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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Oct 02. 2024

개와 고양이는 언제쯤 사이가 좋아질까?

개와 고양이 전래동화는 맞게 지어 전해진 것일까?

정말로 정답게 살았을까?

"옛날 옛적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불쌍한 개와 고양이를 거두어 함께 살고 계셨답니다. 어느 날 할아버지께서는 낚시를 하다가 커다란 잉어 한 마리를 낚으셨는데, 할아버지를 쳐다보며 우는 잉어가 안쓰러워 그냥 놔주었어요. 잉어는 할아버지의 은혜에 보답이라도 하듯 '소원을 들어주는 구슬'을 가져다주었답니다. 구슬덕에 부자가 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개와 고양이와 함께 행복하게 살았는데 어느 날 이웃에 사는 욕심쟁이 할머니가 구슬을 구경하러 왔다가 슬쩍 바꿔치기를 했답니다. 구슬이 없어 다시 가난해진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안쓰러워 개와 고양이는 구슬을 찾아 드리기로 결심하고 집을 나왔어요. 욕심쟁이 할머니 집에 온 고양이는  임금쥐를 잡은 후 부하쥐들에게 구슬을 찾아오라고 했어요. 쥐들은 구슬을 찾아왔고 고양이와 개는 구슬을 가지고 강 건너 할아버지 집으로 헤엄을 쳐 갔어요. 고양이는 수영을 하지 못해 개의 등에 타고 입으로 구슬을 물고 있었답니다. 개는 헤엄을 치면서도 염려가 되어 '구슬은 잘 가지고 있지?'라고 몇 번이나 물었어요. 입에 구슬을 물고 있던 고양이는 자꾸 물어보는 개에게 짜증이 나 '걱정 말아! 잘 가지고 있으니!'하고 말하는 순간, 물속에 구슬을 떨어뜨리고 말았어요. 개와 고양이는 힘들게 찾아온 구슬을 잃고 속상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중, 강기슭으로 올라온 물고기 한 마리를 보고 고양이는 잽싸게 물어와요. '이거라도 할아버지 할머니께 가져다 드리자 ~' 개와 고양이가 없어져 걱정하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힘없이 돌아온 두 아이 들을 반갑게 맞이했어요. '물고기도 잡아왔네~맛있는 저녁 만들어 먹자꾸나~' 물고기 배를 가르던 할아버지는 구슬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어요. 고양이가 떨어뜨린 구슬을 바로 그 물고기가 받아먹고는 속이 좋지 않아 강기슭으로 올라왔던 것이지요. 다시 부자가 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개와 고양이와 함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로 끝나는 버전도 있고, 멍청한 개 때문에 고생한 고양이의 이야기를 듣고 고양이는 집안에 개는 마당에서 살게 해 개와 고양이가 앙숙이 되고 말았다버전도 있다.

대부분의 개와 고양이는 사이가 안 좋기에 이런 이야기가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고양이와 개를 집안과 마당에서 키우는 입장에서는 어떤 버전으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가지 분명한 점개도 고양이도 100%는 아니라 어떤 성정을 가진 아이냐에 따라 상황에 따라 친구도 적도 있다는 점이다.


요즘처럼 햇살이 좋은 날에는 데크에 앉아 분수대에서 뽀글거리며 올라오면서 떨어지는 청량한 물소리 물멍도 하고 싶고, 높고 푸르게 맑은 가을하늘멍도 하고 싶다. 그런데 강아지들은 현관에 나가기만 해도 따라 나오겠다고 왕왕거린다. 가을이 얼마나 갈지도 모르고 이 계절은 마당에서 쉬기에 참 좋기 때문에 힘들어도 아이들도 데려 나오려 한다. 한 녀석은 망태기에 넣고 두 녀석을 양팔로 안고 나와 방석을 깔아 둔 벤치로 앉힌다. 이미 나오면서 삼냥이들을 본 강아지들은 짖기 시작이다. 하지만 마당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삼냥이와 솜이는 강아지들을 겁내지 않는다. 긴 벤치에 앉히고 앞에는 테이블로 막기까지 하지만 고양이를 보면 강아지들은 정신없이 짖는다. 특히 샐리는 잡기라도 하려는 온몸을 바둥거리며 심하게 짖는다.

떠나버린 삼색이는 강아지들을 보면 피하기라도 했는데 삼냥이는 무서워하기는커녕 정답게 말똥말똥거리며 쳐다본다. 심지어 사람도 겁을 내지 않는다. 식구들뿐만이 아니라 이웃이 와도 피하기는커녕 쓰담쓰담도 허락한다. 이런 아이들이니 강아지를 친구로 여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강아지들은 용납이 안되나 보다. 샐리와 보리튀어나가지 못하도록 쓰담해 주며 고양이 쪽으로 눈을 돌리지 않도록 한다. 호프와 앵두는 옆에 있는 자기들 야외집에서 아무리 시끄러워도 평안히 자고 있는데 별이는 앞에 엎드러져 있다. 막대기로 "저리 가라`"고 신호를 보내도 눈도 깜짝 않는다. 집엔 자기한테 해코지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아주 철저히 믿나 보다. 

30분이나 앉았을까 도무지 용납하지 못하는 샐리의 괴성에 할 수 없이 세 녀석을 집안에 들여놓는다.

고양이는 강아지가 있든 말든 상관을 하지 않고 제 하고 싶은 대로 하는데, 왜 개들을 그냥 두고 보질 못하는 것일까?

그냥 신경 쓰지 않고 풍광을 즐기면 될 텐데 왜 그게 안되니?

그들의 일원이라도 된 듯 녀석들에게 안타깝게 말하다 문득 어릴 적에 읽었던 개고양이 이야기가 생각났다. 개와 고양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우리네 가족으로 마음밭에 각인된 오래된 사이였다.

반가운 사실은, 어느 버전으로든 사이가 좋은 때도 있었던 사실이다.

그 시절처럼 다시 다정하게 지낼 수는 없을까?

둘 중에 누가 더 지혜로운지, 충성스러운지를 논할 수는 없다.

각자의 개성이 너무 뚜렷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생긴 대로 살게 마련이다. 그래도 아쉬운 점은 어쩔 수 없다. 특성에 따라 각자의 매력이 달라 사랑받는 것도 다르다.

고양이는 좋은 말로, 자유로운 영혼 구속당하는 것을 싫어하고 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산다. 그래서 손해를 안보기도 하지만 때론 큰 손해를 봐도 연연하지 않으니 자유와 천성을 위해 목숨도 불사한다.

언제 왔다가 사라질지도 모르는 그야말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버전이다.

개는 충성스럽다는 표현에 걸맞게 구속도 사랑으로 받아들이며 파고 들어온다.

당당할 것 같지만 의외로 보호를 떠나 살기를 원치 않는 것 같다. "오직 그대만을"버전이다.

나이 든 강아지 세 아이나 이제 한창인 새끼 삼냥이와 솜이, 고양이 네 마리가 언젠가는 서로 이해하며 마당에서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 고양이는 상관도 하지 않으니 샐리와 보리 승리가 어린 삼냥이들을 눈에 거슬려하지 말고 그냥 그대로 봐주었으면 좋겠다. 그렇게만 된다면 훨씬 더 멋지고 아름다운 가을을 누려갈 것인데...

바람에 불과한 일일까?


강아지 짖는 소리도 상관없다는 듯

튀어나가지 못하도록 누군가 곁에 있어야 하는 강아지 세 아이들

오른쪽에 강아지가 있어도 신경 안 쓰고 편안한 고양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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