고 연기로까지 전달해야 하는 아리아의 특성에 애절할 수밖에 없는 초초상의 간절한 바람의 마음이 졸업을 앞둔 학생의 심정으로도 조금은 표현되지 않았을까 싶어 애잔했.


나가사키에서 꼭 들르고 싶었던 곳, 나비부인의 배경이 된 곳이라고 알려진 글로버 정원을 방문했다. 귀화한 스코틀랜드인 토마스 글로버의 정원을 공원으로 꾸민 글로브정원에는 오페라 나비부인을 작곡한 '자코모 푸치니'와  나비부인 동상이 있다. 봄이면 화려한 벚꽃으로 단장되었을 글로버 정원에서, 바라보는 나가사키 정경은  어쩌면 오페라가 만들어졌을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오래되고 가라앉은 회색빛 분위기에  흠뻑 젖어 있다.

마음 한 구석에 2막의  유명한 허밍코러스가 잿빛 하늘 구름 사이로 울려 퍼지고 있었기에 더욱 그래 보였는지도 모른다.


흐린 날의 나가사키 항구



p.s.

1) "어떤 개인날"을 잘 해석해 불렀다는 레나타 테발디, 그리고 마리아 칼라스의 목소리로 올려 봅니다.  같은 곡이라도 어느 가수가 부르느냐에 따라 달리 들릴 수 있고, 보고 듣는 이의 마음까지 훑어내야 하는 오페라를 잠시라도 즐기시기를 바라봅니다.


2) 오페라 나비부인을 사랑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아름답고 애절한 곡 "저녁이 되었네" 유명한  사랑의 이중창을 안젤라 게오르기우와 로베르토 알라냐의 듀엣으로 들어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YT1VO4t5wY



https://www.youtube.com/watch?v=c-r2vu4t9-g


https://www.youtube.com/watch?v=9TGYH2B4cU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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