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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Apr 14. 2024

초봄 협주곡

정원 가꾸기 마음 가꾸기 그림일기 두 번째 10화

1악장 알레그로

아침 인사

봄날 아침엔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간밤 초록의 산타클로스가 또 다른 선물을 주고 갔기 때문이다.

어제만 해도 배시시 웃으며 머리만 내밀고 있던 살구가 하얀 꽃을 피웠다.

분홍색, 하얀색이 섞인 달콤한 살짝 군침을 돌게 만드는 고소한 향이 마음 깊은 곳의 묶은 짐을 덜어내 준다.

장중하게 시작하나 펼쳐질 미래를 꿈꾸게 만드는 알레그로, 봄바람에 볼 비벼대는 여린 잎들은 질세라 노래하고 땅속 깊은 곳에서 용트림하던 구근들은 앞다투어 하늘로 올라오고 있다.

이른 아침 배고픈 새 아이들에게 한 끼라도 주고 싶은지 마을 뒷산엔 흰색 분홍색 팝콘이 가득 열렸다. 사랑스럽고 포근하며 달콤한 향기는 직박구리, 까치까지도 불러들인다.

소담하게 퍼져 피어오른 탄탄한 히야신스는 누런 마당을 이과수의 폭포인양 누비며 오보에의 향기로 채워가는 부지런한 아침을 펼치고 있다


2악장 아다지오

물 주기

정원 가꾸며 가장 좋아하는 일, 행복할 때는 물을 줄 때다. 아니 일이라고 할 수 없는 수양의 시간이라고나 할까... 긴 호스자락을 펼치노라면 더러 미세한 구멍으로 살살 흩뿌려지는 물줄기, 펼쳐질 무지개 향연의 예고편이다. 내일은 비가 온다지만 상관없다.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고여있지 않는 흙속의 물이기에, 마당은 언제나 갈망한다.

무지갯빛 선율을 만들며 쏟아지는 호스분수는 정원 생명들에게 깊고 고요하게 한 끼를 나눈다. 세미한 물줄기는 사랑의 마음을 담아 천천히 조용하게 날아오른다. 사방으로 펼쳐지는 물줄기는 함께 한 소망의 무지개, 빨주노초파남보 사랑과 꿈과 생명을 뿌려준다. 무지개를 타고 날아올라 하루를 열어가는 양식을 공급하는 이상으로 메말랐던 초록의 육신에 힘을 주고, 함께 하는 인간의 말라있는 사막에도 흐름을 준다.

봄날 아침의 관수는 고요한 음악이다. 이제 막 올라오는 새 생명 들이나 여러 해를 겪고도 늘 새로운 마음으로 맞이하는 묵은 아이들에게도 같은 생명을 나눈다. 뿌려지는 선율은 말랐던 흙도 무르게 하며 굳어있던 돌에도 웃음을 주고 초록의 잎들과 피어올라오는 꽃들에게도 무지개 빛 수만 가지 꿈을 선물하고 있다.


3악장 론도

앞다투어 올라오는 모란과 작약 아이들

백옥보다 하얀 꽃으로 여름을 환히 밝혔던 모란이 떨어진 자리엔 여리고 붉은 새 가지가 새순을 펼쳐지고, 미처 거둬주지 못한 씨앗들도 여린 뿌리를 내리며 앞다투어 얼굴을 내민다. 흔적조차 없이 겨울이면 사라지고 말던 금낭화는 마라톤이라도 시작한 듯 잎을 펼치고 세를 늘여가고 있다. 언제 심었는지도 기억 못 할 초록아이들, "올봄은 되풀이되는 봄이 아니라 처음 맞이하는 봄이다"를 외치며 떨리는 마음으로 힘차게 올라오고 있다.

관으로 현으로 각자의 운율로 해님의 지휘와 찬조하는 구름과 바람의 연주로 열어가는 봄날의 아침은 눈을 감고 귀를 닫아야 제대로 들을 수 있는 생명의 협주곡이다.


무거운 겨울을 뚫고 생명을 키워 올리는 봄의 열정과 다가올 계절에 대한 포부는 어떤 말로도 유려한 글로도 표현하기 힘든 신비입니다. 좋아하는 드보르작 첼로협주곡 b단조 Op 104에 이입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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