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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Mar 29. 2024

3월 하순의 정원 풍경, 저 홀로 핀 꽃이 있으랴 ~

정원 가꾸기 마음 가꾸기 그림일기 두 번째 6화

작년에는 정원그림일기를 어떻게 매일 써갔는지 모르겠다. 올해는 작년보다 열정이 줄어든 것일까?

한 해 두 해 보내며 가꾸고 사진도 찍고 그림도 그리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정원생활을 하지만 올해는 정원자체에 좀 더 집중하기로 결심하고 육신으로 헌신하는 시간이 많아져서 그런 것일까? 의도치 않게 안 좋아진 컨디션도 한몫하는지 모르지만,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굳게 믿는다.

자연 속에서 선물 받는 매일의 감사와 용기덕에 의도적으로라도 세뇌시키는지도...


고리타분한 진실이라 여길진 몰라도 넓고 넓은 세상엔 나보다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날이 갈수록 깨닫게 된다. 때론 힘들게 열고 가는 하루라도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를 깨닫는 순간 지금이 주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감동한다.


흙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은 봄이면 살랑대는 바람결에도 설렘을 경험한다.

쉼과 여유의 무게로 가라앉았던 심연의 하얀 겨울도 좋지만 흙은 봄을 가장 사랑하는 것 같다.

그리고 흙을 사랑하는 사람들 역시 봄이 되면 알지 못하는 좋은 기운에 기분까지 들뜨게 마련이다.

마당이 있어 작은 정원이라도 가꾸며 기쁨을 표현해 보는 사람도 있지만, 마당이 없는 사람들은 베란다에 살던 화분에게까지 새로운 마음과 정성을 쏟으며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표현해 보는 것도 흙과 함께 는 봄이 주는 선물 덕분일 것이다.

봄이기에 누릴 수 있는 행복 아닐까?

봄을 생명의 계절이라 하는데 누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는가? 아무튼 봄맞이 정원에서 이것저것 보살피기 시작하면 하루가 모자랄 지경이다.


일주일새 정원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접어 두었던 야채온실은 깨끗이 씻어 작년에 설치했던 곳에 설치했다. 야채온실입구에 심은 장미 자리가 적당하지 않아 이웃에게서 얻은 격자무늬나무 지지대를 데크 쪽으로 설치한 후 옮겨 심었다. 

3월 초에 심은 목수국 라임라이트를 옮겨 심고, 캐어내 옮겼던 작약도 뒤쪽으로 옮겼다. 심고  옮기고, 좁은 마당에서 사는 초목들의 고생이 여간 아니다.

야채 온실이 꽃밭 한가운데 있는 것 자체가 잘못 배치된  것이긴 하지만, 해가 유독 잘 드는 곳이라 이른 계절에 야채를 먹기 위해 만든 곳이니 공존하도록 노력해 본다.

이제 제 자리를 잡은 것 같다.

온실 앞 왼쪽은 장미, 오른편은 수국화원이다.

온실이 높지 않으니 해를 가리진 않는다. 온실 뒤편은 장미와 모란 작약, 여린 조팝과 군데군데 백합이 있다.


올해 들여온 새 식구는 목수국 다간지 라임라이트와 외목대, 분에 심은 홍매화와 아기 황금회화나무, 장미 관목 크리스티나. 분에 심은 어린 금목서 두 그루, 클레마티스와 꽃들과 구근류다. 앞마당 정원을 화원으로 가꿔 보려 꽃들을 샀다. 요즘 시청하고 있는 유튜*의 정원 프로그램 "양평 서***"에서 열심히 추천하던 백묘국, 베버나, 목마가렛, 그리고 살짝 꽃이 핀 크로커스, 분에서 4월을 기다리다 지난 월요일 땅으로 옮겨 심었는데 며칠째 계속 비가 온다.

영하로 떨어지진 않는다고 하니 다행이지만, 더워도 추워도 아직은 힘들어하는 어린 꽃들이 4월까지 잘 견디길 바랄 뿐이다. 이번 비와 추위로 올해 꽃샘추위는 끝났겠지 기대해 본다.


차 안에서는 에어컨을 틀어야 할 정도로 더웠던 일요일, 다음날 아침엔 앞 정원의 수선화가 활짝 피었다.

봄의 전령 수선화는 여기저기서 수줍은 노란 얼굴로 다소곳하게 고개 숙이며 "저 왔어요 ~~ 여깄어요" 

"여기요 저기요 ~~" 2월 말부터 삐죽거리며 올라오던 촉들이 어느새 초록 날개를 퍼득이며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하더니 봉오리를 맺고 하룻밤새 만개한 것이다.

수선화를 필두로 히야신스와 나리꽃도 드문 드문 꽃을 피우고 홍목련도 볼을 붉히며 준비하고 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꽃을 피우기 위한 준비는 너무도 긴 시간이 요구되는데, 정작 꽃은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순식간에, 아니 화들짝 놀라게 피어나니 말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꽃은 마치 자신만이 홀로 있었다는 듯 뽐내며 생명을 즐긴다. 

하지만 마당식구들은 화려한 그 꽃을 피우기 위해 애써 모든 과정을 함께 보냈다.

꽃은 피기에 아름다움을 알리고 가치를 인정받지만, 그를 위한 내면의 수많은 과정을 오롯이 겪어낸 가지와 잎과 나무들 ~ 몸뚱이의 진실은 감춰지기 십상이다.

잎과 뿌리 가지와 몸뚱이가 건강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예쁜 꽃을 피울 수 있었을까?

절정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꽃도, 외모에만 신경 쓰고 사는 우리네 삶과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아름다운 면상, 인정받는 외형을 위해 얼마나 애쓰고 살았던 시간인가?

지금도 더 더 멋져 보이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평생을 희생한 지친 몸을 끌고 다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건강한 몸과 마음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자연은 다시 일깨운다.

모두에게 찾아오고야 마는 주름을 아쉬워할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살아낸 감사와 순응과 기쁨의 상징인 꽃처럼, 노력하며 살아온 시간의 겸허한 보상임을 소중히 일러주는 고마운 정원이다.



얼굴 붉혀가는 홍목련과 여기저기서 불쑥거리며 올라오는 히야신스와 이름도 모를 구근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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