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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Apr 18. 2024

바쁘다 바빠 ~ 익어가는 봄의 편린들

정원 가꾸기 마음 가꾸기 그림일기 두 번째 11화

일주일 넘도록 책상 앞에 앉지 못한 것 같다. 작정하고 잠시라도 앉아 글을 정리한다. 책상 앞에 앉으면 마음이 편하고 차분해지고 오히려 즐겁기까지 하는데... 이렇게 즐거운 줄, 진즉에 알았다면 오늘의 인생이 바뀌어지지 않았을까?^^

창문밖으로는 멀리 푸르러 오는 산과 초록 생명을 품고 잔잔히 흐르는 강, 야무지고 자그마한 대추나무와 심은지 3년이 되어서야 다섯 송이의 풍성한 꽃을 마음껏 펼친 후 떨어지는 꽃잎을 아쉬워하는 작은 하얀 목련, 작년보다 훌쩍 자란 홍목련, 다양한 얼굴의 관객들이 나를 바라봐주고 있다.

한적한 고요와 자연이 주는 아름다운 정경을 보고 읽고 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엇과도 바꾸지 못할 평안을 얻는다.

그럼에도,

요즘은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책 읽는 시간이고 브런치를 쓰는 시간이 된 듯하다. 

정원이 책상이고 글이고 책자체가 되어 버렸다.

작년, 쓰고 그리는데 열심인 정원이었다면  올해는 익어가고 즐길 수 있는 정원으로 자리 잡아간다.


앞 정원의 구근들, 백합과 나리가 여기저기 불쑥불쑥 올라오고 있다. 돌담사이 여러 식물들, 특히 이태전 심었던 돌단풍은 풍성하게 자라 돌틈 곳곳에서 하얀 꽃을 피워 운치 있게 만들며 깊이를 더해 준다. 커다랗게 자라던 금낭화는 언제 손을 퍼트렸는지 아예 돌정원 아래 군락을 이루고 있다. 분재에서 옮겨 심었던 소나무, 단풍나무, 소사나무, 여러 나무들도 돌틈에서 자리를 잡고 봄을 알리는 잎들로 무성하다. 자연스레 이루어져 가는 풍경이 조화롭기까지 하다. 짬이 될 때마다 감상하느라 시간이 부족할 정도다.


여린 촉들이 올라오고 꽃나무들은 초록잎들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불과 몇 주 사이 마당 정원은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누렇고 푸릇푸릇했던 정원이 온갖 색으로 화려하게 단장하기 시작한다. 전달 19일에 피기 시작한 진달래꽃은 마지막 꽃잎을 매달고 있다. 노란 수선화는 벌써 떠났고 4월 5일 피었던 하얀 목련은 사흘도 못 버티고 떨어져 버렸고, 이틀뒤 핀 홍목련 역시 기다렸던 일 년이 아쉬운지 추한 모습으로라도 버티다 떨어지고 새파란 잎이 올라오고 있다. 피자마자 지는 목련은 만개보다도 꽃문이 열리는 과정을 더 소중히 생각했음을 알리고 떠났다. 꽃 몽우리를 만들고 필 때까지의 봄 날은 피고 난 후 사나흘 보다 훨씬 길었다.

목련은 갈망하는 영혼의 열정을 한 꺼풀씩 감춰 두고 익어가며 마침내 활짝  순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비워 보내 버릴 줄을 알았다. 결과에 연연하는 우리들에게, 결과를 향해 가는 과정이 진정 소중함을 해마다 온몸으로 보여준다.


한주이상 늦게 개화한 노랑, 빨강, 분홍, 하양의 섞인 튤립은 햇살아래 한껏 뽐내며 피고 꽃대를 올리고 있다. 벚꽃처럼 꽃은 오래가지 않는 것이 많다. 애달프게 기다렸던 시간에 비하면 너무도 아쉽게 흘러가버린다.

생의 햇살만을 찾아 쫓는 우리네 삶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낙망하지 않고, 꽃 떠난 후 잎을 키우고 뿌리를 내리며 "봐주는 이 없어도 이제부터가 진짜야~"다짐이라도 하듯 뜨거운 여름햇살도 아랑곳 않고 제 역할을 해 내 갈 것이다.

또다시 찾아 올 짧은 만남을 위해... 결과에 연연치 않고 바를 해내는 생명들이 주는 작은 교훈이다.


4월 초 휴케라, 램즈이어, 붉은 바위취, 등심붓꽃, 백리향 등 다년초들을 돌담과 그늘진 곳에 심고 이제부터 꽃이 피고 지고를 도와줄 버베나, 숙근 버베나, 팬지,  애플민트등은 화분에 심었는데 이미 안착해 많이 자랐다. 작년보다 개화가 늦은 편인데도 날씨가 갑자기 더워져 빠르게 자라고 있다.

봄의 하루는 다른 계절의 사나흘 몫을 하는 것은 분명하다. 시작은 고난스러웠지만, 성장하는 속도는 무서울 정도니, 고난 후 받을 보상이 얼마나 빛나는지 역력히 보여주는 매일每日이다.


한두 주 전부터 붉게 물들었던 서부해당화의 꽃몽오리들은 소담스러운 꽃뭉치들을 펼쳐가고. 서러운 마음을 진분홍 밥알로 삼켜내던 박태기나무는 마침내 북받쳐 올라 정원을 붉게 물들이고 말았다. 보랏빛, 빨간빛이 영롱하게 섞인 진분홍 빛, 몽오리들은 피어나면서 고운 분홍옷으로 갈아입는다. 눈으로 표현하는 색의 한계를 분명히 보여주기라도 하듯, 하나에서 시작되지만 몇 번이고 변해가는 꽃은 보이지 않는 생명까지 품는다.


봄은 빛깔로 시작한다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듯 분홍과 붉은, 초록과 노랑 보라의 온갖 화려한 색의 옷을 입은 조용한 생명들로 소리 없이 분주한 정원은, 주어진 하루 뜨거운 햇살아래서 몇 겹의 일을 하고 있다.

이리 부지런한 식물들도 밤이면 꽃문을 닫고 조용히 휴식을 취한다. 쉼이란 모든 생명체에게 일만큼 중요한 것이란 것도 각인시키기라도 하는 듯...

언제나 한결같아 보이는 시간이지만, 상황에 따라 시간의 역할은 엄청나게 큰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달려야 할 때 달려야 하고 쉬어야 할 때는 분명히 쉬어줘야 함을 자연은 실물교훈으로 베풀고 있다.


요 며칠, 지금 아니면 일 년을 기다려야 만날 수 있는 엄청난 변화와 성장, 창조의 정경이 펼쳐지고 있는 봄마당!

지켜보는 이의 마음까지 정화시키고 새 힘을 채워는 봄 생명들의 고마운 사랑의 향연이 아닐 수 없다.


3월 마지막 주, 올라오는 구근 사이에 꾸며준 태양광 분수대와 허물 벗는 칠자화

화려한 진분홍 다발(꽃순이 오자매) 꽃이 아름다운 서부해당화와 분홍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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