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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Apr 04. 2024

처음부터 사계절은 하나였다

정원 가꾸기 마음 가꾸기 그림일기 두 번째 8화

일 년이네 가족 중 맏이는 누구였을까?

봄부터 시작할 것인지? 겨울부터 열어 갈 것인지? 봄에서 본다면 봄과 여름이와 가을이가 끌고 가는 것 같다.

봄과 여름과 가을이 있기 때문에 겨울 하나쯤은 거뜬하게 끌고 간다.

혹한의 추위도 봄, 여름, 가을이 나누기에 가뿐히 견딜 수가 있다.

모두 녹지 않아 군데군데 있는 하얀 산들, 마을 곳곳마다 흰 덩어리들이 아직은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일 년에 사형제가 있는 이유는 구분을 위한 것이 아니다.  어찌 펼쳐질지도 모를, 요즘 같으면 올해도 역시 힘겨울지 모르는 한 해를 나뉘어 시작하라고, 조금씩이라도 함께 덜어주며 살아가라고 있는 것이다.

맏이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봄인지 겨울인지, 아니 여름인지 가을인지 모른다.


봄은 무엇 때문에 맏이가 될 수 있다 했을까?

아무리 봄이라도 겨울이 없었다면 희망도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겨울이 있었기에,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순간에도 땅속 깊은 곳으로 발돋움해 버티며 고고히 남아서 언젠가는 뽐내고 싶어 하는 마음? 교만일 수도 있는 생존의 열망 때문에 봄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붐은 저 혼자 살기 위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봄은 여름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단계에 불과하다.

꽃을 피우고 잎을 내보내지만, 열매를 맺고 수확을 준비하는 다이내믹한 계절에 필요함을 위해 겨울부터 내내 에너지를 겹겹이 비축하고 있었다.


여름은 어떤가?

애당초 모든 계절이 자신을 위해 있는 것인 양, 온갖 기쁨을 누리며 묵혔던 기억도 소화시키고 다가올 미래도 한 손으로 움켜잡으며 행복을 즐기고 꿈을 키워가고 있지 않은가?

하늘도 땅도 움직이는 모든 생명들에게 열락의 기쁨을 주고 다가올 수확을 위해 제 몸 바쳐 뛰고 있다.

마치 청춘을 여름에 비교한 것은 결코 잘못된 일 이 아니다.

한 가지 바라는 것은 올해도 청춘의 여름 같은 나날이 되길 바랄 뿐이다.


그래, 이제 가을은 어떤가?

가을! 자네는 어떤가? 한 말씀해 보겠나?

"모든 이들이 저, 가을이야의 말로 가장 칭송받고 사랑받으며 훌륭한 계절이라고 노래합니다.

하지만 기실 저는 그렇지 못합니다. 봄과 여름이, 아니 그 이전에 겨울이 준비하고 노력했던 결과를 확인하고 내어줄 뿐이기만 할 따름입니다.

제가 한 것이라고는 고작 몇 날 안 되는 저무는 햇살을 품에 담고 마지막 결실을 맺는 품 안의 열매들을 소중히 내 보내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래도 칭송받고 결실의 주인공처럼 노래를 듣게 되니 송구할 따름입니다. 제가 해야 될 가장 중한 일은 이제 다가올 겨울을 위해 준비하는 것입니다. 사실 준비 하는 것도 별것 없습니다. 이어받았던 것을 감사히 누리고 겸손하게, 다가오는 주자에게 바통을 넘기는 것입니다. 제 몸까지 훌훌 털어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다른 계절아이들과 달리 바라는 것이 있다면, 받아들이고 내어주는데 소중한 마음이 변색되지 않고 겸허하게 저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저, 가을이가 되게 해 달라는 것뿐입니다."

길고 장황한 설명이 늘여놓는다고 해, 맏이는 아니라는 겸손함을 분명히 말한다.


계절은 각각의 노래를 한다.

노래는 일 년 이의 가족들과 더불어 가는 모든 생명들에게 공감을 주며, 함께 향유하는 인간들에게 축복도 되고 고통도 되고 때로는 그리움과 아픔과 그리고 다가올 미래에 대한 희망을 안겨주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우리가 부르는 이름처럼 각자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였으며, 하나로 이어져온 순환 속에 함께한 모든 생명의 고리가 연결되어 지금이 존재한 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느 한순간 누구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있으랴.

관계된 일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많은 일들조차 결국은 사계의 추억에 담기는 한 장면에 불과하단 것을 깨달으면 욕심에 발버둥 칠 이유도 없다.

넉넉한 마음의 일 년 이는 펼쳐질 올해도 함께 하는 모든 생명들에게 따뜻함과 사랑의 온기로 이어 줄 것이다.


대문 앞의 향나무는 입성할 때부터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굳건하게 제 자리를 지켜가고 있다.

다듬어주면 고마워하고 다듬어 주지 않아도 싫다 하지 않는다.

한 번씩 쓰다듬어 줄 때마다 풍겨주는 향기는 친구들과 향나무연필로 글씨 쓰며 웃고 즐기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소환해 주고, 나무한그루 다듬는데 평생을 바쳐도 행복하다는 이웃 나라의 소박한 아낙의 얼굴도 떠올리게 한다. 펑펑 내리는 하얀 눈 속에서도 초록의 제 빛을 영롱히 품고 하루에도 몇 번씩 성장하는 봄에도 마당에도 초록 바다를 펼쳐주는 여름에도 풍성함이 넘치는 붉은 가을에도 언제나 푸르게 제자리를 지켜주는 일 년 이의 선물 같은 좋은 친구다.


봄날 전정한 대문 안 쪽에 심은 향나무, 언제나 푸르고 향기로운 진심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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