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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계형 개발자 Aug 28. 2022

타인의 성공을 해석하는 방법

합리화는 하지 말자

오늘 지인들과 주식 투자에서 운의 영향력에 대해서 토론하는 자리를 가졌다. 내가 주식에서 얻은 수익은 정말로 나의 실력이 뛰어나서 얻은 것인지 아니면 운이 좋아서 우연히 얻은 것인지에 대해서 논의해 보는 것이 이번 토론의 목표였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나의 실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운 적인 요소가 많다는 것을 인정했는다. 아무래도 모임의 주제였던 책이 나심 탈레브의 ‘행운에 속지 마라'였던 것도 있고 올 초부터 시작된 길고 긴 하락장으로 한없이 겸손해져 버린 계좌 탓도 있을 것이다. 끝을 모르고 오르던 작년 상승장에 토론했다면 아마 분위기가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토론은 주식 투자 영역에서 벗어나 빌 게이츠, 워런 버핏, 모차르트 같은 성공한 사업가, 스포츠 선수, 예술가의 영역으로 확장됐다. 이들의 성공은 운이 좋았던 것일까 아니면 실력을 갖추었기 때문일까? 오늘 모임에선 운의 영향력을 중요시되는 분위기였다. 워런 버핏의 아버지는 손꼽히는 증권 세일즈맨이었고 주말마다 월가에서 유명한 투자가들 자주 집에 방문해 어린 워런 버핏에게 많은 인사이트를 주었다고 한다. 다른 투자가들이 누릴 수 없는 고급 투자 교육을 워런 버핏은 조기 교육으로 받을 수 있었다. 모차르트는 유명한 음악가 아버지를 둔 덕분에 어릴 적부터 일찍 콘서트에서 연주할 기회가 있었다. 어린 시절 모차르트의 연주는 신동 소리를 들을 정도로 훌륭하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끊임없이 연주 기회를 제공한 덕분에 실력을 급상승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것만 보면 워런 버핏과 모차르트가 만약 다른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지금과 같은 업적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사업가가 이런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나진 않았지만 몇몇은 정말 운의 영향력이 컸을 지도. 오늘 모임에선 그들이 보여준 노력이나 남다른 안목은 가려졌고 운의 영향력이 부각됐다. 다소 과장된 표현일 수 있지만 ‘성공이 이미 태어날 때부터 결정된 것이 아니냐’는 운명론적 관점도 제시됐다. 딱 이 시점부터 토론을 따라가기 어려워졌다. 모든 것이 운명론적으로 결정된다면 그리고 운의 영향력이 지배적이라면 나처럼 성공을 추구하고 노력하는 사람은 결코 그것을 이루지 못하는 것일까.


사실 모든 것이 운이었다고 치부하는 논리는 쉽게 반박이 가능하다. 워런 버핏이 수많은 투자가들의 조언을 잔소리로 치부했다면? 모차르트가 아버지의 훈육 방식에 거부감을 갖고 연주회 장소를 뛰쳐나갔다면? 오늘날 버크셔 해서웨이는 없을 것이고 음악 교과서에서 모차르트는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성공한 사업가들이 남들보다 유리한 환경에서 태어난 것은 타고난 운이지만 그 기회를 살린 것은 그들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유리한 환경의 기회를 놓친 경우도 다수 있다. 이건 사실 멀리 갈 것 없다. 고액 과외를 받았어도 명문대에 입학하지 못하는 친구가 한 두 명쯤은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성공을 온전히 유리한 환경 탓으로만 돌리기엔 논리적 모순이 있다. 운은 성공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역시 남 탓이 제일 쉽다


타인의 성공을 배우고 따라 하는 것보다는 그들의 성공을 외부의 탓으로 돌리는 게 정신건강에 좋긴 하다. 나의 실패를 노력이 부족한 것으로 보고 반성하고 스스로를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는 유리한 환경을 갖 못한 탓으로 돌리는 게 마음이 훨씬 편하다. 어리석은 생각 같지만 나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잘 나가는 학교 동기의 성공을 평가할 때 그 친구의 남다른 안목과 노력을 칭찬하고 배우는 것보다는 운으로 돌리며 내가 성공할 수 없는 이유를 합리화하곤 했다. ‘나도 그런 인맥이 있었더라면’, ‘나도 그 타이밍에 군대를 안 갔더라면' 같은 핑계를 대곤 했다. 정말 질하고 도움이 안 되는 생각이었다. 그 친구를 만나서 조언이라도 들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나는 나처럼 같이 그 동기의 성공을 외부의 탓으로 돌리는 친구들과 얘기하며 소위 정신 승리의 시간만 가졌던 것 같다. 나의 자의식이 너무 소중했던 건지 아니면 나보다 잘하지 않았던 친구가 성공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인지. 이런 자세는 나의 상황을 개선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성공에서 운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모든 것을 운이 부족한 탓으로 돌리며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태도는 내 삶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제 운십기영이 아니라 운칠기삼이 사자성어가 됐는지 좀 알 것 같다. 우주가 나를 돕더라도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는 없다. 앞으로는 내 자의식을 보호하면서 정신승리하기보다는 타인의 성공에서 배울 수 있는 점들을 주목하고 스스로를 가꾸어가며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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