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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Apr 01. 2024

삼색이의 결단

정원 가꾸기 마음 가꾸기 그림일기 두 번째 7화


정원의 앉아있는 생명들도 저마다 곱게 차린 꼬까옷 꺼내 입고 명절맞이라도 하듯 들떠있는 나날이지만, 날아다니는 생명들에게도 변화가 많은 봄날이다.

꽃샘추위가 절정이었던 지난 20일, 새끼를 낳은 삼색이를 위해 황태를 삶아 국물을 밥에 넣고 잘게 찢은 황태와 통조림생선으로 사료와 비벼 밥을 몇 번이나 주곤 하는데 조막만 한 얼굴의 삼색이는 남기지도 않고 싹싹 먹어 치운다.

정성껏 해준 음식을 이리도 잘 먹으니 미울 수가 없다. 나름 산바라지를 한다고 분주한 하루였다.

다음날 아침밥 달라고 멀뚱 거리는 삼색이를 보며 "아가들이랑 잘 잤어?" 아침인사를 해 본다.

삼색이 밥을 챙겨 준 후 냥이 집을 열어보니 휑하고 텅 빈 방석밖에 아무것도 없었다.

세상에! 하룻밤새 새끼들을 몽땅 어디론가로 옮겨 버렸다.

"아니? 아가들을 어떻게 했어?"

새끼 보느라 열어보고 사람들 눈에 안 띄도록 가림막을 해주고 왔다 갔다 했더니 불안했던가보다.

게다가 새끼 젖먹이는 삼색이를 위해 고기 밥그릇을 아예 집안으로 넣어주느라 젖 먹는 아기 노랑이를 처음 보기도 했다. 삼색이는 노여워하지도 야옹거리지도 않고 누운 자세로도 참을 잘 먹었지만 그때 결심을 했나 보다.

"집안에선 아기들이 좀 더 자라면 위험하겠다 싶어 ~~"

"관심도 지나치면 부담이 될 수 있겠어 ~~"

"그래도 모질기도 하지~추운 밤에 혼자서 다섯 마리를 어디론가로 옮겨 놓다니... "

고양이의 천성이 독립적이고 의심이 많긴 하지만 아직도 "나를 못 믿다니?"

약간은 서운? 하기도 하고 얄밉기? 도 했지만, 그건 생각이고... 삼색이는 천성에 따라 사는 길냥이다.


어떻게 새끼를 가지게 되어 낳았고 이제는 젖을 먹여 키워야 하는데 본능적으로 여러 위험요소를 파악한 것이다. 다행히 삼색이는 하루 서너 번씩 밥 잘 먹고 부지런히 어디론가 다닌다.

자세히 보니 길 건너 아랫집 데크 쪽으로 촐랑거리면서 가는 것을 보니 그 집 데크밑 어디엔가 숨겨둔 것 같았다. 주인이 잘 내려오지 않아 집이 거의 비어있는 편이기도 했고...

한번 제대로 안아보지도 못해 아쉽기도 했지만 "그래 새끼들이 집 마당에서 돌아나니면 위험한 점도 많긴 하네~ 어쩌면 삼색이가 우리가 신경 쓰기 전에 먼저 조치를 취한 것이 옳은지도 모르겠어 ~" 

제 나름대로 안전한 어딘가에 숨겨놓긴 했고 저녁에도 그곳에서 자는 게 틀림없다. 그래도 열심히 밥 잘 먹고 하루 몇 번이라도 배고프면 "야아~ 옹 야옹~ 밥 달라 옹" 신호를 보내고 남김없이 잘 먹고 다니니 고맙기도 하다.


설사하고 눈병 났던 솜이는 눈약 열심히 넣어주고 소화제를 며칠 동안 잘 먹여 그런지 눈도 다 낳고 밥도 잘 먹는다. 솜이는 고기를 비벼주면 잘 안 먹고 고기를 사료 위에 올려줘야 잘 먹는다.

고기는 고기맛을 느끼며 먹겠다는 의지인지... 저녁이면 두 녀석이 꼭 껴안고 잤는데, 이제 어미는 또 다른 새끼들을 위해 나가서 자고 오니 혼자 잠자고 있는 솜이 모습이 안쓰럽긴 하지만, 녀석도 곧 독립하지 않을까 싶다.

요즘 솜이는 저녁 먹은 후엔 잠시 드러누워 있다간 밤엔 어디론가 열심히 일하러 다닌다. 일하러 다니는지 냥이의 본능을 충족시키러 다니는지 하숙집 아주머니도 정확히는 모른다.


삼색이가 새끼를 옮긴 지도 이주가 돼 가지만 끼니때와 쉴 때는 집에서 뒹굴곤 하니, 여기를 제집으로 여기는 것은 분명하다. 작년 6월 어디선가 낳은 새끼 다섯 마리를 데리고 왔던 삼색이는 한두 달 후면 감춰두었던 아기냥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올 것 같다.

새끼가 제법 자랄 5월 정도면 앞마당데크엔 삼색이가 아기들에게 젖물리며 노는 모습이 작년처럼 펼쳐질 것이다. 다섯 마리와 솜이, 삼색이 그리고 가끔씩 오는 깜냥아까지 데크는 고양이 놀이터로 변하지 않을까 싶다가도 작년에도 다섯 마리를 데리고 왔었는데 지금 남은 아이는 솜이 하나뿐인 걸 보면 저희들이 적절히 조절해 가며 자립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 이제 미리 염려는 하지 않으려 한다.


길냥이 몇 년 거두다 보니 조금씩 변해가는 고정관념과 염려증에 대한 치유의 은사를 선물 받는 것 같다.

우리에게 오는 꽃들을 소중이 여겨주고 돌봐주면 그뿐이다. 거하든 떠나든 그것은 우리의 몫은 아니라는 것, 모두가 자연의 일부로 어디에선가 날아다니는 고운 꽃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 믿을 뿐이다.

해마다, 봄을 맞고 여름을 함께 하며 가을을 기다리고 겨울을 만나는 사계를 랑데부하며 살아감에도, 만날 때마다 새로운 것처럼 진리는 일상의 "도돌이"속에 녹아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순간의 인연이라도 소중히 여기고 주어진 순간순간을 감사하며 가꿔가야 하지 않을까?


따사로운 햇살이 온 마당을 감싸는 걸 알기라도 하듯 아침 먹고 노곤한 몸을 그늘진 데크에 뉘어 잠자고 있는 솜이, 방금까지 곁에 있었던 삼색이는 아가들을 챙기러 내려갔나 보다.

한편으론 잘 알 수 없는 새끼 길냥이들의 삶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마당정원에서 함께하는 생명이라 생각하니 누구의 책임도 운명도 아니다. 통제할 수 없으니 제 생긴 대로 살바대로 자유롭게 놔두는 것이고, 내 힘으로 해 줄 수 있는 도움을 주는 것뿐이다.

나 역시 정원의 작은 일원이기 때문이다.



유독 손을 타는 솜이의 한가로운 낮잠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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